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플랫폼 노동 문제 해결에 우회로는 없다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대리운전을 중심으로 바라본 플랫폼 노동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플랫폼 노동이 사회 이슈로 주목받는 가운데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특수고용이면서 플랫폼 노동자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재난을 겪으면서 필수 노동자로도 불린다. 플랫폼 전성시대, 대리운전 노동을 통해 플랫폼 노동의 변화를 돌아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본다.

 

정부의 의도된 방치와 업체 횡포, ‘자발적 착취’를 통한 생존 질주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음주운전 단속이 강화되면서 1990년대 초반에 대리운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리운전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자가용 출퇴근이 많아지면서 대리운전 이용도 대중화되었다. 기업은 IMF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운전 직무를 대리운전으로 대체했다.1) IMF 이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과 경쟁에서 밀려난 자영업자들이 당장의 생계를 위해 대거 대리운전 시장에 흡수됨에 따라 대리업체들은 노동력을 용이하게 공급받았다. 아울러 대리운전 프로그램사는 통신시스템의 급속한 발달로 대리운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대리운전업이 체계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업체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었고, 업체 간 경쟁이 심화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대리운전 시스템이 효율화되면서 편의를 증대시키고 시장을 확대했다. 하지만 주도권을 쥔 업체들의 전횡이 본격화되면서 경쟁에 따른 비용과 수익 감소를 대리기사에게 전가해 생존권까지 위협했다.2)

 

대리운전 노동자들도 조직적 대응에 나섰다.3) 2005년 조직한 대구지역대리운전노조는 조합원들을 해고하겠다는 업체에 맞서 끝까지 투쟁했고, 결국 2012년 지역 업체들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대리운전 요금과 수수료, 적정 기사 수를 정했고 복지기금을 조성해 쉼터를 운영하고, 경조사 지원 등 복지사업까지 벌인다는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언론에서 ‘대리운전 기사의 천국’이라는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대구 지역의 투쟁과 성과에 영향을 받아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출범했고, 전북과 대전에서는 파업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중적 조직화로 안착하진 못했다. 핵심 원인은 업체들의 탄압과 이를 부추긴 정부의 노동기본권 배제였다. 대부분 업체가 교섭을 거부하는 가운데 대전에서는 파업 장기화로 생계위기에 내몰린 노조가 관제실을 점거하자 곧장 공권력에 의해 강제해산 당했다. 어렵게 단체협약을 맺은 대구와 전북도 업체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했다.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에게 업체와 공권력의 탄압은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조합을 통한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저항이 무력화되면서 운동장은 급격하게 기울었고 업체들은 계약 해지와 기사 등급제를 이용해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저항을 봉쇄하면서 전횡을 일삼았다. 20%가 넘는 고율의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 보험료와 프로그램비를 대리운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도 모자라 중간 갈취를 일삼고 심지어 출근비를 강요하는 등 업체들은 ‘기사장사’에 혈안이 되어갔다.

 

IMF 이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과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생계를 위해 진입장벽이 없는 대리운전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업체들의 이윤을 위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대리운전업의 시장 규모가 4조 원에 이르고 대리기사 수가 2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강화되는 사회적 불안을 완충하는 사회안전판으로 대리운전 시장을 활용하면서도 대리운전업 제도화를 방치했다.4)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이중의 배제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늘리는 ‘자발적 착취’ 구조에 내몰렸다. 장시간 야간 노동이 장기화하면서 건강을 담보로 한 생존 질주를 이어오고 있다. 결국, 대리운전 시장은 정부의 의도된 방치와 노동기본권 배제 속에서 확실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으며 대리운전 노동자의 생존은 물론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대리운전.jpg

2020년 8월 14일, 대표적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 본사 앞에서 대리운전 노동자 생존권 보장과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고, 정식교섭을 요구하며 진행한 기자회견

 

골목시장 VS 골목깡패, 쌩까기와 희망 고문

 

