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_심사평] 연대하는 글쓰기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김하경, 안미선, 이시백  심사위원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한 해였다. 예전과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의 형태나 범위가 넓어지고 여러 직종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져서 안타깝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전염병과 경제 위기라는 양날의 칼 앞에서 노동자들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은 2020년은 우리에게 한국 노동 운동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을 안겨준 한 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막다른 생존의 위협에 직면할수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을 마주할수록, 점점 자기 안으로 움츠러든다. 그렇게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많은 의문과 마주하게 되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마침내 나의 정체성, 노동자의 정체성, 노동과 현실의 의미, 마침내 삶의 의미에 이르는 성찰과 사유로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픔이 큰 만큼, 올해는 깊이 있고 치열한 성찰과 사유가 녹아있는 작품이 풍부할 거라고 내심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각박하고 암담한 현실이 글 쓸 여유를 앗아갔기 때문인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글 대부분이 나 개인에 머물거나 내 안에 갇혀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가장 가까운 옆도 앞뒤도 돌아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위의 사물이나 일, 혹은 사람에 대한 사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올해 그렇게 많은 택배 노동자가 죽어 많은 여론을 들끓게 했음에도, 어떤 응모작에서도 언급 한마디도 없었다. ‘택배 노동자’라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긴 나만의 찌질한 사연이나 억울하고 곤궁한 경험만 늘어놓아도 노동 수기가 되긴 하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노동과 삶을 이해하고 관통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런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판 남이 아니다. 나와 똑같이 부당하게 차별받고 억압받는 또 다른 나일 뿐이다. 그런 또 다른 내가 당한 차별과 억압은 나 몰라라 관심조차 없으면서 내가 당한 차별과 억압만 늘어놓는다면, 어린애의 투정과 뭐가 다른가. 피해 의식과 자기연민에 사로잡힌 넋두리이자 한탄에 불과하지 않은가.

 

택배 노동자의 억울하고 부당한 죽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기본이고 시작일 뿐이다. 다도 아니고 결론도 아니다. 제2, 제3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그 제도 개선을 뒷받침할 법 제정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런 게 실천이다. 실천의 뒷받침 없는 분노와 저항은 그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그런데 실천은 혼자서 풀어나갈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다.

 

진짜 노동 수기가 실천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최소한 같은 처지인 비정규직끼리라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고, 어깨를 걸어야 겨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글쓴이가 나 개인에 갇혀서는 안 된다. 나 개인에 머물러도 안된다. 또 다른 비정규직으로, 전체 노동으로, 전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정규 노동 수기의 핵심이자 생명은 한 개인의 노동 현실이 곧 모두의 노동 현실이라는 연대감, 연대 의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대상 | 김계월 <해고자로 산다는 것>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업종 가운데 하나인 비행기 객실 청소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글로, 연대를 통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그리고 있다. 글쓴이는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에서 일하다 해고를 당하고 원직 복직 투쟁을 하며 노동자 정체성을 깨닫고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깨닫게 된 이야기를 글로 잘 풀어냈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을 넘어 노조 설립과 정리해고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와 일화로 공감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글의 내용도 구체적이며, 관점도 건강하다.

 

∎  최우수상 | 이미영 <우리는 ‘똥 치우는 아줌마’가 아닙니다>

 

돌봄 노동에 관한 관심과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면서 관련 노동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글쓴이는 요양보호사를 하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인격적 모독까지 당하면서 일한 경험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처우를 구체적 일화로 짜임새 있게 소개하며, 노동조합의 권리 찾기 활동에 대한 성숙한 의지와 성찰을 담았다.

 

∎  우수상 | 리우진 <어느 멋진 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연극배우가 용기를 내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건설 현장 노동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잘 담았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노동 현장의 하루를 마치 글쓴이와 똑같이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안내하면서 설명하듯이 시간 단위로 꼼꼼하게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  우수상 | 손영준 <빈자리>

 

비정규직이 당하는 비인간적 차별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잘 드러낸 작품이다. 휴대폰 부품업체에서 일한 글쓴이가 회사에서 운영하는 ‘야간 조’가 오직 편리하게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의 비인간적인 고용 방식임을 깨닫게 된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  우수상 | 이보라 <일개미처럼 살지만, 노동자도 아닌>

 

방송작가의 열악한 처우와 노동자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구체적 경험과 현장의 열악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고용 작가의 노동자성에 관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일하는 현장이나 사람들 모습이 눈에 보일 듯 잘 그려진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