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 사각지대] 코로나19, 노동권 사각지대를 덮치다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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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

 

 

직장갑질119에 코로나 갑질(무급휴업·연차 강요, 해고 등) 제보가 처음 들어온 것은 2월 중순. 8개월간 코로나 갑질 제보는 ‘비정규직’,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외주화, 비정규직 양산, 프리랜서 확산 등 IMF 이후 확대된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사회안전망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고, 코로나19 고용 위기는 그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KAS) 도급회사 에스코리아 소속입니다. 한국공항은 비행기 승객이 부친 수화물을 컨테이너에 넣어 비행기에 싣는 지상조업을 하는데,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업무를 에스코리아에 도급을 줬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지고 비행기 운항 대수가 급감하면서 에스코리아는 계약직부터 잘랐습니다. 정규직들에게는 남아있는 연차를 강제로 소진하게 했고, 무급휴직을 포함해 10~15일씩 쉬게 했습니다. 3월 9일 ‘희망퇴직제 운영 안내’를 통해 희망퇴직을 받았습니다. 희망퇴직 신청자가 많지 않자, 3월 25일 회사는 ‘무급휴직제 운영 안내’를 공고하며 4월부터 월 3주 이상 무급휴직을 시행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무급휴직이 불법이기 때문에 휴업급여를 주고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라고 했더니 “아웃소싱 회사이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한항공이나 한국공항의 지시가 없으면 인력파견업체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고, 불법이어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력파견회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무급휴직을 당하고 있다가 결국 쫓겨나야 하는 겁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직장인 A씨)

 

여권을 검사하는 법무부 공무원은 코로나 해고 대란으로부터 안전하다. 항공사 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태롭지만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를 받으며 위기를 견딘다. 대한항공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도 휴업급여를 받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공항과 도급계약을 맺은 2차 하청업체 직원들은 무급휴직에 이어 권고사직·정리해고를 당한다. 맴파워코리아, 에스코리아와 같은 인력파견 회사들은 수시로 직원을 채용하고 해고하기 때문에 고용유지지원금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인력을 해고하려고만 한다. 파견직으로 일하는 면세점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공항 식당과 매점에서 잘려 나간 종업원들에겐 관심조차 없다. 이렇듯 인청공항에서 일했던 A씨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코로나 해고 대란의 축소판이다. 전국 곳곳에서 인천공항이 반복되고 있다.

 

비정규직 실직 경험, 정규직의 7.3배 

 

9월 7일부터 9월 10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차 설문조사에서 “지난 8개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5.1%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6월에 진행됐던 2차 설문조사 12.9%보다 높아졌다. 실직 경험은 비정규직(31.3%)이 정규직(4.3%)보다 7.3배 높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실직 경험 격차는 6월(6.6배)보다 더 심해졌다.

 

특집_표.jpg

 

코로나 초기인 지난 3월 회사가 매출 감소를 이유로 여러 직원을 내보냈습니다. 사직서를 쓰지 않는 대신 연봉을 50% 삭감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해서 모두 서명을 했습니다. 절반으로 줄어든 월급으로 생활하기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면서 사직서를 쓰라고 합니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하루하루 버텨왔는데, 실업급여도 못 받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도와주세요. (직장인 B씨) 

 

9월 조사 결과를 고용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 형태와 고용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정규직’, ‘고용보험 가입 비정규직’,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으로 나누고, 이에 따른 실직 경험을 재분석했다.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의 실직 경험은 34.2%로 정규직의 7.9배에 달했다.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원생에 대한 비율제 강사가 아닌 시급제 강사로 일하고 있는데도 학원가는 고용보험을 들지 않는다고 해서 고용보험을 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코로나 재유행으로 학원이 어렵다며 월급 30% 이상 삭감을 강요받았습니다. 8월에는 무급휴가를 실시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학원을 그만두라고 합니다. 학원강사는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는 건가요? (직장인 C씨)

2.직장갑질.jpg

지난 9월 21일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코로나 8개월, 대한민국 일자리 보고서’ 발표회를 했다.(직장갑질119)

 

휴업급여와 실업급여, 그리고 소득 감소

 

8개월간 비자발적 휴직 경험이 ‘있다’라는 응답은 18.4%였는데, 비정규직(31.3%)이 정규직(9.8%)보다 3.2배 높았다. 비자발적 휴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휴업수당 지급 여부에 관해 물어보니 72.3%가 법정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라는 응답이 60.9%였고, ‘법정 휴업수당보다 적은 금액으로 받았다’라는 응답이 11.4%였다. 특히 비정규직은 73.6%가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라고 응답했다. 휴업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이유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34.6%),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31.6%), 회사에 무급휴업 동의서를 제출해서(15.8%) 순이었다. 해고가 두려운 직장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무급휴업을 견딘다.

 

4대 보험에 가입한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 지침으로 인해 무급휴가를 해야 한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회사에서는 무조건 동의서를 작성하라고 합니다. 저는 안 하고 싶은데, 동의하지 않으면 회사에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 받는 건가요?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직장인 D씨) 

매장에서 2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재유행으로 매출이 떨어져서 사장님께서 무급휴가를 3일씩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별도의 동의서도 받지 않았고, 스케줄도 사장님이 정한 대로 결정됐습니다. 무급휴가 때문에 월급이 깎이는데 모두 해고를 당할까 봐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E씨)

 

연차를 소진하고, 연봉을 삭감하고, 무급휴가를 견뎌 버틸 수 있다면 다행이다. 아니 최소한 해고를 당하더라도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실직을 경험한 직장인 80.8%가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비정규직은 85.6%로 더 높았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이유로 보험에 가입되지 않음(54.1%)이 가장 높았다.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고, 실직했을 때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인쇄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회사는 정부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고, 해고하지 않는 대신 휴업수당의 회사 부담금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사장이 회사가 어렵다며 인력을 줄이겠다고 합니다. 동료들이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했지만, 사장은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어서 권고사직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직장인 F씨)

 

무급휴업 강요와 실직 강요, 실직돼도 실업급여를 못 받는 현실은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귀하의 현재 월 소득은 8개월 전인 2020년 1월과 비교하여 어떻게 변화했”는 지를 묻는 말에 직장인 34.0%가 ‘소득이 줄었다’라고 응답했다.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56.0%)이 정규직(19.3%)보다 2.9배 높았다, 이를 ‘정규직’, ‘고용보험 가입 비정규직’,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용보험 미가입 비정규직’의 소득 감소 경험은 66.3%로 정규직의 3.6배에 달한다. 사회안전망을 갖지 못한 비정규직들은 코로나19 고용 위기에서 노동 난민이 되었다. 

 

직장인 51.9% 일자리 방역 잘못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감염 위기에 대해 대응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79.0%가 ‘잘하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자리 위기에 대한 대응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반대로 51.9%가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은 선방 중이지만 일자리 방역은 낙제다.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가 심각해진 2월 말부터 8개월 동안 직장갑질119에 쏟아진 제보를 통해 코로나19가 일터의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왔고, 정부에 긴급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책, 책상머리 생색내기 정책만을 내놓았고, 결국 3차 설문조사 결과 비정규직의 실직 경험이 정규직의 7배가 넘는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코로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난이다. 코로나 위기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 난민이 되어버린 고용보험 밖 노동자들을 고용보험 임시가입자로 가입시켜 이들에게 최소 6개월 이상 ‘재난 실업수당’(코로나 소득보전금)을 개인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을 고쳐 소들이 돌아오게 해야 한다. 실직과 소득 감소, 가정파탄의 코로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코로나 노동 난민에게 밧줄과 구명조끼를 던져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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