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최우수상_내 오토바이 최고속도는 65

by 센터 posted Dec 30,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라이더유니온 최고속도65 배달 노동자

 

 

벌써 2년이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가는 것을 최근에 더 느끼는 하루하루인 듯하다. 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권고를 거부하고 2019년 12월 31일 해고되었다. 내가 면접하고 교육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성실함이, 나의 정규직 일자리에 영향을 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회사의 고정비용을 낮출 수 있는 비정규직 입사와 교육을 했던 성실한 직원이었으나, 나 또한 하나의 숫자로 그렇게 정의된 것이다. 회사는 그렇게 정규직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변경했다.

 

퇴직금 및 해고예고수당 소송을 2년째 하고 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으나 사 측은 불복하고 항소했다. 2심은 6개월 또는 1년이 더 걸린다는 문자, 이 지루한 게임에서 나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시간은 2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사 측은 2년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듯하다. 생전 처음 소송에 관한 자료와 서류를 작성할 때, 진행 상황이 문자로 올 때마다 심장은 무거워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노동자를 위한 고용노동부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법은 약자인 노동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절차와 긴 시간에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 긴 시간은 언제 끝날지, 법의 시간은 느리기만 하다. 나의 시간과는 다른 시계일까?

 

특집_오토바이.JPG

라이더유니온 스티커가 붙은 배민 오토바이 

 

2019년 10월 운동 삼아 전기자전거로 배달 일을 해보았었다. 플랫폼의 구인광고가 매일 홍보되었고, 용기를 내어서 해보았다. 별다른 절차 없이 쉽게 배달 업무를 할 수 있었다. 대형 플랫폼의 홍보로 많은 사람이 배달했고, 운동 삼아 했기에 부담도 없고,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음식 픽업하러 매장에 갔을 때 기존 배달 노동자의 시기 어린 시선을 느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에서 알았지만 그들의 노동시장에 내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고난의 연속일까. 해고 후 2020년 1월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나는 전기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변경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대형 플랫폼은 오토바이를 리스해주고 배달 일을 주업으로 할 수 있는 절차를 안내해주었고, 간단한 안전교육과 특수고용 노동자를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낮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시작 시동을 걸었다. 난 오토바이를 탄 적이 없지만, 대형 플랫폼은 이를문제 삼지 않았다. 영상으로 보는 안전교육과 첫 배달을 기존 근무자의 도움으로 함께 한 건 배달을 해보는 교육으로 플랫폼의 작은 톱니바퀴로 달리기 시작했다. 배달한 지도 2년이 넘었다. 이륜차 배달 업무는 새로운 경험과 내가 그동안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날 인도했다.

 

그때는 오토바이로 10시간 넘게 근무한다는 것이 힘들 줄도 몰랐다. 나의몸은 계속 진동에 노출되어 누적 피로가 쌓이고 쌓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가족에게 이러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비정규직이어서 나의 의료보험은 아내의 회사보험으로 변경되었고, 국민연금 납부를 중지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쉼 없이 달렸다. 교통질서를 무시하며 달리는 것도 가끔 재미있고, 교통 위반 단속을 당하지 않고 계속 위반하는 것도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교통 위반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신나게 나의 100cc 민트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았다. 더운 여름, 밖에서 땀을 흘리고, 내 피부는 검게 변했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는 비비크림으로 변신을 하고 인사드렸다. 여름이 더운지도, 겨울이 그렇게 추운지도 모르게 달리고 달렸다. 배달은 주말에 더 많은 일이 있어 주말에 가족과 함께 지내는 평범한 일상은 포기했다. 교회에 가던 일요일마저 코로나로 갈 수 없게 되어 나는 더욱 일에 집중하고 달리고 달렸다. 여름에는 아이스 팩을 헬멧에 넣고, 겨울에는 열선 조끼로 이겨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한국도 예외일 수 없었다. 많은 매장이 폐업했고, 폐업한 사장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처럼 배달했다. 공유주방과 많은 매장에서 배달 음식을 만들어냈고, 외출이 어려운 이유로 배달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신이 없었다. 멈출 수도 없었다. 대형 플랫폼의 시스템은 경험 많은 라이더보다는 신규 배달 노동자를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업무 약관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동의하지 않으면 근무는 불가능했다. 신규 배달 노동자 구인광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배달 앱도 경험으로 매출이 높아지는 형태에서 오늘 처음 근무자들과 베테랑 배달 노동자의 매출 차이도 거의 없게 되었다. 점점 지쳐갔다. 그날그날의 수익으로 피곤을 이겨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온 것을 느꼈다. 엘리베이터의 사람들은 날 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큰 빌딩들은 나를 화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TV에서는 오토바이 난폭운전이 연일 보도되고 플랫폼 운영의 문제점도 보도되었다.

