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택배는 배송 중 마음의 병은 치료 중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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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권 택배기사



위잉~ 진동이 울리고 스마트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에 수신 버튼을 터치했다. 카센터에서 온 전화였다. 점검을 맡긴 차의 검사가 끝났다고 했다. 등록되지 않은 낯선 전화가 울릴 때, 가슴이 덜컥하고 받기 망설여지는 것은 10여 년 가까이 택배 일을 하고 내가 얻은 직업병이다.


동네 선배 형의 일을 돕다가 화물차 지입으로 시작하게 된 택배 일을 10년 가까이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택배 물량도 급격히 증가했고 일거리도 끊이지 않다 보니 택배기사로 꽤 오래 일하게 되었다. 친절기사로도 뽑혀봤고, 지역 물량 탑도 찍어봤지만, 이 일이 나에게 허리디스크와 함께 마음의 병까지 만들어 줄 줄은 몰랐다.


택배기사는 택배를 배달하는 육체 노동자인 동시에 매일 적게는 백여 명, 택배 물량이 많을 때는 수백 명의 고객과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무거운 택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카트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상자들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육체노동의 영역이다. 


택배를 받는 고객들과 만나서 택배를 전달하는 그때는 감정노동자가 되어서 고객들과 상대해야 한다. 일선에서 고객과 바로 얼굴을 대하는 택배기사이기에 택배 물건에 대한 클레임은 잘못이 있든 없든 1차적으로 바로 우리 택배기사들이 받게 된다. 비난과 욕설이 섞인 전화를 매일 받다 보면 차츰 낯선 전화번호가 뜰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 사건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5.이호권.jpg


택배를 시작하고 1년 남짓 된 시기였다. 아직 예비군이 끝나지 않아서 향방작계라는 6시간짜리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필 예비군 일정에 물량이 몰려서 몇 번을 연기한 끝에 11월에 마지막 교육 일정만 남아있었다. 그것마저 참석하지 못하면 당장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연말 시즌 전이었고, 김치 폭탄이 터지는 김장철을 피한 시기여서 하루 물량이 150건 정도 되었다.50건은 옆 동네를 담당하는 기사 분에게 부탁을 드리고 100건 중에 냉동식품같은 것은 밤늦게라도 훈련이 끝나면 배송하고, 남은 건 다음 날 배송하려고마음먹었다. 고객들에게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긴 문자를 단체로 발송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문자가 쏟아졌다. 훈련 잘 받으라는 응원의 문자도 있었지만, 배송이 늦은 데 대한 보상을 하라는 문자부터 오늘 안에 배송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문자, 그리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욕을 적어서 보낸 문자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훈련 중에는 핸드폰을 꺼놨다가 끝난 후에 켜니 또 문자가 쏟아졌다. 그날은 새벽까지 배송을 해야 했다. 마지막 택배를 배송하고 트럭에 앉았는데 눈물이 흘렀다.택배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김장철은 김치 택배 때문에 택배기사들의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김치를 사 먹는 일이 일상적이라서 평소에도 김치 택배를 배송할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평소처럼 한두 개가 아니라 김장철에는 매일 여러 상자를 배송하게 된다. 김치 전문 업체들은 새지 않게 두꺼운 비닐로 포장하고 케이블타이로 꽉 조여서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과 함께 배송한다. 김치의 발효를 늦춰서 봉투가 부푸는 것도 방지하고 김칫국물도 새지 않는다. 일반 고객들은 보통 김장 비닐봉투 한 겹에 김치를 담아서 종이 박스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추운 김장철이지만 김치가 발효되면서 가스가 발생해서 비닐이 부풀고 그러다 보면 찢어지거나 터지고 김칫국물로 다른 택배까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김장철이면 택배기사들은 김장 비닐봉투 여러 장을 차에 비치해둔다. 언제 어디서 김치  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12월 중순, 남쪽지방도 김장을 끝낼 때쯤이었다. 한동안 이른 추위 때문에움츠러들었는데 그날은 날이 풀려 봄날처럼 따뜻했다. 배송 물량도 많았고, 길에 차도 많아서 배송이 지체되었고, 따뜻한 날씨에 트럭 안에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배송을 위해 문을 열었는데 시큼한 김치 냄새가 쫘악 퍼졌다. 다른 택배에까지 물들어버리면 망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폭탄을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종이 박스에 포장된 김치였다. 상비하고 있던 김장 봉투에 얼른 담고 물티슈와 걸레로 다른 택배에 묻은 김칫국물을 닦아냈다.다행히 배송 막바지여서 남은 택배가 얼마 없었고 김치 박스 근처에 다른 택배가 몇 개 없어서 오염된 부분이 적었다.


