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노동] 내 인생은 배달 노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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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

 

 

동대문을 주요 활동 기반으로 하는 지역 노동단체 우동(우리동네노동권찾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일반노조에서 5년 정도 상근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 운동의 혁신과 미래를 위해 중요하겠다고 믿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왜 배달 노동을 하게 되었나

 

배달 일을 시작했던 동기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생계 때문입니다. 후원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보니 항상 돈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틈틈이 일을 좀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둘째, 현장에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습니다. 2009년에 현장 노동자를 그만두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시 현장으로 가는 것을 주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보자는 다급함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5. 김창수.jpg

눈을 흠뻑 뒤집어쓰고 배달 노동을 한 지난겨울.

 

배달 노동, 일 년의 경험

 

작년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첫 배달의 긴장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꾸미 가게에서 신이문역 부근 다가구 주택으로 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대략 매주 60개 정도의 배달을 해오고 있습니다.

 

배달 노동 이후 달라진 나의 일상은 첫째, 날씨를 매일 확인합니다. 날씨가 안 좋아야배달료가 비싸지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50일 넘게 장마가 이어질 때는 한 주에 70만 원이상을 벌기도 했습니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3만 원을 넘어섭니다. 다만, 이런 날 배달하면 당연히 사고의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에 위험수당이 높게 붙었다고 봐야 합니다.

 

둘째, 점심 저녁시간에 약속을 안 잡습니다. 첫 번째와 비슷한 이유인데 식사시간때 배달료가 더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오후2~5시 혹은 밤 8시 이후에 회의나 약속을잡으려고 노력하게 되더군요.

 

셋째, 다이어트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일반 자전거로 일주일에 20시간 가까이 일하면 200킬로미터 가까이 타게 됩니다. 뱃살도 들어가고 몸무게도 줄어들게 됩니다. 다른 운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넷째, 배송 장비가 업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쉬엄쉬엄 타던 10만 원대 자전거에 배달 가방을 메고 시작했다가 7개월 정도 후 망가져서 폐기시키고 새로운 자전거를 샀습니다. 최근에는 전기 자전거까지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1년을 하다 보니 이젠 힘들더군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완전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일반 자전거, 화창한 날엔 전기 자전거로 배송 수단을 바꿔가면서 합니다. 그리고 자전거 뒤에 짐받이를 달고 많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배달 가방(피자 가방도 위에 붙여서)을 실어서 다닙니다. 가방을 메고 다니면 힘이 들 수밖에 없고, 특히 한여름엔 땀이 많이 나서 정말 죽어납니다.

 

다섯째, 제발 택배 노동자와 한 아파트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층층이 서는 걸 보면 택배 노동자가 독점(?)하고 있구나, 하는 걸 단번에 알게 됩니다. 1층에서 그를 만나는 순간 욕이 안 나오면 다행입니다. 그럴 때마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정말 어렵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한꺼번에 눈 녹듯 사그라질 때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괜찮습니다. 수고 많으시네요.”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이럴 땐 ‘노동자들의 연대가 어려운 건 아니지’라고 믿게 됩니다.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연대감이 생기는 게 아님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요새 ‘본캐’, ‘부캐’ 이런 단어들이 생겨나더군요. 저에게 배달은 ‘부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캐’라 부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활동가도 이제 헷갈린다고 합니다. 그래도 배달을 통해 생각이 확장되고 발전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짧은 생각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생겼습니다. 좀 거창하기도 하고 노동스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케이크를 받은 어린이가 큰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순간, 직장에서 늦은 밤 돌아와 야식을 받은 청년을 보면서 ‘아! 내가 하는 배달 하나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순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매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자영업자들에 대한 편견이 깨졌습니다. 음식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정말 경이롭기까지 한 노동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소중히 잘 전달하는 것이 이 노동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것이겠다, 생각하니 사명감이라는 게 솟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욕심을 제어해야 합니다. 배민은 묶음 배달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자전거도 세 개까지 한꺼번에 콜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잡을 때는 머릿속에서 재빨리 계산을 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도 막상 가게 세 곳을 들러 세 명의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변수가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조리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고, 공사 중이라 길이 막혀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고객과 연락이 안 돼서 전달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수들이 한 개라도 발생하면 내 심장은 그때부터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페달 굴리는 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당연히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더들의 곡예 운전은 냉정히 따졌을 때 외부 요인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쌓이는 금액을 보면 욕심이 나고 목표치가 계속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시스템도 변화가 필요하다 믿습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 대기업의 책임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5. 자전거.jpg

자전거 뒤에 짐받이를 달고 음식 담을 수 있는 배달 가방을 실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올해 우리 단체는 필수 노동자 조직 사업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배달 노동자가 포함됩니다. ‘본캐’와 ‘부캐’가 이제 상호 연동되는 사업을 하게 된 겁니다. 새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당분간 배달 노동을 해야 할 이유가 또 생겼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1929년 원산총파업 같은 ‘지역 연대 파업’이 저의 꿈입니다. 배달 업체는 달라도 어느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될 때까지 함께 싸우고 파업까지 하는 그런 날을 꿈꿔 봅니다. 플랫폼 노동을 만든 것은 저들이지만, 우리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날까지 항상 안전하게 배달하면서 지역에서 열심히 실천하겠습니다. 투쟁!

 

* 우리동네노동권찾기 후원문의 : 02-608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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