 

나의 작은 100cc 오토바이는 그래도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좀 여유가 생겼을 때 한 사람 두 사람 동료들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고···. 10시간이 넘는 운행에서 나 역시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지만, 이렇게 계속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늦지 않은 깨달음일까? 그날 가족과 외식을 하며 다짐했다. 나의 안전이 가족의 행복인 것을.

 

나도 어느덧 배달 베테랑이 되었다. 좋은 배달과 나쁜 배달을 구분하고 시간에 늦지 않게 고객 만족을 위해 달렸다. 신호를 잘 지키며! 작년 더운 여름날 지친 나에게 배달 노동자 실태조사 설문을 조심스레 요청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일하는 노동 환경의 통계를 필요로 하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그때까지 배달시장이 이렇게 성장한 것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설문지를 건넨 분은 배달 노동자의 노동조합 회원이었다. 노동자로 많은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배달 노동자의 노동조합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처음으로 노동조합 모임에 가입하고 노동자의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게 된 중요한계기가 되었다. 이날로 나는 비정규 노동자가 아닌 그보다 더 낮은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를 대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족한 법령과 잘못된 현실을 알리고 국회 간담회, 신문기자와의 인터뷰, 각 기관의 회의까지. 플랫폼 회사 정문에서도 외쳐 보았다. 계속되는 여러 기회를 통해 배달 노동자의 삶을 알리고 문제를 소리쳤다.

 

배달 노동자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다. 안전과 속도, 하루의 매출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플랫폼은 노동자의 매출과 상관없이 끝없이 신규 모집을 하고 있고, 배달은 무한경쟁 시대가 되었다. 2년이 되었지만, 오늘 처음 일하는 노동자와 나의 배달 경험에 매출 차이가 크게 없다. 플랫폼의 일방적 약관변경과 배달 앱의 변경은 배달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루어진다. 배달 단가는 초 단위로 변경되고,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같은 일을 하지만 지역별 단가의 차이와 프로모션으로 같은 시간 같은 배달을 해도 매출에 차이가 난다. 타 대형 플랫폼에서 시작한 단건 배달로 매출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 많은 배달 노동자의 수는 줄지 않고 있고 코로나 또한 끝이 보이질 않고 있다. 근무 시간을 10시간에서 11시간으로 더 늘려 줄어든 매출을 유지해야 한다. 누적된 피로로 어깨와 팔꿈치 팔목까지 통증이 생겼다. 나의 100cc 오토바이 누적 킬로미터는 어느덧 74,000을 넘어섰다.

 

많은 사람이 배달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부담은 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동운동을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배달하는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냈고, 쉬는 날 노동조합 활동을 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내 주변 배달 노동자에게 함께하자고 알렸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했다. 노동운동에 부정적이고 사 측이 차별하지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주저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먼저 시작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 힘이 되었다. 내가 속한 노동조합은 2018년 더운 여름 폭염 수당 100원 인상을 위해 거리에 멈추어진 한 대의 오토바이를 시작으로 서울 각 구에 지역장을 두었고, 지방에도 지부들이 생기고 있다. 전국에서 많은 배달 노동자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희망이 있음에 힘이 된다. 더 많은 배달 노동자가 같은 마음으로 잘못되고 미미한 현실을 바꾸는 것에 인내와 끈기로 한발 한발 전진하는 모습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나는 이제 배달 노동자의 노동조합 모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관계기관 두 곳에서 안전 강사 교육 수료를 했고, 기회가 되면 노동자 모임에서 안전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멈춰야 한다. 안전한 속도를 알리고 있다. 내가 늦게 깨달은 안전을 알리고 전파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 노동운동과 비정규 노동운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가 될 것이란 것을···.

 

오늘도 나의 민트 100cc 오토바이를 충분히 예열하고 달리고 있다. 비록 최고속도 65밖에는 못 내지만 희망을 위해 오늘도 신나게 달려본다. 이글을 통해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큰 역할을 해내고 있는 많은 배달 노동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