대표적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는 2016년 ‘대리운전 기사의 권익 증진’, ‘대리운전업계의 불합리한 관행 해소’ 등을 내걸고 대리운전 시장에 진입했다. 당시 갑질 전횡을 휘두르던 기존 업체들은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며 결사반대한다고 나섰지만, 대다수 대리운전 기사는 골목깡패들에 맞서 카카오의 시장 진입을 지지했다.5) 정부 중재로 기존 업체 대표들과 카카오는 수수료 20%를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 대신 기사에게 부담시켜 온 대리운전 보험료와 프로그램비를 부담하고 기타 비용을 대리기사에게 전가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카카오는 노동조합을 존중하겠다는 취지에서 기사 모집 과정에서 노동조합 참여를 인정하였고 현장 기사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포함한 기사 단체와 MOU를 맺고 자문회의를 열었으나 거기까지였다. 자문회의에서 제기되는 현장 요구는 들어줄 뿐 정책은 의도된 AI의 판단으로 결정되었다. 심지어 프로서비스라는 명목으로 프로그램을 유료화하는 등 기존의 사회적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플랫폼 기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흐름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은 시장 진입 초기에는 사회적 마찰을 줄이고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유화 정책을 펼치다가 시장에 안착한 뒤에는 이윤 중심으로 회귀한다. 미국에서는 우버가 시장 확대를 위해 장거리 고객에 대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우버 기사들의 투쟁을 촉발했다.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던 벨기에의 협동조합 SMart와 배달 플랫폼 기업인 딜리버루의 교섭은 딜리버루의 변심으로 중단되었다. 국내에서도 노동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이던 배달의민족은 매각 이후 배차 시스템과 배달 수당 등의 정책에서 우아하지 않은 형제로 회귀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정식교섭을 통한 문제해결에 나서게 되었고,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통해 2020년 7월 17일 국회 앞 단식농성 후 5년, 노조 설립신고 428일 만에 신고필증을 받았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는 교섭을 거부하였고, 노동위원회 결정에도 불구하고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19로 대리운전 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확대한다고 하였으나 희망 고문일 뿐이었고, 노조가 89일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투쟁을 한 이후에야 행정 편의주의 산물인 ‘전속성 기준’ 폐지를 공식화했다.6)     

 

노동의 회색지대, 플랫폼 노동의 전망과 과제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플랫폼 산업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플랫폼 노동도 증가하며 노동시장을 포함해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협의의 플랫폼 노동자는 22만 명, 직간접적으로 플랫폼을 이용하는 종사자는 179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플랫폼 노동은 배달과 대리운전 등 모빌리티 업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화물 운송 전반, 가사 노동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향후 서비스, 건설과 제조까지 플랫폼화가 시도되고 있어 특정 직종의 노동 형태가 아닌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 경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플랫폼 노동의 핵심은 노동 쪼개기(gig)다. 플랫폼은 필요할 때만 노동을 불러내고 노동(crowd)은 언제든지 호출에 응하기 위해 대기한다. 안정된 고용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자본은 신자유주의 이후 고용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서 나아가 고용 관계를 아예 부정하려 하고, 플랫폼 기업은 고용이 아닌 중계라고 우긴다. 이미 특수고용에서 나타났듯 개별 자본이 고용을 은폐하는 것에 발맞춰 총자본으로서의 국가는 적정한 생활 수준과 안전을 제공해야 할 대상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배제했다. 이중의 배제 속에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발적 착취를 통한 생존의 질주를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플랫폼 노동의 확대를 가속화 했고, 플랫폼 노동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 사회문제화되자 정부 여당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플랫폼종사자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플랫폼 노동을 보호한다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나 이 법의 본질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할인하고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면해주는 대신 중개자로서 책임을 묻고 있다.7) 이미 노조필증을 받은 대리운전과 배달의 경우에는 노조법을 우선 적용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교섭을 해태하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 사례를 보았을 때 교섭을 강제하기 어려울뿐더러 더 큰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대다수 플랫폼 노동자들에게서 헌법과 노동조합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단체행동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루어졌던 실태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듯 대리운전과 배달뿐만 아니라 화물과 돌봄,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같은 온라인을 포함한 대부분 플랫폼에서 높은 수수료와 일방적 횡포가 문제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결정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윤을 얻고 있는 플랫폼 기업을 사용자로서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뛰어들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수준에서의 논의와 모색이 필요하지만, 노동기본권을 우회할 수는 없다.

