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정규직] 방송미디어산업 경향 및 노동실태

by 센터 posted Oct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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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2011년 종합편성채널의 출범, 2012년 공영방송사 정규직 구성원이 중심이 되었던 언론대파업, 2013년부터 본격화되었던 방송제작 인력의 중국 진출, 하지만 곧 찾아온 중국 정부의 한한령, 2016년 방송산업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스태프들에 대한 갑질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이한빛 PD 사건, 2017년 박환성·김광일 EBS 다큐프라임 외주제작 PD의 사고사, 2017년과 2018년 각각 비정규직 미디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권익 개선을 내세우며 출범한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과 방송스태프노조, 2018년 미풍에서 태풍이 된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서비스의 공습, 2020년 TBS 프리랜서 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2021년 서울행정법원의 MBC 프리랜서 방송작가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판결까지 지난 10년 간 방송미디어산업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수십 년간 이어져왔던 산업의 구조와 종사자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방송미디어산업은 시장과 기술의 변화가 고용형태 및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문이다. 그렇기에 다른 산업에서 일어나는 유사한 변화를 이해하는데 폭넓은 함의를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미디어산업 내 불안정 노동의 과거와 현재를 개괄하고,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 비정규직 미디어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

 

고용관계 측면에서 방송산업 노동시장은 공채 출신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굳건한 내부노동시장과 프리랜서 전문직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는 불안정한 외부노동시장으로 양극화되어 왔다. 전자의 경우 노동조합이 제공하는 제도적 보호망 속에서 안정적으로 숙련을 쌓는 반면, 후자는 영세 외주제작업체와의 형식적 고용관계 속에서 프로그램 단위로 이동하며 숙련을 개발한다. 이러한 양극화 구조는 2000년대 후반 케이블 TV의 부상 그리고 2010년대 초반 종편 출범 등으로 인해 변화가 기대되었다. 제작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덕분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고스란히 재생산되고 말았다. 외주제작 인력의 과로사와 촬영장에서의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부당해고와 인격적인 모독과 같은 방송사 정규직의 갑질 행위도 줄어들지 않았다.

한편, 청년노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방송산업은 열정페이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미디어산업에서 저널리즘의 가치를 실현하거나 창의성을 발휘하는 콘텐츠 제작 업무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방송사 공채를 준비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견업체를 통해서 업계에 진입한다. 이들은 카메라보조·사무보조·연출보조(AD)·무대보조(FD)와 같이 ‘보조’라는 이름을 달고 방송사 운영에 필요한 윤활유 역할을 맡는다. 최근에는 SNS 트렌드 분석과 같은 업무를 ‘젊은 감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담당하기도 한다. 수년간에 걸친 조사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전환 사례는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2년의 파견기간이 끝나면, 이들은 방송업계에서 경력을 이어갈지 말지 결정할 갈림길에 서게 된다. 면접조사에 응했던 이들 중 다수는 업계를 떠나는 걸 선택했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열정이 파견 노동자로서 보낸 2년간 빠르게 식기도 했고, 그들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은 프리랜서(독립PD, 방송작가, 방송스태프)로서의 커리어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방송미디어산업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외주제작업체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1.구인구직.png

미디어 전문 구인구직 사이트의 파견·계약직 모집 공고다. 경력/학력 무관 조건이 지망생들을 유인한다.

 

 

변하고 있는 것들: 정규직 노동시장의 변화

 

방송미디어산업 노동시장의 변화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정규직 내부노동시장에서 시작됐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일단 하나의 방송사에 공채로 입사하면 이직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종편의 출범과 함께 예능·드라마 PD를 중심으로 이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1)

 

1.그래프.png

2008년 이후 두 지상파 공영방송의 이직자 수

 

 

기업별 내부노동시장의 약화는 최근 보도 및 시사교양 부문으로 확산됐다. 2012년 파업의 주역이자 KBS 시사교양부문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 여겨졌던 한 젊은 PD의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로의 이직은 그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MBC에서도 최근 공채로 입사한 기자들이 1~2년 만에 퇴사하는 유례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시장논리의 확산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프리랜서 노동자는 이러한 변화를 ‘신분제’에서 ‘능력주의’로의 이행으로 바라보고 내심 환영했다. 실제로 PD·작가·스태프가 팀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높은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2) 이러한 변화가 외국처럼 독립 스튜디오 제작 방식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프리랜서/비정규직 제작 인력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목해야 할 변화: 고용형태 변화의 실험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적 이해대변체

 

한편, 방송미디어산업 고용관계의 미래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지만, 정치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가려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제도적 실험이 있다. 바로 TBS 비정규직 제작 인력 정규직 전환이다. 특히, 많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취해낸 프리랜서 방송작가 10명의 정규직화는 개별 조직 수준이 아니라 산업 수준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라디오나 TV 등 기존 제작 부서에서 기획·홍보·뉴미디어 제작 부서로 배치됐고, 프리랜서로서 쌓아온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 중 몇몇이 제작과 운영을 맡은 한 오리지널 유튜브 콘텐츠가 구독자 수를 빠르게 늘리기도 했는데, 이는 뉴미디어 분야에서 TBS의 경쟁력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KTV·아리랑TV·국악방송 등 문체부 산하 방송사들은 과거 TBS의 기형적 인력구조를 빼닮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 ‘무늬만 프리랜서’가 제작 인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3) 미디어 노동계에서는 이러한 방송사들로 TBS의 정규직화 사례가 확산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공영방송사로 확산되면서 산업 전반의 고용관계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과정에서 TBS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었고, 정규직화 정책실험을 합당하게 평가할 공론장은 여전히 열리지 않은 상황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변화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상술했듯이 방송작가유니온과 방송스태프노조는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산업 내 주요 행위자로 뿌리를 내렸다. 출범 이후 지난 4년 동안 다자간 사회적 대화의 장에 참여해 제도적 개선에 힘을 쏟았다. 이제는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조직화를 통한 성장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때라는 의견이 많다. 앞서 소개한대로 산업 구조 전반과 노동시장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주조해 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필수적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두 노조를 향한 더 많은 연대와 지지가 필요하다.

 

∙ ∙ ∙

 

1) 피디저널. “지상파, 드라마 PD 인력난 악순환”. 2018.7.3.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2147

 

2) 시사저널. “시도하는 것마다 대박 터뜨리는 ‘나영석 사단’의 성공코드. 2017.4.19.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811

 

3) 경향신문. “방송 비정규직 눈물 외면하는 정부 방송사들...‘무늬만 프리랜서’ 착취 만연”. 2022.10.17.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017110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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