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_하루

by 센터 posted Dec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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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숙 학교 급식실 조리사

 

 

‘바스락바스락’ 누렇게 변한 포플러 나뭇잎을 밟으며 소복이 내린 하얀 눈길을 걷다, 흩날리는 꽃들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물웅덩이에 운동화가 젖어 ‘내일은 레인부츠를 신어야지’ 다짐했다가 막상 부츠를 사려면 아이들 물건부터 사면서 차순위로 밀려 끝내 장만하지 못한 채 여름을 보내기 일쑤인, 경력 8년의 출근길 모습이다.

 

원거리 근무지에서 5년을 보내고, 근거리로 전보를 오면서 뚜벅이가 되었다. 뚜벅이의 장점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각 염려 없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크다. 출근 시간은 8시이다. 그러나 모든 직장인이 그러하듯 준비 과정이 있기에 7시 40분이 나의 출근 시간이다. 47세의 나는 9년의 해를 맞이했지만, 만년 막내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산다.

 

도착하면 네 명의 선배님들은 벌써 소독수를 만들고, 건조된 도구들을 정리하고, 물을 받고 있다. 아이들을 다 키운 50대 선배님들은 고등학생 두 명을 키우고 있는 후배를 배려해주고, 내 몫까지 해주고 있다. 뒤늦게 하얀 작업복에 모자를 쓰고, 비로소 소유하지 못했던 장화를 신어 본다. 예쁘기까지 한 분홍색 장화는 끓는 기름 200˚C까지 견딜 수 있는 미끄럼 방지 장화다. 어제의 고단함이 정리되어 가는 과정은, 열탕한 식기들이 소독고에서 잘 건조되었는지 확인하고, 배식차, 덤웨이터, 손이 가는 모든 곳에 소독액을 뿌려주고, 오늘 쓸 도마와 칼을 소독물에 담가둔다. 그리고 곧 오게 될 식재료 받을 준비까지 해둔다.

 

물을 한잔씩 마시고, 부상 방지를 위한 체조를 시작하면서 하루를 연다. 그러나 나는 물을 채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아침도 잘 먹지 않는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60세인 선배님도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일을시작하면 화장실을 가기 어렵고, 최대한 가지 않으려 하는 노력이다. 내년에정년을 맞는 선배님 이후 몇 년 사이로 두 명의 선배님들까지 정년이 예약되어있다. 우리 다섯 명은 600명이 넘는 급식을 맡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다. 정식 명칭은 조리사, 조리 실무사이다.

 

음식을 조리해야 하기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근을 한다. 그래서 어제의노동 강도를 다음 날에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푸석한 얼굴, 퉁퉁 부은 손,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통증···.

“손은 괜찮아?”

몇 해 전, 음식물 쓰레기통에 손이 깔리는 사고를 당한 한 선배님은 병원 치료에도 고질병이 되어버렸는지 테이핑을 하지 않으면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챔피언 벨트라고 부르는 복대는 허리가 아픈 맏언니의 것이다. 그것은 얼마 전 방광염으로 치료를 받았던 선배님에게 양보 되었다. 나도허리가 아프지만 차마 선배님들 앞에서 말하기가 미안해서 자석 파스를 몇 개 붙이고 출근했다.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데, 일반 파스는 냄새도 나거니와 오늘은 탕수육을 하는 날이어서 화끈거리는 파스는 튀김 열기를 몇 배로 되돌려 주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다.

 

식재료를 검수하고 전처리실에서 씻고 다듬고, 밑간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조리실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음식 조리에 들어간다. 식용유 18리터 세 통을 솥에 붙고, 물 반죽한 고기를 2인 1조로 튀겨 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로 숨이 턱 막혀 온다. 모자 속에 두툼하게 말아 넣어둔 종이 타올 덕에 다행히 땀은 기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대량으로 들어간 고기들이 뜰채로 털어줘도 미처 떨어지지 않은 것을 떼어주느라 손이 익어가는 느낌이다. 고무장갑 속에 있는 면장갑은 이미 땀으로 젖어서 기름 열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맏언니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땅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핑 도네. 속도 메스껍고.”

“ 더위 먹은 거 아니에요?”

우리는 체했나 싶어 소화제를 먹이고, 손가락을 따고, 아니면 더위를 먹었나 해서 에어컨 앞으로 데려가 찬바람을 맡게 했다. 그동안 다른 선배님이 와서 고기를 넣어 주었다. 잠깐 혼자 넣으면서 튀겨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학교급식은 교차오염 때문에 그리해서는 안 된다. 조리된 음식을 최대 두 시간 이내에 배식하는 이유도 식중독 예방을 위해서다. 그렇기에 우리는 원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살인적인 배치기준으로 누구 하나 삐끗했다가는 제시간에 급식이 못 올라가는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맏언니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도 다시 돌아왔다.

 

3.급식.jpg

기름 솥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학교 급식실 조리사들

 

다 튀겨진 탕수육은 재 튀김을 해서 배식 전까지 온장고에 넣어 온도를 유지해 준다. 장갑과 앞치마는 조리 전과 조리 후로 철저히 구분한 뒤 교체하면서 탕수육 소스, 국, 밥, 나머지 반찬, 김치를 썰고 후식을 준비해 온장고와 냉장고에 넣어 세팅 준비를 한다.

