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사무실이자 대기실, 정보 교류 공간인 쉼터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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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休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 간사

 

 

“이제 마감합니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새벽 6시, 서울시 서초동 한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매일 들리는 소리다. 밤새 시내와 외곽지역을 걷거나 뛰고, 술 냄새를 맡아가며 타인의 차를 운전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쉬게 하는 곳, 休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이다. 2016년 3월, 대리운전 기사 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서울시에서 이곳 강남에 처음으로 이동노동자 쉼터를 조성했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주변인 이곳은 수도권, 즉 서울과 경기도에서 가장 대중교통편이 많이 집중된 곳으로 대중교통의 허브다. 서울의 어느 곳이든 경기도 주요 도시에도 대부분의 교통편이 연결된다. 그래서 수도권 각처에서 활동하다 집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대리운전 기사를 위한 쉼터가 위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6.쉼터.jpg

休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를 이용하는 대리운전 노동자들

 

서초쉼터의 운영시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이다. 정확히 오후 6시 정각이 되면 들어오는 분들이 여러 명 있다. 말하자면 단골손님인 셈이다.대리운전 기사에게는 도로가 일터이고 출근지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이곳으로 매일 출근을 한다. 이분들에게 쉼터는 사무실이자, 일감을 기다리는 대기실이고, 동료들과 소통하는 정보 교류의 소중한 공간이다. 간혹 연령대가 높은 분들은 쉼터 직원에게 스마트폰 사용법과 프로그램 사용법을 문의하는 일도 종종 있다.

 

쉼터에서는 매일 밤 수 많은 무용담이 펼쳐진다. 대리운전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다. 의외로 큰 액수의 팁을 받았다는 은근한 자랑이나, 도착지가 아주 낯선 오지여서 한참을 걸어 나왔다는 푸념이나, 고객이 만취해 목적지 근처에서 집을 못 찾아 경찰관까지 불러야 했다는 이야기 등 정말 수많은 삶의 현장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들은 은근히 고참들의 말을 엿들으면서 현장 상황을 배워나가는 정보 교류 역할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쉼터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의 환담은 일상적인 대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일하면서 대리운전업체의 갑질이나 고객의 욕설, 폭언 등 각종 부당하거나 낭패를 겪게 되는 일들이 다반사인데 이를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이를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풀어버리는 그 순간 ‘공감’과 ‘위안’을 받는다. 어느 정도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그러나 대리운전을 하다 일어난 경험담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사생활을 묻거나 말하진 않는다. 그런 약속이나 규칙을 정하지 않았음에도 지키게 되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것이리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아픔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주로 사업 실패나 실직, 그로 인한 경제력 상실, 또 그에 따른 가정 파탄까지 이어지는 과정 등. 그렇기에 이용자들을 대하는 것도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2020년 초, 전 인류를 일시에 혼돈에 빠뜨린 코로나19는 대리운전 기사들에게도 강한 타격을 입혔다. 모임 금지, 음식점 등의 영업시간 제한 등은 대리운전 일감을 많이 감소시켰다. 쉼터에 근무하면서 암묵적인 합의사항인 개인적인 부분을 본의 아니게 엿볼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작년 초부터 코로나19로 크게 수입이 감소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에 대한 정부 지원이 계기였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하여 이들에 대한 현금 지원 정책이 발표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선과 혼란이 일어났다. 정부 발표와 일선 기관에서의 엇박자, 자격요건이나 지침의 모호함 등이 많은 대리운전 기사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에 따른 신청과 상담을 쉼터에서 수 개월간 지원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개인 정보와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본의 아니게 보게 되었고, 그 일을 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고 한동안 힘들었다.

 

‘대리운전’이란, 이용자 측면에서 보게 되면 음주운전을 예방함으로써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가정을 지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또는 최후의 안전장치일 수도 있다. 대리운전은 사업 실패와 실직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회생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일을 시작하고 즉각적으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만약 그런 일이라도 찾을 수 없다면 이 사회에는 훨씬 많은 수의 경제난민이 생기게 될 것이며, 곧바로 정부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 자명하다. 즉 이러한 대리운전 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능동적인 예방적 복지를 스스로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반면 그에 대한 제도적 법률적 뒷받침은 물론 기초적인 사회보장에도 소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자본의 횡포에 힘없는 노동자만 그대로 희생될 수밖에 없기에 제도권과 정부의 적극적인 실태조명과 실질적 지원 및 관련 법안이 하루속히 제정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운전면허증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양면성이 있다. 누구나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최소한의 안전교육이나 직무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고객과 대리운전 기사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적 사각지대의 빈틈을 채우려 일부 당사자 단체가 교육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법률적인 제도 미비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들어서 전국적으로 쉼터가 하나둘씩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 쉼터는 단순한 휴게 공간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직업으로 진입하는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제공되고, 동료들과의 소통과 친목 도모를 통하여 자긍심을 키우고 이들이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대리운전 기사들이 좀 더 당당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 간의 진정한 공감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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