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요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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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민 청소년유니온 위원장



청소년 감정노동자 실태조사 


20만 5천 명, 만15~19세의 일하는 청소년 숫자다. 단기간으로 일하는 청소년의 특성을 생각하면, 매년 잠깐이라도 일하는 청소년 수는 당연히 이보다 많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노동 형태는 서비스업이다. 일하는 청소년의 상당수는 학업도 병행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인 편의점, 카페, 식당 등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한다.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청소년은 수많은 고객을 마주한다. 업무 특성 상 감정노동은 기본이고, 소위   ‘진상’ 손님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감정노동은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업무상 수행해야 하는 감정을 노동의 일환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업은 고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기 때문에 감정노동을 더 자주 요구받게 된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마치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적 시선을 받는다.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모두가 가르칠 수 있는/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손님의 부당한 요구나 사업주의 과도한 지시에 쉽게 노출되고, 여기에 순응할 것을 요구받는다.


2018년 10월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고 1년이 넘었지만, 보호 조치들은 여전히 현장에 안착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만 15~24세 청소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인 청소년유니온은 서비스직 등에서 일하는 만 15~18세 청소년들의 감정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나아가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3.발표회.jpg

청소년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요’(@청소년유니온)


청소년 감정노동 실태


청소년 감정노동자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2019년 가을 동안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감정노동을 경험한 전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도구를 활용하여 진행했고, 유효표본 252개 자료를 수집하였다. 설문조사는 감정노동 경험을 확인하는 것과 문제 상황에서 보호 장치에 대한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했다. 면접조사는 감정노동 경험자 10명을 섭외해 진행했다. 면접조사에서는 실제 어떠한 상황을 경험했는지를 위주로 들었으며, 특히 문제 상황에서 해결 과정까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면밀하게 확인했다.설문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었던 답 문항은 두 가지로 뽑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일터에서 고객, 상사, 동료에게 웃음, 친절 등의 감정 요구를 어느 정도로 받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252명 중 61.9퍼센트에 달하는 156명이 “감정 요구를 많이, 매우 많이 받는다”고 답했다. 두 번째로 “감정노동으로 발생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습니까?”라는 문항에서 응답자 252명 중 총 133명이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청소년 노동자가 일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의 감정노동 상황에 자주 노출되거나 빠졌을 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면접조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확인한 것은 감정노동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 감정노동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 감정노동의 경우 다른 감정노동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어리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반발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제에서 일어난다. 노동자가 ‘청소년’이라고 인지하는 순간부터 감정노동 강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면접조사 내용 중 피해를 받은 경험에 대해 불합리한 감정노동 경험을 ‘비합리적 컴플레인’, ‘과도한 업무 요구’, ‘꾸밈노동 등 외모와 관련된 요구’, ‘폭언과 폭력 및 성희롱’, ‘어리다는 이유로 발생되는 상황’ 등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이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은 ‘폭언과 폭력 및 성희롱’으로 고객들의 과도한 행위를 확인했다. 실정법으로 고소 및 고발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진행한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청소년 노동자 다수가 당장 돈이 급해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처럼 일자리가 생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문제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폭언의 경우 컴플레인이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사업주(관리자) 지시에 따른 대응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욕설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불법적 행위를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경우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장 심했던 부분은 성희롱이다. 언어적 성희롱뿐만 아니라 성추행까지 서슴없이 진행되었으며 회식과 같이 대부분 높은 연령 사람들의 술자리에서 서빙 등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오히려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을 뿐 이에 대처하기 어려웠다. 다음으로 감정노동자들에게 문제 상황이 발생한 뒤 노동자 개인과 직장 및 사업장의 조치를 확인했다. 이는 감정노동자보호법에서 조치 사항을 기재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장 집중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개인의 대처’와 ‘예방 관련 조치 사항’이다.


첫 번째는 ‘개인의 대처’이다. 이는 면접참여자들이 개인 차원에서 어떻게 조치하거나 행동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면접참여자들이 해당 문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듭 확인되었다. 오히려 청소년 노동자 개인이 해당 문제 상황 종료 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에 머물러 있었다. 

두 번째는 ‘예방 관련 조치사항’이다. 가장 좋은 대책은 문제 상황을 예방하는 것이다. 또한 감정노동자보호법은 노동자 대응 매뉴얼을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는 현재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면접참여자들은 하나 같이 매뉴얼은 ‘없다’고 말했다. 일부 매뉴얼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참여자들이 있었지만, 확인 결과 면접참여자들이 어떤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매뉴얼이지 문제 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은 아니었다. 결국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온전히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는 이유도 이와 비슷했다. 애당초 이런 문제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관리자나 사업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소년 감정노동 실태를 바꾸기 위한 대안


청소년 감정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드러난 문제 인식은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터에서 청소년 감정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이를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거나,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일터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두 번째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다수 사업장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와 같은 문제 원인을 두고 보고서를 통해 청소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감정노동과 관련한 대응이 포함돼있는 노동인권 교육 개발, 고객서비스 만족도 평가를 객관적으로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방안, 감정노동자에게 사업장 내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중 주목하면 좋을 부분은 고객서비스 만족도 평가 부분이다. 고객서비스는 예상보다 더욱 고숙련을 요구하는 노동이지만 플랫폼 및 프랜차이즈가 제공하는 고객서비스 만족도 평가는 몇 번 클릭해 단순히 5점 척도로 서비스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허술하게 제공되는 만족도 평가는 고객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으며, 악성 고객이 이를 이용해 감정노동자를 위협할 빌미를 만들어줄 뿐이다. 보다 정교하고 정확한 고객서비스 만족도 평가를 제공할 수 없다면 이 시스템을 아예 삭제시키는 것을 제안하였다.


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며 


청소년 노동자의 현실을 바라볼 때 상반된 인식이 있다. 청소년 노동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극한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보통 ‘어리다’는 이유로 대들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할 때 발생한다. 고객이 청소년 노동자에게 악성 컴플레인을 걸어 위협하는 모습으로 사용자가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청소년 노동자 모습을 바라보는 사회는 청소년 노동자가 겪는 현실을 고민하지 않는다. 반면 면접조사를 진행하며 만났던 청소년 노동자들의 인식은 다르다. 이들에게는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공통적인 이유는 생계를 유지하거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그중 대면조사에 참여했던 한 명의 경우 학업을 병행하면서 주 40시간을 일해야 했다. 누군가는 청소년의 노동 현실을 두고 너무나 쉽게 “일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하지만 청소년 노동자 당사자에게 현실은 일터에서 어떤 모멸감을 당해도, 그 어떤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노동을 똑바로 바라보고 가장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사회가 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이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두고 사회가 청소년 노동자에게 무엇을 보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 노동자들이 자기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적인 조건에서 이 문제를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만약 사회가 지금 당장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면, 자기 인생에서 첫 노동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에게 노동을 어떤 의미와 가치로 자리 잡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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