 

나도 정신없이 튀김을 하느라 잊고 있던 통증이 조리가 끝나니 올라왔다. 가슴 밑이 헐어서 이번 여름은 고생했다. 땀띠야 여름에는 달고 살지만, 점차 기후가 동남아처럼 변해가는 탓인지 여름에 튀김 요리만 하고 나면 헐어버렸다. 수건으로 덧대어 견디지만, 튀김을 하는 날이면 수건마저 젖어 쓰라림이 다시 시작됐다. 이 고통을 끝내는 것은 방학해서 몸을 쉬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방학을 하면 일당제로 바뀌면서 월급이 나오지 않아 생계 걱정을 하게 되니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입사할 때만 해도 학생 수가 줄면 감원을 강행했다. 동료 간에 설문지로 서로 평가를 해서 누군가를 퇴사시켰다. 비인간적이라 느껴서 나는 내 점수를 형편없이 평가해서 언젠가 다가올 감원 대상을 나로 정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1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고, 전보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5년 이상 근무자 포함 감원 대상자를 퇴사시키지 않고 다른 학교로 발령내 주었다. 그러면서 무기계약직이 무슨 비정규직이냐 라는 조롱 섞인 발언들이 나왔다. 그러면 학교 공무직들이 정규직일까?

 

공무원이 아니기에 공무원법을 적용받지 않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이면서, 물리적인 공간은 학교이기에 어떤 것은 적용하고 또 어떤 것은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하는 일은 같은데 지역마다 처우나 지침이 다르고 공무원이 아니기에 공무직 법을 만들려고 해도 번번이 무산되었다. 떼를 써서 시험도 안 보고 들어온 것들이 공무원을 하려고 한다는 가짜뉴스가 늘 발목을 잡았다. 심지어는 공무직이 공무원 월급보다 많다는 언론도 등장했다. 신의 직장이라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며 다 자르고 시험 쳐서 다시 뽑으라는 악플을 볼 때마다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다. 공무직도 교육청에서 시험을 쳐서 뽑고 있으며 그것이 공무원법을 적용하면 공무원이 되는 것이고, 아직 없는 공무직법을 적용하면 공무직이 되는 것이라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은 대부분 경력단절 여성이면서 자식들 잘 키워보겠다고 나온 어머니들이라고. 그래서 힘에 부치고 박봉이라 느끼면서도 그냥 인내하는 세월을 산 거라고.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1년에 학기별로 두 번, 공고문을 내고 뽑고 있으니 제발 많이들 지원해주기 바라고 있다. 이제는 위험하고 박봉이라는 소문이 난 것인지 14명 미달 사태가 나기도 했다. 우리 지역은 미달 사태까지는 아니어도 예비 합격자들을 입사시키고도 중도 퇴사자가 많아 다시 공고 내기를 여러 번 하고 있다. 그나마도 몇 년 후면 정년을 맞이할 신입사원들이 입사해 나 같은 40대들은 막내라는 이름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209시간 기준 182만 2,480원이다. 8년 경력 나의 연봉은 2천 600만 원이다. 누군가에겐 큰 임금일 것이다. 이 임금을 부족하다고 느끼면 도둑 심보일까?

 

입사하고 몇 달은, 아침마다 부은 몸 때문에 발을 땅에 디디지 못하고 기어 다녔다. 온갖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버티는 이유가 있다. 힘들면 그만두라는 비아냥에도 꿋꿋이 맞서는 이유는 단 하나! 나는 자식을 키워내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2021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집마다 가장이 아버지 한 명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가장 두 명이 열심히 일해야 겨우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기에 그냥 인내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그래서 몸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서라도 급식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 나이고 우리 선배님들이다.

“괜찮아요?”

사람이 아프면 이 말을 먼저 건네는 것이 인지상정일 진데 교실 배식이라 배식 차를 올리고 나서야 맏언니에게 말을 꺼냈다.

“토할 거 같아.”

“들어가 좀 앉아 있어요.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요.”

“어떻게 그래? 다들 힘들어서 안 돼.”

기어코 선배님은 전처리실 청소를 시작했다. 1차 배식 차를 올리고도 조리실은 업무가 끝나지 않았기에 전처리실로 향했다. 코로나19로 인해 3차 배식을 하고 있어서다. 여러 번 나눠서 무치고 끓이고를 반복하다 보니 업무는 평소보다 더 가중됐다. 그러나 누구 하나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는 것인가 싶어 너무 서운하다.

 

조리실까지 1시가 넘어서야 겨우 정리하고 점심을 뜬다. 맏언니는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나 미안한데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뭐가 미안해요. 우린 다 베테랑인데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요. 얼른 병원부터 가봐요.”

우리는 웃으면서 거짓말을 했다.

맏언니를 보내고 네 명이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를 만큼 2차 청소에 들어갔다. 급식이 끝난 배식 차를 내리고, 잔반을 모으고 세척 후 열탕을 한 다음 소독고에 정리한다. 겹쳐진 식판을 떼면서 손톱이 또 찢어져 버렸다. 악 소리가 나는 고통이 밀려와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트렌치부터 바닥까지 청소하고 물기를 제거한 다음 내일 수저통을 소독고에 쌓아 놓아야 하루가 정리된다. 오늘 밤에는 몸이 펴지지 않으리라. 또 만세를 하고 자야겠구나.

 

저녁 늦게 카톡이 왔다. 맏언니 소식이었다. 요로결석이란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지침도 받았단다. 그래서 막내도 이제부터는 물을 많이 마시라 했다. 안 그러면 요로결석이라는 병이 기다린다는데 참 난감하다. 물을 먹지 않아서 요로결석에 걸릴 것인지, 참아서 방광염에 걸릴 것인지, 너무도 가혹한 운명 앞에 놓였다. 누구 하나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을지라도 허공에라도 대고 말해야겠다. 모두 아프지 말라고, 제발 우리 좀 살 수 있게 이 살인적인 배치기준을 조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학교에는 학생과 교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관심 없는 그 구석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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