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 사각지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을 시작으로···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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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찬  센터 상임활동가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준비하는 미래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재난 상황은 취약한 곳에 더 많은 상처를 남기는 법. 그래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들이 도드라진다. 특히나 노동권 보호가 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피해는 그나마 보호되고 있는 노동자들과 비교해 극명하게 대비되어 나타나고, 지금의 일자리 충격과 피해는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코로나가 종식되고 우리 일상이 회복되면 그만인가? 노동기본권 침해는 코로나로 인한 것이었기에 코로나 종식과 함께 노동기본권이 보호되는 법·제도가 회복되는 건가?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일자리와 노동기본권 문제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재난 상황은 정치(지방자치), 환경, 공공의료, 사회복지, 거버넌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고, 우리 사회가 가져왔던 지향과 가치가 검증되는 상황이다. 모든 영역에서 체제 교체regime change로 사회 대개혁 수준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 체제를 이리저리 조금씩 손봐가며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등과 번영의 미래사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딱! 지금부터’ 이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일자리·노동 부문에서도 이른바 87년 체제(배제와 착취)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체제labor regime 1)를 준비해야 할 때며, 그 첫걸음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으로 놓고자 하는 것이다.

 

사장님이 인증하는 노동자 제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는 근로계약을 맺지 못했거나, 맺었더라도 근로기준법의 적용 밖에 있거나(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처럼, 실질적이든 법적이든), 최저임금법의 적용 밖에 있거나, 사회안전망에 들어와 있지 못한 노동자를 비롯한 초단기 계약이나 간접고용으로 인해 노동 조건의 결정이 일방적인 경우에 놓여 있는 노동자를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 관계법이나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은 정확히 고용/피고용 관계가 특정되어야만 한다. 고용주가 없는 노동은 보호받을 수 없는 체계이다. 노무 제공을 통해서 혹은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모두 노동자로서 보호받은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고용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에야 비로소 노동자가 되는 것이고, 노동 관계법의 적용을 받고 고용보험에도 가입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고용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식별하는 방법이 ‘근로계약서’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는 고용주가 결정한다. 뻔히 근로계약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사업계약 관계로 위장하는 경우, 플랫폼 노동처럼 일감 알선으로 위장하는 경우와 같이 고용주의 태도에 따라서 근로계약 관계 여부가 결정된다. 이렇게 ‘당신은 노동자임은 인증함’이라고 사장님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줘야만 노동 관계법이나 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으니, 사장님이 인증해줘야 하는 노동자인증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간혹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통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일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결국은 ‘사용자 찾기’가 핵심이고, 사용자 찾기에 실패하면 ‘노동자 아님을 통보’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지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고 되어 있다.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한 법이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 관계법인데, 이와 같은 법·제도 적용 여부를 고용주에게 위임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노동기본권

 

이제 다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을 이야기해 보자. 노동기본권은 고용/피고용 관계가 특정될 때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그 구성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좋은 일자리를 가질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 민주주의 범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노동 민주주의 보장에서는 결사의 자유와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핵심으로 구성할 수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세우는 데는 종사상 지위나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사회안전망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전통적 의미의 고용/피고용 관계가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노동자들, 예컨대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나 (초)단시간, (초)단기계약 노동자, 파견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대책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노동과 같은 비정형 노동에 대한 대책을 구분해 수립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종사상 지위나 고용 형태에 따라서, 혹은 산업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직업의 발생에 따라서 특별법 형태의 입법은 가뜩이나 기존 노동법이 제한적으로 작동을 하는 시스템에서 노동기본권을 온전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닌 제한적으로 보호 입법을 하게 될 위험이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노동자의 기본권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기본권 보장법’의 형태로 입법을 하고 기존 노동 관계법과 제도는 개선하고 확대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은 이와 같은 구상에 시사점을 준다.

 

1.노동기본권.JPG

지난 10월 6일, 센터가 주최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활동가 간담회

 

사회운동으로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 조직

 

민주노총의 전태일 3법2), 한국노총의 5.1플랜3)은 사실 새로운 제안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제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긴요한 문제라는 것을 역설한다. 이 제안이 이제는 결실을 보기 위해서라도 담론 형성을 위한 사회적 운동이 밑바탕을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을 제안한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왜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못한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하는 모든 사람 가운데 항상 쫓기고, 궁핍하고, 폭력에 노출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으로써 건강한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운동으로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을 조직하고, 당사자의 집합적 목소리와 사회적 진출(노동조합의 처지에서 보자면 조직화)을 조직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함으로써 착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87년 노동체제를 바꿔 내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의 정치와 실질적 사각지대 

 

정부는 지난 5월 10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와 일자리 위기 상황에서 한국형실업부조제나 긴급고용유지·안정지원금으로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에서 대통령 특별연설을 통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선언했다. 그 조치로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220만 명 가운데 전속성이 강하고 산업재해 보험 가입이 가능한 9개 직종 77만 명(35%)부터 2021년에 우선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용보험은 사각지대 해소의 단적인 지표다. 그런데도 여전히 작용하는 것은 ‘사용자 찾기’이다.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식이라면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상 지위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필요성이라는 헌법상의 요청을 전제로, 노무 제공으로 이익을 향유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fair하다.’(권오성, 2020)

이것이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고용보험료 징수의 원칙으로 확립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한편, 현행 제도하에서도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이유로 가입되어 있지 않은 실질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임금 노동자가 378만 명에 이른다. 법의 한계가 아니라 정부의 책무 방기이다.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책임을 묻는 것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의 필요성과 의미를 세우는 일이라 보고 이 활동 또한 조직하고 있다. 

 

향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으로 새로운 노동체제를 확립하고 경제민주화를 넘어서는 일자리 민주화 시대가 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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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 체제labor regime란 노동을 둘러싼 사회경제 현상이나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이해를 위한 개념 도구로서 노동력의 생산 및 재생산, 노동력의 배분과 생산과정에의 투입 및 활용과 같은 구조 측면과 함께 이러한 구조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유지나 변경을 둘러싼 노사정 등 행위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행위 측면의 동태적 결합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전태일 3법이라 함은 ① 근로기준법 11조(적용 범위)를 개정해서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 ②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정의)를 개정해서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 보장과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진짜 사장과 교섭할 권리를 보장 ③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말한다.

3) 5.1플랜이라 함은 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② 1년 미만 근속 노동자에게 퇴직급여 보장 확대 ③ 플랫폼 노동자에게 사회보험 확대 적용 및 노조할 권리 보장 ④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사회보험 확대 적용 및 노조할 권리 보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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