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노동] 임단협이 먹고 사는 문제면 탄소 중립은 죽고 사는 문제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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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교육선전부장

 

 

그냥 좀 냅두라고

 

일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불량작업(NG)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간단한 문제면 무리 없이 수정작업이 가능하겠지만 어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겠는가.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기를 써보지만 일은 더 커지고 결국 라인도 멈춘다. 책임감이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야이씨! 손대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 일만 더 커진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 지구가 인간들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도 저 말이 아닐까?

 

‘지구를 지키는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해 지구를 수탈한다. “채굴 없이는 녹색에너지를 실현할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비장한 각오로 배터리 원료(희토류)를 얻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 광산을 개발해서 산과 강을 초토화하고, 해저 5000m까지 가서라도 희토류를 얻겠다고 용을 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전기차 부품과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서 새로운 공장을 세우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자랑한다. 100%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는 공장이라 괜찮다고? 허나 친환경 공장을 운운하기에 에너지 믹스는 처참한 수준이다.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고 애를 쓰지만 여전히 자연에 대한 수탈적인 개발이 앞서고, 그 속에서 이윤을 획득하기 급급하다. 그러니 지구가 말을 할 줄 알았으면 “일만 커지니 손대지 말고 그냥 둬”라고 하지 않겠는가?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 보자. 코로나19가 세계를 뒤덮고 확진자가 급증하자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비행기와 자동차 운행을 멈췄다. 공장은 부품 수급 중단과 확진자 발생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셧다운에 들어갔다. 인간의 생산적인 활동에 제동이 걸리자 미세먼지가 사라지며 푸른 하늘이 열렸고, 인간을 피해 떠났던 야생동물들이 도시로 모여들기도 했다.

 

재밌는 통계도 있다. 1년 중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날은 언제일까? 지구의 날일까? 아니면 환경의 날일까? 공교롭게도 나라 경제를 위기로 내모는 완성차 노조가 파업하는 날이다. 산업구조가 수직화되어 있으니 정점에 서 있는 완성차가 멈추면 연관된 다수의 부품업체도 생산과 납품을 멈춘다. 이윤에도 타격이지만 멈춘 만큼 탄소 배출도 감소한다.

 

2.광산.jpg

희토류를 채굴하는 중국광산

 

기후위기 노사가 공범

 

다시 현장으로 가보자. 반도체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화물연대 파업으로 부품 공급에 문제가 생기니 주야 800대 생산에서 400대로 생산량이 반토막 났다. 라인 가동률이 떨어지니 현장에는 간만에 여유가 생긴다.

A: “날마다 이러면 얼마나 좋아?”

B: “일주일이면 감지덕지지. 욕심도 많네, 행님.”

A: “암만 생각해도 하루 400대가 딱 맞는 거 같어. 800은 너무 많어.”

B: “생산량만 줄이나? 사람도 반토막 내겄죠.” 텅 빈 생산라인을 보며 여유를 만끽하는데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들려온다. 완성차 생산 특근 계획이 잡혔다.

A: “아니 부품 없다믄서 뭔 특근이여?”B: “우린 그래도 한 개지. 2공장은 세 개나 헌데요.”A: “세 개? 반도체 부족한디 정상가동률이 나오냐?”

B: “되는 대로 하는 거죠 뭐. 공바디 내보내면서.”

A: “날 더워 죽겠는데 돈독이 제대로들 올랐고만.”

B: “주문이 밀렸으니 한 대라도 더 만들고, 슬슬 하면서 특근비도 받는 거죠 뭐.”

A: “옘병 전기세도 안 나오겄다.”

 

자본주의 경제를 흔히 ‘달리는 자전거’에 비유하고는 한다. 쉴새 없이 페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맞닥뜨린 현실이 바로 기후위기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무한생산시스템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기업에 책임을 돌리지만, 노동자라고 기후위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새로운 공장이 들어설 때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더 많은 미래차 생산물량을 확보하라며 투쟁한다. 노사는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무한생산시스템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동안 노동자는 분배 정의 기치 아래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을 끊임없이 외쳤다. 이는 불평등한 분배 구조 하에서는 정당할 수 있을지 모르나 불타는 지구 입장에서는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 전기세도 안 나오는 특근은 노사가 지금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쉴 새 없이 페달을 밟고 있다는 일상적인 증거다.

 

사본 -2.피켓.jpg

 

자동차 부품산업 노동자도 산업 전환에 맞서 탄소 중립을 외친다.

 

임단협이 먹고 사는 문제면 탄소 중립은 죽고 사는 문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 활동을 내팽개치고 파업을 더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현실을 냉정히 보자는 얘기다. 현재 자동차 산업의 전기차 패러다임은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 OEM들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전기차 라인업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고, 더 많은 주행거리를 위해 고용량/고효율의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 내연기관차를 빠르게 대체하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홍보하지만 개발과 발전의 이면에 있는 새로운 파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전기차 패러다임만큼 극적인 그린워싱도 없다.”라는 일각의 주장을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마냥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자동차 부품산업 노동자들 역시 자본에 의한 일방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전환에 맞서 정의로운 산업 전환을 외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자동차 산업을 위해 탄소 중립을 전면에 내걸고 미래협약을 체결했지만 실천은 신통치가 않다. 산업 전환기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사관계의 핵심은 여전히 고용안정과 임금 극대화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에게 고용안정은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따라서 성장과 발전이 곧 고용안정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묵인하는 한편 그 속에서 임금 극대화를 추구해 왔다. 이러한 노사관계 프레임이 계속되는 한 탄소 중립 실현은 요원한 일이 된다. “임단협이 먹고 사는 문제면 탄소 중립은 죽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도 변화해야 한다. 임금 극대화를 위한 파업이 아니라 무한생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생산시스템이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 아니 그보다 지금의 전기차 패러다임이 진정으로 탄소 중립을 향해 가고 있는지부터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노동자가 또다시 공범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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