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노동] 쿠팡이 쏘아올린 ‘로켓배송’과 노동자의 죽음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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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쿠팡이 뜨자 노동자가 쓰러졌다

 

2021년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첫날, 쿠팡의 시가 총액은 100조 원(886억 5천만 달러)이 넘었다. 이로써 쿠팡은 2014년 알리바바 이후 미국에 상장된 최대 규모의 외국 기업이 되었다. 영국의 〈파이낸셜뉴스〉가 쿠팡 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를 보도하며 쿠팡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직후였지만 쿠팡의 성공적인 나스닥 진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쿠팡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누적적자가 4조 원가량 되었지만 이번 상장을 통해 5조 원을 넘게 조달함으로써 더욱더 공격적인 투자를 펼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했다. 쿠팡의 김범석 의장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제출한 기업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쿠팡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쿠팡의 성장을 이끈 것은 ‘로켓배송’이다. 2010년 이커머스electronic commerce 회사로 설립된 쿠팡은 2014년 자정 이전에 주문한 상품을 다음날 배송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내놓았다. 자체 물류센터에서 쿠팡이 직접 매입한 상품을 집품, 포장, 출고해 물류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물류센터에서 포장을 마친 상품을 물류터미널은 ‘캠프’로 이동해 쿠팡친구(구 쿠팡맨)라는 이름의 배송기사 노동자들이 고객의 집까지 배달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쿠팡의 매출액은 13조 3천억 원으로 2019년 약 7조 원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와 함께 쿠팡에 고용된 노동자들도 늘어 5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의 고용 형태는 일용직과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나스닥 상장 이후 쿠팡은 ‘로켓배송’을 뛰어넘는 ‘당일배송’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로켓배송보다 더 빠른 배송,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배송이 완료되는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류센터 설립과 더 많은 불안정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주문과 배송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필요한 필수적인 서비스로 각광을 받는 시기 동안 무려 9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추정되는 죽음으로 쓰러져갔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가능했던 것은 쿠팡이 자랑하는 데이터에 기반을 둔 과학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과도한 노동 착취에 근거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주희_쿠팡.jpg

 

극단적인 노동 강도를 강제하는 ‘로켓배송’

 

쿠팡 노동자들의 사망은 물류센터와 배송 업무 모두에서 발생하고 있다. ‘로켓배송’이라는 쿠팡의 전략이 물류 노동자와 배송 노동자 모두에게 극단적인 노동 강도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로켓배송’의 핵심은 빠른 배송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배송의 지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주어진 인력,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무조건 달성해야 하는 과업이 된다. 주변 동료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업무량은 곧 다른 노동자들의 추가적인 노동량으로 부여된다.

 

당일 소화해야 할 업무량을 정해진 시간에 달성하기 위해 쿠팡은 노동자 내부 성과를 경쟁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상대평가를 불안정 고용 형태와 결합해 불안정 노동의 불안을 원료로 삼아 극단적인 노동 강도를 추구하고 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개별적인 UPH(Unit Per Hour/시간 당 생산량)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실시간으로 순위를 매기고, 하위 성과자들에게 은근한 불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전체 방송을 통해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직접 호명, 호출하며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노동 강도를 강제한다. “OOO 사원님, 빠르게 중앙으로 와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식의 방송으로 관리자가 하위 성과자를 호출하고 해당 노동자에게 “당신은 00시부터 00시 사이에 UPH가 낮은 하위 5명에 포함되어 있다.”, “세 번 이상 불려오면 사실 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라는 식의 주의 경고를 듣게 된다.

 

기업에서 생산성에 대한 관리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쿠팡의 UPH 관리는 상식적인 수준을 뛰어넘는다. 우선, UPH는 목표 생산량에 따라 투입 인원과 1인당의 생산량을 산출하여 적정한 노동 강도를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쿠팡은 이를 노동자 내부의 상호 경쟁을 위한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노동 과정에서 방송을 통한 개별 호출, 하위 순위자라는 주의, 저성과자 퇴출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주지시키면서 노동자가 물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등 매우 기본적인 생리 활동을 자발적으로 통제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자들은 목표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하위 몇 퍼센트로 떨어져 방송으로 호출되거나 불려가는 ‘수치’나 ‘모욕감’을 더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다. 이러한 모욕감을 회피하기 위해 목표 UPH보다는 순위에 더 연연할 수밖에 없다.

