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_작은 것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 삶

by 센터 posted Dec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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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총명 맨홀 점검 노동자

 

 

2019년에는 우유 배달 일을 했고, 2020년과 2021년에는 맨홀 점검 일을 했다. 우유 배달은 7개월간 목동 지역에서 했고, 맨홀 점검은 2020년에는 하수도 맨홀 점검, 2021년에는 상수도 맨홀 점검을 각각 6개월씩 진행했다. 우유 배달과 상하수도 비정규 노동일지를 하나씩 기록해보았다.

 

택시 기본요금 3,800원, 맨홀 2,300원(2021년, 상수도 점검 기록)

 

맨홀 점검을 하다 보면 종종 차도로 들어가서 작업해야 할 때가 있다. 출근하는 차들로 꽉 찬 도로를 막고 교통을 통제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하다 보면 차도 안 무서워지고 기계적으로 일하게 된다. 생과 사, 경계 어딘가 있음을 느끼지만, 그 경계가 흐려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찌는 무더위와 피로는 경계를 잊고 맨홀 하나, 2,300원만 바라보게 만든다.

 

오늘도 출근길 6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맨홀을 점검하기 위해 가운데 차선을 통제했다. 꼬깔콘 세 개, 경광봉 하나 들고 달려오는 차량을 막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빵빵’ 경적을 울리며 무섭게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일하다 보면 어떤 믿음이 생기는데, 예를 들어 쌩하고 지나가는 차는 무섭지만, 저 차가 나를 해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운전자를 신뢰하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믿어야만 작업이 가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으면 보통은 통제에 따라 옆 차선으로 비키는 게 대부분이고 가끔 차선을 바꾸지 못해 차량 통제하는 내 바로앞까지 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무섭지 않았다. 그 차가 비킬 것을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차는 경적을 울리며 차선을 통제하는 내게 빠르게 달려왔고 나는 통제를 포기하고 옆 차선으로 몸을 피했다.방금 내가 있던 그 자리를 쌩하고 지나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넋이 나가버렸다. 놀라서도, 두려워서도 아니라 무언가 짓밟혔다는 느낌이 들었긴 때문이다.

 

주황색 라바콘 세 개로 최소한의 안전을 바란다. 웃기는 일이지만 그게 전부다. 차로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였다. ‘죽음의 외주화’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고 노동자의 일상이다. 맨홀 점검이라는 도시 정비 작업을 하다 보니 도시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기획되고 구성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효율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시키고 있다.

 

차로 출근하는 노동자와 차로 밑에서 점검하는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져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하루였다. 그저 내일은 차로에 맨홀이 많이 없기를···.

 

내가 서 있음에도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

뒷걸음질 치며 피하는 나

믿음이 무너졌다.

맨홀 한 개 2,300원에 경계는 흐려지고

택시 기본요금 3,800원에 믿음은 무너진다.

 

4.맨홀.jpg

 

향기 나는 오물(2020년, 하수도 점검 기록)

 

상수도와 하수도는 도시위생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공급은 상수도로, 배출은 하수도로 하는데 이 상하수도 청결이 도시와 시민들의 위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길을 가다 보면 같은 맨홀이지만 다른 이름이 쓰인 맨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수 맨홀은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 ‘하수’, ‘오수’, ‘우수’ 등이 대표적이다. 하수, 오수는 쉽게 말해 더러운 물이고, 우수는 빗물이다. 하수도에는 화장실과 주방에서 나오는 물부터, 공공 건물과 영업 건물에서 나오는 오물까지 산업 활동 폐기물이 끊임없이 액체로 배출되는 곳이기에 하수도는 더러울 수밖에 없다.

