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공제] 노동운동의 플랫폼이 될 노동공제회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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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진 한국노총 플랫폼노동공제회추진단 본부장

 

 

한국노총은 가사서비스·대리운전·택배·프리랜서 강사 분야의 비정형 노동자 단체들과 함께 (가칭)한국플랫폼노동공제회(이하 노동공제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진행된 설립의 필요성과 방안에 대한 조직 내부적 검토와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올 초 공제회 준비기구를 정식 발족하여 기본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오는 8월 25일 발기인 대회를 거쳐 10월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4.모금.jpg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이 플랫폼노동공제회 설립을 위한 모금 운동으로 모은 모금액을 전달했다.(@한국노총)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비정형 노동 확대

 

노동공제회는 한국노총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충분히 무르익은 운동 전략의 산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기존 사업들과 비교해 다소 급하다 싶을 만큼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는 비정형 노동 확대와 같은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지금이라도 최대한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물론 노동 환경의 변화가 최근에야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과 함께 이루어진 경제 금융화와 기업 경영 전략의 변화 속에서 고용 유연화의 밀물이 이미 전 산업 부문에 파고 들었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표준적 고용 관계로 묶어두지 않고서도 노동에 대한 업무 지시와 감독이 가능한 영역을 넓힘으로써 비정형 간접고용의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OECD는 이미 2015년 보고서에서 회원국 전체 고용의 3분의 1이 비정형 노동1)이라고 추정한 바도 있다.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은 대표적 비정형 노동으로서 기간제·파견 등 기존의 전형적인 비정규직과는 또 다르게 전속성이 상대적으로 더욱 약하고 노동자에 대한 지휘·통제 또한 알고리즘 속에 은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벗어 던지고 각종 규제 회피를 초과 잉여의 원천으로 삼고자 하는 자본의 새로운 이윤 확대 수단이 되고 있다.

 

플랫폼노동공제회가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한국노총은 왜 노동공제회를 주요 대응 전략으로 삼아 추진하는가? 먼저 노동공제회가 플랫폼·비정형 노동자를 위한 공적 사회안전망의 보완장치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 비정형 노동자는 노동법상 권리와 사회보험을 통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소득이 불안정하며, 업무상 재해 위험도 크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지켜지지 않고, 직업 훈련과 경력 개발의 기회도 빈약하다. 이처럼 불안정 노동의 확대는 경제·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약할 것이므로 현재 각국 정부는 소위 취약 노동자의 사회적 보호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용·산재보험 적용 범위 확대 및 플랫폼종사자보호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서 플랫폼·비정형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한국노총의 기본 입장은 노동법과 사회보험 체계로의 포섭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방식과 계약 형태가 달라졌어도 종속 상태인 노동자의 노동력을 원천 삼아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의 작동 원리가 동일하고 노사관계의 극심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한, 일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노동 조건과 권리를 부여할 필요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노사관계와 정치적 환경에서 노동법 적용 대상을 과감히 확장하는 온전한 입법이 이루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제도 개선과 실제 적용이 현실적 장애들로 인해 늦춰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노동공제회가 과정상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꾸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기업 복지가 부재한 비정형 노동자들이 노동공제회의 상호부조와 복지 사업을 통해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층적 보호망 효과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직업별 특성에 맞는 공제보험 상품을 통해 작업 수단의 구매·관리 비용 및 관련 보험료 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거나, 금융기관 대출이나 각종 사회서비스 이용 시 필요한 경력·소득 증명도 노동공제회의 주요 기능이다.

 

조직화의 계기를 만들어줄 노동공제회

 

노동공제회 설립을 추진하는 더 큰 이유는 플랫폼·비정형 노동자들 스스로 이해대변 역량 강화와 조직화를 위한 거점 마련의 필요성 때문이다. 최근 확대되는 새로운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은 대체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이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파편화된 업무를 개별적·분산적으로 수행하고 스스로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인식이 낮아 자생적 조직화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플랫폼·비정형 노동의 특성상 노조로의 단선적 조직화 모델보다는 공제회라는 인큐베이터를 통해 당사자들이 모여 스스로 조직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조직 활동을 지원하는 새로운 조직화 경로가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노조나 협동조합들이 공제회 운영조직으로 참여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직종별 모임을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각 조직의 확대를 추구할 수 있는 ‘플랫폼비정형 노동운동의 플랫폼’으로서도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설립 취지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동공제회 준비과정에서 강조한 것은 다음과 같은 방향이다.

첫째는 자주성이다. 자조적 조직으로서의 성격이 우선되어야 한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초기 단계부터 기업이나 정부 지원에기대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노총산하조직 모금과 노사 공동 연대기금 지원을 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주적 운영구조를 확립하고 안정적 재정 운용 구조를갖추면서 향후 정부나 지자체, 기업의 후원을 통한 규모 확대를 추구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둘째는 독립성이다. 공제회의 독립적 지배 구조와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민주적인 운영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가입 대상자들이 가질 수 있는 심리적 문턱을 최대한 낮추고 공제회에 대한 공신력을 높임으로써 가입자를 빠르게 확대하는 한편 외부 지원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확장성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다. 공제회라는 기구가 플랫폼 노동자뿐만 아니라 소규모 영세사업장, 특수고용, 단시간 노동자 등 비정형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조직화를 위해서도 효과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공제회의 초기 가입대상으로 플랫폼 노동자뿐만 아니라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 직종을 설정하고 있으며 점차 타 직종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향후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말 그대로 ‘한국노동공제회’로의 발전까지 기대하고 있다.

아직은 설립 전이고 무수한 제약과 고민거리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플랫폼노동공제회는 21세기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노동자 운동의 적극적 대응 전략의 하나로 새로운 조직화 모델을 제시하고 거점을 마련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노총은 당사자들 조직과 함께 그 가능성을 공제회의 실제 설립과 사업을 통해 실천적으로 검증해 나갈 것이다. )

 

∙ ∙ ∙

1) 국제노동기구(ILO)는 이 보고서에서 비정형 노동(Non-standard forms of employment)을 임시 고용, 단시간 고용, 다자간 고용 관계, 위장 고용/종속자영업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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