응답하라, 민주노총!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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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억 센터 이사,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



원고 마감날이다. 이 생각 저 생각, 끄적거린다. 영 글이 안 써진다. 이것저것 자료 뒤지다 4년 전 쓴 글(2016년 12월 24일 페이스북)을 접한다. ‘이것이 여전히 현재의 내 맘이다’ 싶다. 수년 전 문제의식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이 갑갑하다. 염치없지만 옛글을 다시 들추고 드러낸다. 게으름을 자책하며 지난 글을 보낸다. 응답하라. 민주노총! 말이 아닌 실천으로 답하라! 너와 나, 우리에게 묻는다. 


노동운동, 이제 원칙과 당위를 넘어 진정성을 보여줄 때!


“비정규직 철폐, 그만 외쳤으면 좋겠다. 말로만 하지 말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내놓고 실행하라!” 즐거운교육상상 송년회에서 진행된 작은 시국토론회에서 한 청년의 이야기다.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자 제대로 된 역할을 요구하는 애정 어린 쓴소리라 읽힌다. 공감한다. 안타깝다. 아프다. 


휴먼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에선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포장마차에서 취업준비생과 해고자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네가 해고를 알아. 그게 얼마나 엿 같은 건지 아느냐.”는 해고자 말에 “해고 그거 우리 같은 놈들 소원이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빌어먹을 해고당하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한다. 정규직 취직이 불가능한, 대부분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나 실업자로 내몰린 청년들. 삼포도 모자라 칠포세대라 불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절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아리고 아프다. 


EBS 대담 프로그램에서 대담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이렇게 혹독하고 암담한 사회를 물려준 것에 대해···.” 맞는 말이다. 좋은 생각이네.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웠다. 


촛불항쟁이 진행되고 있다. 권력의 부당한 행태, 비정상적인 헌정 질서에 대한 저항,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박탈과 억압에 대한 분노가 분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탄핵과 대선을 넘어 이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구조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동의한다. 같은 생각이다. 


사회구조 변화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해결이다. 거대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기득권 세력의 탐욕과 카르텔이 노동자 분할과 비정규직 문제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때론 방조, 용인, 묵인한 우리의 주체적 측면도 존재한다.


오랫동안 민주노총 상급조직에서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름 했다. 노력했다. 우리 힘이 그 정도인데 어쩌겠냐!”는 말로 자괴감과 난망함, 부끄러움을 감출 수는 없다. 변명일 뿐이다.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총에서 비정규 사업을 담당할 때 꽤 많은 사업을 했다. 비정규직 사업기획이 민주노총 의결 단위에서 부결된 적이 없었다. 대부분 큰 토론 없이 통과되었다. 비정규직 문제해결이라는 원칙과 당위,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원칙과 당위는 현실에서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열변을 토해도 내 사업장 문제로 다가오면 위축되고 움츠러들고 감히 실천으로 펼치지 못했다. 밤새 하소연할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하고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렵다. 힘든 문제다. 오랜 기간 상당한 시간과 과정의 노력, 실천이 필요하다. 난 시간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 정규직화, 전략 조직 사업이 민주노총 중심과제와 요구로 결의된 것이 2003이다. 10여 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민주노총의 방침과 요구를 조금씩 실천하고 확장해왔다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비정규직 분할, 임금 격차는 줄어들기보다 더 확대되었다. 지난 몇 년간 정규직 임금이 4.3% 오를 때 비정규직은 0.5% 올랐다.) 


이 상황에서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 차별 철폐 정규직화 구호가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노상 맨날 하는 소리.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감동도 없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가식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알리바이 수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청년의 말처럼 말로 운동하지 말자. 지금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구호로 결국은 별로 한 것이 없는 혹독한 현실을 만들지 말자. 당연히 원칙과 지향, 전략적 요구는 있어야겠지만 핵심은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적 실천 방안을 가지고 진전시키냐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이 사회 격변의 와중에 내년에 또 정규직/대공장/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중소영세/미조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만 더 벌어질 게 자명하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또 구호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어떻게 임금 격차와 차별을 축소할 것인가? 구체적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자본으로부터 임금 인상 총액을 높이되 총액 내에서 하후상박 연대 임금 방안이 필요하다.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높이고 그 중 일정액을 연대 임금으로 전환하면서 자본에게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추가 비용을 더 쟁취하는 방안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조직·비정규직·청년 노동자들이 주체화되어 정규직과 함께 연대하고 큰 힘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과정이 필요한 문제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연대할 때, 아래로 손을 맞잡을 때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왜? 희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정규직 조직 노동자가 나와 함께하기에 두려움과 체념을 넘어서 행동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꿈틀대며 분위기와 흐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온누리에 평화를, 우리 모두의 권리 확장을 통한 보다 나은 세상을 바라며, 탄핵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위한 나로부터의 실천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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