김치를 배송받은 고객은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 했다. 시골의 어머니께서 연로하셔서 대충 포장하셔서 택배기사님을 힘들게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께서 보낸 김치가 새서 속상할 텐데 이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내가 더욱 미안해졌다. 김칫국물이 묻은 박스를 받은 다른 고객 분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하니 다들 이해해주셨다. 물건에 이상이 없으니 괜찮다고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배달한 집에서 문제가 생겼다. 김칫국물을 닦는다고 닦았는데도 박스에 스며들었던 물기를 다 닦지는 못했는지 박스에 있던 김칫국물이 전실 바닥에 묻었다. 택배 고객은 걸레를 바닥에 던지더니 다 닦아 놓고 가라고 했다. 처음 당하는 상황이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걸레를 집어 들었다. 전실 바닥의 김칫국물을 다 닦고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박스를 가져다 버리라고 했다. 겉박스는 김칫국물에 오염되었지만, 다행히 이중포장으로 안에 있던 택배 물품은 멀쩡한 것 같으니 냄새나는 겉박스는 나보고 가져다 버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항의하기도 전에 아저씨 잘못이니 아저씨가 가져다 버려야 한다며 중문을 쾅 닫아버렸다.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박스를 주섬주섬 챙겨서 나왔다. 12월 밤인데도 춥지 않았는데 마음은 참 추운 날이었다.  


그 외에도 감정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은 많았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유수함에 택배를 넣으라고 했으면서 새벽 1시에 전화해서 택배를 어디에 두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잠결에 받아서 정신을 차리고 유수함을 찾아보시라 했더니 왜 유수함에 넣었냐며 화를 냈다. 그러면서 저러니 택배나 배달하지 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는 사람 정도는 웃어 넘기게 되었다.


분명히 택배를 받았으면서 택배를 받지 못했다고 나를 도둑놈 취급하던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책들은 도서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기사분들이 배송한다. 그런데 접수 시간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일반 배송기사들이 배송할 때도 있다. 바로 그런 케이스로 책을 배송했을 때였다. 분명히 정확히 배송했고 수취인이 있었는데 받지 않았다며 나에게 계속 클레임을 걸었다. 난 배송했으니 온라인 서점과 해결하라고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전화해서 자기네 식구는 받은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마음으로 무슨 책인지 물어서 배송하는 길에 서점에 들러 한 권 사다가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서 경비실에 부탁해서 CCTV를 보여달라고 했다. 거기는 내가 분명히 배송하러 올라가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손에는 택배가 들려있었고, 내려올 때는 없는 것까지 다 있었다. 억울함을 풀고 싶었지만, 해당 고객의 집을 찾아가거나 하는 일은 불법적인 일이 될 수 있다며 주변에서 말렸다. 난 도둑의 누명을 쓰고도 억울함을 풀 수 없었다. 


명절 때면 물량이 밀려서 신선식품 배송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핸드폰을 통해서 욕설이 날아든다. 어린이날이면 자녀들 선물이 왜 이리 배송이 안 되냐며 또 격앙된 목소리로 욕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배송 동선이 있고 순서가 있는데 무조건 자기가 지금 당장 써야 하니 자기 집부터 오라고 강짜를 부리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객들을 대하면서 가슴에 병이 생기고 낯선 번호로 전화만 와도 전화 받기가 무서워졌다.


물론 좋은 고객도 많다.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두는 분들. 컵은 그냥 마시기 힘드니 캔이나 패트병에 담긴 음료를 시원하게 해서 주는 분들. 착불인데 자신이 집에 없어서 미안하다며 손편지와 함께 착불비를 문에 붙여 놓고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문자를 보내는 분들. 겨울이면 고생하신다며 핫팩을 쥐어주시는 분들.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분들도 많다. 좋은 고객들 덕에 힘이 나다가도 화내고 욕설을 하는 고객들을 보면 힘이 또 빠지고 만다.


100명의 좋은 고객이 주는 기운보다 한 명의 욕설이 더 큰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 한두 번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소주 한잔하고 털어버릴 수도 있지만 매일 계속되는 일상에서 항상 욕을 먹고 때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게 되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또 상처가 나서 결국 덧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10년간 쌓여온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 때문에 잠시 일을 쉬고 지금은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택배를 기다릴 때의 애타는 심정을 택배기사들도 잘 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배달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떤 택배기사도 고객에게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택배를 늦게 배송하거나 일부러 박스를 밟고 찢는 짓은 하지 않는다. 모든 고객이 소중한 택배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 욕 문자와 비인간적인 대접은 한 가장을, 한 노동자를, 그리고 한 사람을 얼마나 힘들고 아프게 하는지 알아주었으면 한다.


전자제품 AS센터에서 일하는 친구 녀석도 나와 비슷한 경우다. 휴대폰 AS를 하는 녀석은 항상 웃으며 고객을 대하지만 친구들끼리 만나면 잘 웃지 못한다. 고객을 응대할 때 담배 냄새가 날까봐 담배도 끊을 정도였던 녀석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서 술이 늘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라며 강짜를 부리는 고객을 매일 상대하면서 하루하루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있다.


택배기사도, AS기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도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며 최대한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일명 ‘진상’이라고 불리는 고객들이 좀 덜하지 않을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 앞에 두고 가서 죄송합니다. 벨을 눌러서 죄송합니다. 벨을 누르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늘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나는 죄송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죄송하다고 하지 마세요. 기사님이 최선을 다하는 걸 알아요. 조금 늦을 수도 있죠. 오늘 길이 많이 막히더라고요. 비 오는데 박스가 살짝 젖을 수도 있죠. 수화기 너머에서 욕설 대신 이런 말들이 들려올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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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 이 글은 서울감정노동센터가 주최한 ‘2019 서울시 감정노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최우수상 당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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