 

[그림] 쿠팡 물류센터 불안정 노동자의 중층화된 고용 형태와 성과 압박 기제

4.그림_쿠팡.png

쿠팡 노동자 인권실태 보고서(2020)

 

뿐만 아니라 절대다수의 일용직과 3개월, 9개월, 1년 계약직으로 중층화되어 있는 계약구조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성과 압박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그림]에서 보이듯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절대다수는 일용직과 계약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약직의 경우,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3개월간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이 금지되어 있어 과도한 노동을 감수하는 장치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계약직으로 전환을 포기하고 일용직으로 전전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 실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의 평균 근속일은 416일이다. 사 측에서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고용 형태 선택’의 이면에 불안정 노동을 강제하는 ‘강제된 선택’의 장치가 자리한다.

 

배송 업무를 전담하는 쿠팡친구 노동자들의 경우도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을 강화하는 ‘레벨제도’라는 경쟁 시스템이 존재한다. 신입으로 입사하면 최저시급 수준의 ‘라이트 쿠팡맨’으로 일하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노말 쿠팡맨’이 되고, 그 위의 단계인 ‘시니어 쿠팡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총 9단계의 레벨이 있으며 각 레벨별로 10만 원 정도의 임금 인상이 이뤄지지만 일 년에 1~2회 정도 레벨업 기회가 주어지며 그조차도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여기에 더해 각 레벨의 ‘유지’가 관건이 되는데, 동료들 간의 상대평가로 레벨 포인트가 책정될 뿐만 아니라, 배송 량을 달성하지 못했거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산재나 병가를 낼 경우 레벨 포인트가 감점되기도 한다.

 

4. 쿠팡.jpg

지난 1월 19일 열린 쿠팡 동탄물류센터 야간 노동자 사망 사건 책임 규탄 기자회견(@공공운수노조)

 

성장의 비밀, 퇴행적 혁신

 

물류센터의 중층적인 계약 형태와 배송 노동의 레벨 제도와 같은 장치들은 ‘로켓배송’을 전면에 내세운 쿠팡의 혁신 성장의 본질이 결국 저임금 노동의 과로 노동이라는 낡은 비밀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쿠팡의 ‘혁신’은 데이터에 기반을 둔 전자감시 시스템과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불안과 모욕감을 경쟁의 땔감으로 사용하는 경쟁 시스템 결합의 결과로 등장했다. 또한 그 ‘혁신’은 한국 사회의 밀집된 인구 구조와 대도시화, 그리고 코로나19로 촉진되고 있는 실직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저임금 예비 노동력 형성이라는 조건 위에 형성되는 ‘퇴행적 혁신’이라는 이율배반을 본질적 특징으로 한다.

 

쿠팡의 나스닥 상장으로 인해 물류 산업과 택배 산업은 더 빠른 배송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쿠팡의 혁신이 산업의 ‘표준’이 되는 순간, 노동의 시계는 노동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했던 19세기 자본주의의 여명기로 퇴행하게 된다.

 

정부가 규제의 손을 놓고, 쿠팡이 2025년까지 ‘10만 개 일자리’를 공언하며 공격적인 기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더 빠른 배송’을 자연스러운 생활의 편의로 인식하고, 야간 노동을 시대의 당연한 흐름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노동은 ‘쿠팡 모델’로 수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쿠팡 노동자들의 때 이른 죽음에는 쿠팡 노동자들의 생명이 빠르게 소진되는 구조가 자리한다. 갑작스럽게 죽거나 빠르게 죽어가거나 하는 선택지만 놓여있는 쿠팡이 사회의 ‘표준’ 혹은 ‘롤모델’이 되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빠른 배송, 야간 배송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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