 

맨홀. 우리는 산업 활동 폐기물을 눈에서 감춰버렸다. 땅속에 감춰진 이 더러운 물은 내 발밑에서 계속 흐르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하지만 내 배설물이다. 그런데 맨홀을 열다 보면 희한하게 ‘향기’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더러운 물인데 향기가 난다. 세제와 샴푸 향이 더러운 물의 악취마저 감추고 있다. 이때 참 웃기다. 오물로 가득한데 내가 샤워할 때 나던 향, 밥그릇에서 오늘도 맡았던 향이 난다. 향기로운 독극물. 나는 악취인지 향기인지 모를 냄새를 맡으며 하수도를 점검한다.

 

눈에서도 감춰진 폐기물이 이제는 냄새까지 잃어가고 있다. 자연에도, 결국 내게도 해로울 향기인 걸 알지만 우리는 잠깐의 악취도 선을 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눈과 귀를 가리며 살고 있다. 오물 아닌 오물, 향기 아닌 향기를 맡으며 말이다. 예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하수가 역류해서 마을이 진짜 똥통에 빠진 것처럼 오물과 물로 뒤덮인 모습을 뉴스를 통해 매해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기술이 좋아져서 옛 추억(?)이 되었는데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인 오늘 하수 맨홀은 악취로 진동했다. 오물에서 나는 악취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비가 가리었던 눈과 막혔던 코를 뚫은 것 마냥. 마치 “나 여기 있다.” 하고 외치듯이 말이다.

 

우리는 맨홀 위를 걷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 나는 하수 맨홀 위를 걷는다. 더러운 걸 눈에 보이지 않게 하든 더러운 걸 알지만 향기 나게 만들든지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없는 ‘비’가 내리면 더러움이 눈에 보이고,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도시의 문제, 삶의 모순 등을 생각하게 된다. 비 내린 다음 날은 감추어졌던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날이다. 눈과 코를 씻고 하수 맨홀을 다시 본다. 내가 배출한 폐기물이 맞고, 그 폐기물엔 향기가 아닌 악취가 난다.

 

작은 것이 작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삶(2019년, 우유 배달 노동 기록)

 

우유 배달을 그만뒀다. 1월부터 7월까지 월, 수, 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목동6단지를 돌아다니며 우유 배달을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나와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불 꺼진 아파트 복도가 무섭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고, 배달 다 마치고 보니 우유가 한 개 남아서 처음부터 다시 확인한 적도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배달을 해야 했고 새벽 3시에 클랙슨을 누르는 사람들로 인해 15층에서 소리 내지 않고 뛰어 내려간 적도 있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조마조마한 일들이 더 많았다.

선명하게 ‘을’이 되어보니 나도 참 치사해지더라. 쿠팡, 신문 배달 아저씨들과 엘리베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다니 참 유치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더라.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는 날에는 선점하기 위해서 배달이 15층이면 15층, 16층을 눌러서 뺏기지 않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야 배달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하루는 15층, 16층을 누르고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쿠팡 아저씨가 씩씩거리면서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시더라. 왜 이렇게 무섭게 그러시지 봤더니 밑에서 계속 쿠팡 차 빼라고 클랙슨을 누르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빵빵빵 울려대니 마음은 조급한데 엘리베이터는 늦게 오고 엄청 초조하셨던 것 같다.

 

조금 빨리 끝내면 뭐가 좋을까? 나는 왜 엘리베이터에 집착했을까? 5분 일찍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거? 그 5분을 위해 양보와 협동을 뒤로한 것이다. 5분 절약을 위해 경쟁하고, 잡아먹으려 하다니 얼굴이 부끄러움에 달아올랐다. 이 작은 것도 못 하면서, 이 사소한 것도 양보 못 하면서. 그 뒤로는 웬만한 층은 그냥 계단으로 다녔다. 엘리베이터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잡으면 잡는 대로 이걸로 부끄러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작은 것이 작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 눈을 들어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더라. 그러나 그 세상에 작은 것은 절대 작은 것이 아니고, 사소한 것은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전부이게끔 여겨진다. 우리에게 허용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이런데 무엇이 삶의 기쁨일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일상의 회복이 필요하다.

일상이 인간답게, 사람 살아가는 세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통장에 찍힌 월급이 아니라 무엇이 기쁨이 될 수 있나?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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