 

플랫폼 노동이 당면 과제가 된 정부를 포함해 각계에서 발 빠른 대응을 주문하고 약속도 하고 있지만, 정작 플랫폼 기업들은 날고 있으며 당사자인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더디기만 하다. 플랫폼 노동은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의 문제를 넘어 이미 전 사회적인 과제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최소한의 사용자 책임과 고용 관계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이후 투쟁을 통해 쌓아온 노동3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다. 이를 막지 못한다면 노동은 처절한 자본주의 경쟁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플랫폼 노동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우회로를 찾기보다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당사자들의 조직화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전 영국의 산별노조인 GMB는 우버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전국대리운전노조도 한국 사회에서 플랫폼 노동으로는 처음으로 조정 절차를 거쳐 단체행동권을 쟁취했고, 이제 조직하고 싸우는 일만 남았다. 

 

------------------------------------------------------------------------------------------------------------------------

1) 2008년 농협중앙회 11층 건물에서 밧줄에 매달린 채 고공농성을 벌였던 배삼영 농협중앙회 비정규지부장은 정규직이었다가 IMF로 해고되었고 비정규직으로 해고와 복직을 반복했다. 지금 농협중앙회는 그의 업무였던 운전 직무 대부분을 정규직에서 기간제, 파견직으로 운용하다 특수고용인 대리운전을 활용하고 있는데 플랫폼 노동으로도 불린다.

 

2) 이동노동 종사자 지원방안 연구, 이철·김주환·이영수, 서울노동권익센터, 2015.11.

 

3) 초기에는 전국적으로 기업별로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내적 역량과 지역시장을 기반으로 한 대리운전업계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지역노조로 재편되었다. 대구에서도 업체를 대상으로 노조 활동을 시도하다 2011년 지역노조로 조직 변경 신고를 하였고, 2012년 지역노조들이 모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을 건설하였다.

 

4) 정부는 대리운전업과 관련해 시장 자율에 의한 규범 확립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신용불량 등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대리기사들에게 진입 장벽을 높일 경우 생계가 문제 될 것이라며 대리운전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야 할 실업과 신용문제를 완충하고 회피하기 위해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정부가 한 것이라곤 업체들의 횡포 속에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협은 물론 고객들의 안전까지 사회문제가 되자 ‘대리운전보험’ 의무화 등을 조치했는데, 그 비용도 고스란히 대리운전 노동자 부담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미 2002년 대리운전법을 제정해 제도화하였는데 일부 특수고용 형태도 있으나 대다수 고용 관계에 있으며 택시기사보다 급여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대표적 대리운전 업체인 디디추싱도 대리운전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는데 급여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아 청년층이 선호하는 직군으로 알려져 있다.

 

5) 카카오의 시장 진입 이후에도 기존 업체들은 카카오가 시장에 안착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카카오 배차프로그램을 까는 기사들을 일방적으로 배차 중지했다. 이에 맞서 노동조합은 기존 업체들의 횡포에 맞서 싸웠고, 결국 기존 업체들은 배차 제한 정책을 포기하면서 카카오가 시장에 안착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6) 정부는 그동안 14개 직종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특례적용하였는데 전속성 기준 적용으로 당시 20만 명의 대리기사 중 17명이 적용 대상이었고 그중 임의가입 방식으로 4명 만이 가입한 상황이었다.

 

7) 정부 여당은 플랫폼종사자법과 함께 직업안정법도 동시에 개정하려 하고 있다. 직업안정법에는 ‘노무 중개·제공 플랫폼’을 ‘노무 제공 계약 체결을 위하여 정보를 제공하거나 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기능을 하는 장치 또는 체계’로 정의함으로써 플랫폼 사업자에게 노동관계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