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변화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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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 센터 공동대표, 전 민주노총 위원장



2020년은 노동운동에 있어 많은 의미가 있는 해이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전노협 창립 30년, 민주노총 창립 25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창립 20년, 그 외에도 많은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때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지금 다시 확인해 기리기 위한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것이 변했고, 그 과정을 살아온 사람들도 변했고, 또 나이를 먹었다. 그때와 지금을 기억하는 것, 그때와 지금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과 변화시키려 했던 것, 그것이 무엇일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을까?


전태일 열사 50주기 행사위원회를 준비하면서 회의를 하던 중 갑자기 든 생각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변했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태일은 누구의 모습일까?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마음 아파했던 시다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있다면 이 시대의 시다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열사 정신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런 것들을 나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문구는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노동이 당당한 나라’였다.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에서 내건 슬로건이고, 또 그중 한 분은 현직 대통령이 되었으니 참 많은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을 끊임없이 찌르는 의문이 있다. 과연 이 땅의 노동은 당당하고 존중받는 사회인가라는 의문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정신. 그것을 정의, 진리, 또는 가치라고 부른다. 인구가 늘어나고, 많은 사람이 기술을 변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이 생산 활동을 해왔으니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살아간다. 그런데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직업에 귀천은 없다’라는 말들이 과연 현실에서도 그런가?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은 자본주의 체제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모 교수가 한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야수의 자본주의다.” 그렇다. 자본은 야수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야수의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진짜 나의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현실과 이상, 두 개의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나고 돈 난 것이 옳은데 우리는 돈 나고 사람 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땀 흘리는 노동은 신성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야 하는데 돈 많이 버는 자만이 존중받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인격을 규정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고용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가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괴로움은 가치의 충돌이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주는 괴로움이다. 대다수 사람이 믿는 진리와 정의, 옳은 가치는 현실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이 괴로움이다.


노동은 보편적 권리이다. 이것은 진리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노동은 보편적 권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의 투쟁과 헌신 속에 변화를 만들어 냈지만, 자본은 더 빠르고 교묘하게 여전히 현실에서 노동을 소외시켜가고 있다.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청하면 그 사람은 취업은커녕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 근로계약서를 쓰더라도, 불이익을 당해도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는 항목을 적었다는 젊은 친구 이야기를 씁쓸하게 들어야 했다. 부당함을 제기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는 나의 이야기에 그 친구는 “그러면 이 업계에서는 매장당해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를 넘어서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 쪼개기 계약, 다양한 형태의 특수고용 노동자 등 너무도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이 보편적 권리이며 노동조합을 통해서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다른 세상 사람들 이야기일 뿐이다. 자신이 당하는 현실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고, 누구에게도 물어보기 힘들어하는 것, 그런 상황의 노동자들이 이 사회에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광장의 촛불을 기억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를 넘어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고 모두에게 평등한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 가자고 외쳤다.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 냈다. 변화는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광장의 학생들은 평등한 나라라는 가치의 변화와 사회적 혁명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변화에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는 근본적인 가치 변화보다는 정권 교체라는 단기적 성과를 중심으로 광장의 요구를 대치했다.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나라라는 중요한 과제는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회사 정규직 채용의 성과를 냈다? 그런데 2020년 1월 ‘김포공항 보안 검색요원 집단 퇴사’라는 기사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 기사 말미에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글이 기억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는 고용의 불안정과 차별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자회사로의 정규직 채용이라는 성과는 고용은 보장되었지만,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절대적 빈곤도 힘들지만,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른 신분, 다른 처우를 받으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모든 사람을 더 힘들고 괴롭게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차별이 심화되어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돈이 제일이고, 돈이 신분을 만들었다. 월거지와 빌라충으로 부르며 사람이 아닌 벌레로 표현하는 초등학생들의 말은 누가 그 아이들에게 그런 가치를 심어 주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살고 있는 동네와 건물 규모가 신분을 결정하는 세상. 광장의 어린 학생이 외치던 ‘평등한 세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가치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에 절대적 가치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신분을 결정하는 세상은 노동이 당당하고 존중받는 나라가 아니다. 이 세상의 변화는 제도와 정치 권력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권리가 모든 국민이 가지는 보편적 권리가 되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혐오시 되지 않는 아주 상식적인 세상이 진짜 변화라 생각한다. 


가치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큰 성과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다 없어지거나, 기성세대가 변화의 주체에서 비켜나 변화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큰 변화의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진보’이기에 나는 항상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위해 실천할 때만 ‘진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나의 허물이 ‘진보’의 걸림돌이라면 나를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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