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 사각지대] 노동안전보건 사각지대, 새로운 대안 찾기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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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노동안전보건제도의 사각지대,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취약계층에 관한 질문과 논의는 오래되었다. 뚜렷한 개선도 별로 없기 때문에 논의가 반복되고 있기도 하다. 올해 한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동자 건강 침해 사례 몇 가지를 통해 다른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이 건강할 권리도 어떻게 침해당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나눠보려고 한다. 

 

아프면 쉴 권리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감염학회 등 관련 학회들은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노동자들의 경우 호흡기 증상이 의심되면 진단서를 내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보장하라’라고 권고했다.1)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3월 16일 브리핑에서 “아파도 나온다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바꿀 수 있도록 근무 형태나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 상황이 상반기 지나서까지 계속되고, ‘생활 방역체계’도 지속하는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려면 꼭 필요한 변화다. 진단서를 받기 위해 유증상자가 병원을 가거나, 아파도 참고 일하러 나가면 동료를 포함한 지역 사회에 전파 위험이 커진다. 수도권 지역에서 처음으로 집단 감염이 발생했던 구로구 콜센터의 경우도 증상이 있는 노동자가 쉬지 못하고 일하러 간 데서 전파가 시작됐다. 평소 감기나 독감 등으로 몸이 불편해도 참고 일하러 다니는 것이 일상이던 한국 사회 노동 문화에서 바이러스는 더 큰 전파력을 가지게 된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고, 쉴 수 있는 권리는 우리 모두의 건강에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직장 문화, 노동 관행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직장갑질119가 4월 14∼16일 직장인 3천 780명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3.4%는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2) 단순히 노동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응답자의 91.6%는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라는 생활 방역 수칙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급여를 받지 못해도 집에서 쉬겠다는 응답자는 절반이 되지 않았다. 35.3%는 월급이 깎인다면 출근하겠다고 했다.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앓게 될 때 요양에 필요한 비용 외에 따로 지급되는 수당으로, 질병과 실업이라는 복합적인 위험에 처한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다. ILO는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최저기준)을 통해 상병수당 관련 규정을 제시하고, 이를 각 국가에 권고하고 있다.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병가에 대해 공적 현금 지원을 하거나, 최소한 노동자 병가를 지원하는 공적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3) 해고나 차별의 두려움으로 노동자들이 상병 사실을 숨기고 일터에 나섰을 때 개인과 사회의 건강이 어떻게 위협받는지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배웠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보호가 미치지 않는 곳

 

병가 보장, 해고 금지 등의 보호망을 확충하라는 주장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난 것도 코로나19 국면의 중요한 교훈이다. 감염병 유행 초반부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고용주가 고용 관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야 이미 잘 알려져 왔지만, 이런 재난 상황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책임은 고스란히 사각지대에 남겨진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방과후학교 교사 등의 ‘일하는 사람’들은 작은 보호구 하나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고, 회사 정책에 따라 대면 업무를 줄여도 경제적 손실 책임을 모두 스스로 짊어져야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매장도 마찬가지다. 메뉴나 인테리어, 운영 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자유롭게 할 수 없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고스란히 대리점 ‘사장님들’에게 돌아간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을 통해,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 지원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 대책은 매우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 대책에 새롭게 증액된 예산 규모는 모두 합해서 1조 5,783억 원에 불과하다.4) 게다가 고용 충격에 대비한 대책도 기존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 해당 제도의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되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자, 특수고용 노동자,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적 혹은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노동권 사각지대에서 과로사가 발생한다

 

코로나19 시대 한국의 독특한 노동 이슈가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였다. 사회 활동 제한 등으로 다양한 산업이 타격을 받는 사이 한국의 택배, 물류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CJ대한통운과 롯데택배, 한진택배 등 대표적인 재벌 택배 회사들의 2020년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 

 

택배 회사 호황의 그늘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가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1~6월 업무상 사망한 택배 노동자 9명 중 7명이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졌다. 그런데 정부 공식 통계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올해 5월 기준 택배업 등록 종사자 1만 8,792명 중 1만 1,348명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택배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 대상이 아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비용을 사용자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하고,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어 실제로 산재보험 가입률이 이렇게 낮다. 8월 11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밝힌 과로사 사례 5건은 모두 공단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 자료와 대책위가 파악한 내용을 합쳐 올해 상반기에만 최소 12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11일 또 한 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4.택배.jpg

지난 7월 28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진행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출범선포 기자회견(@참여연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택배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주 40시간, 연장을 포함하여 52시간)을 적용받지 못한다. 1주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도 보장받지 못한다. 배달한 물량만큼 받는 수수료는 십수 년째 동결이어서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게 된다. 이번에 숨진 40대 노동자도 매일 오전 6시 30분 출근, 오후 9~10시 퇴근하며 하루 평균 약 400건의 택배 물량을 처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시대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택배 없는 날’ 캠페인이 성공하고, 정부와 주요 택배사가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의 노력 사항’을 발표했다. 하지만 재벌 택배사들이 재정을 투입해야 할 실질적 조항이 하나도 없이, 말 잔치에 머문 이 합의문은 금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택배 노동자들은 과로를 줄이기 위해 ‘분류 작업 인력 투입’이나 필요할 때 쉴 수 있도록 직영기사 확충이나 상시적으로 대체기사를 운용하는 방안을 주장해왔지만, 실질적인 인력 확보는 없었다. 이번에 노동자가 숨진 영업소에는 지난 추석에도 추가 인력이 전혀 확보되지 않았고, 같은 시기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에게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했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했다. 

 

사각지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노동안전보건 사각지대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찾아 ‘보호’하겠다는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노동안전보건 제도와 법, 체계 자체가 사각지대를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체계를 다시 세우는 접근이 필요하다.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 대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아직은 선언에 머물고 있다. 법 적용을 받는 사람은 여전히 사업주이고,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 일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된 것은 진전이었지만, 결국 보호 범위 확대는 최소한에 머물렀다. 기존에 산재보험을 특례 적용하던 9개 직종(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택배, 퀵 서비스, 대리운전 기사, 건설기계, 카드모집인, 대출 모집인) 외에, 화물운송 노동자, 예술 노동자(영화, 드라마 촬영 현장, 극예술 공연의 미술 작업), 학원버스/어린이집 버스, 미용업/세탁업, 방송작가, 장례식 도우미, 관광통역사, 간병 노동자 등 사방팔방으로 확대되는 다양한 ‘가짜 사장님’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나마 모든 ‘근로자’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는 것도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업의 종류, 상시근로자 수 등을 기준으로 일부 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체계, 안전보건 교육 등을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 산재율이 낮은 여러 업종의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안전보건 교육이 제외된다. 영세한 업체에서 일한다고 그 노동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낮을 수 있다는 규정은 말이 안 되고, 산재가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어, 오히려 더 위험하고 열악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 관리 감독으로부터 소외되는 역진적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수년 동안 지속하였는데도 지난 법 개정 과정에서 규모에 따른 적용 제외 조항에는 개정이 없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에서도 본 것처럼 근로기준법에서 규율하는 노동시간 제한 규정이 없으면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무급가족종사자, 감시단속 노동자, 농축수산업 노동자는 모두 노동시간 제한 규정 적용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 노동안전보건 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넓다. 울산 북구보건소 및 울산근로자건강센터 등 공공기관 및 민간 의료기관,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울산 취약노동자 건강지원사업단’이 울산시 취약 노동자 규모를 추계해 보니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상용근로자 중 5인 미만 소속 노동자와 임시 및 일용직 노동자, 실업자를 합치면 울산 경제활동인구의 46%가 취약 노동자로 추산된다. 이 추계에는 보건관리자가 없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렇다. 이런데도 사각지대를 따로 찾아 ‘보호’ 방안을 찾아야 할까? 경제활동인구의 약 반을 차지하는 노동자가 산업보건서비스의 사각지대라는 것은 현재의 제도가 전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땜질하듯, 이슈가  되면 하나 던져주듯 ‘보호’를 확대하는 것 말고,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안전보건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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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지역 사회 확산 피해 최소화를 위한 권고안, 2020.2.22

2) 뉴스1, 직장인 절반 “코로나 의심돼도 못 쉬어… 유급병가 필요”, 4월 19일

 

3) 김기태, 이승윤, 한국 공적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제도 비교연구 및 정책제언, 사회복지정책, 2018

4) 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20-06, 문재인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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