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다시] 기획편집위원이 바라본 격월간《비정규노동》

by 센터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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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센터 살림, 그래도 끝까지

 

이경옥 센터 기획편집위원,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

 

장수년 전 기획편집위원회 회의에서 《비정규노동》 개편에 대한 치열한 논의 끝에, 회원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비정규노동》이 회원들에게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판형, 제호, 내용 등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한 이유였다. 당시 제호가 딱딱하고 전문적인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어 다수 편집위원은 제호까지도 바꾸려고 했다. 제호가 센터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바꾸지 못했지만, 국내외 비정규 노동 정책과 동향, 해외 사례 등을 알려주는 《비정규노동》에 대한 회원들의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격월간 《비정규노동》 150호 발간맞이 인지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랜 기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정이 열악한 센터가 《비정규노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 최근까지도 재정과 품이 들어가는 기관지 발행 대신 온라인 소식지로 대신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어려운 센터 살림이 한몫을 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창립 10주년 행사에서는 어서 빨리 센터가 문을 닫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지만, 21년이 지난 지금도 비정규 노동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비정규 노동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도 않다. 자본의 교묘한 착취 구조가 비정규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 사회 비정규 노동자들의 지피지기를 위해 비정규 노동 문제를 파헤치고, 대안을 마련하는 센터가 존재하는 한, 기획편집위원들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회원들의 요구를 보강하고,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싶다.

 

 

비정규 노동자와 동행한 《비정규노동》

 

이주환 센터 기획편집위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간하는 《비정규노동》이 150호를 맞이했다. 뭔가를 반복적으로 만드는 처지라면 우수리가 없이 딱 떨어지는 회차를 맞이했을때 갑작스러운 생경함을 느낄 경우가 종종 있다. 번잡하고 뒤엉킨 일상을 매끄러운 낯선 것에 불쑥 침범당한 기분이랄까. 아무튼 반복적으로 해온 이 작업의의미를 새삼스레 되새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정규노동》을 만드는 이들 옆에서 제법 오랫동안 기획편집위원으로 함께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뭘 해왔나를 돌아보며 몇 마디 말을 보탠다.

무엇보다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돈 안 되는 ‘잡지’가 20년을 버틴 것 자체가 정말로 희한한 일이다. 더구나 《비정규노동》은 취약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 그중에서도 소수인 비공식 노동자와 불완전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억눌려 숨은 이들의 말이 공론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동행했다.

지난 20년 그러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는 점이 《비정규노동》 150호가 당당하게 축하받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다음으로, 《비정규노동》의 특색을 더욱 살려 나가길 바란다. 내 생각에 《비정규노동》은 사회구조가 강제하는 사람 사이의, 혹은 사람 내부의 ‘경계’를 흩트리는 일을 열심히 해왔다. 노동법제도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증언하는 외침을 증폭시키고자 했고, 노동운동과 다른 사회운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다녔다. 이러한 시도가 비록 눈에 확 드러나는 성과로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구조를 뒤흔드는 행동의 맹아로 성장할 씨앗들을 곳곳에 뿌리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회에 매우 유익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람을 느낄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남신 전 소장님과 문종찬 현 소장님, 강인수 편집국장님과 이윤아 대표님 등 《비정규노동》 만드는 일을 해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한때 꽤 많은 노동계 잡지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 거의 없다.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잡지 제작은 고단하고 스스로 고갈시키는 일이다.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놀리고 왕성하게 호기심을 채우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일이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그동안 애 많이 쓰셨고,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좋은 디자인은 훌륭한 고객에게서 나와요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반가운디자인 대표

 

나는 디자인을 해 책을 사고 학비를 냈다.

나는 디자인을 해 옷도 사고 여행을 다녔다.

나는 디자인을 해 밥을 먹고 술도 마셨다.

나는 디자인을 하면서 창작의 고통을 운운하며 폼도 잡았다.

나는 디자인을 하면서 일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성취감도 맛보았다.

나는 디자인을 하면서 결과보단 과정 속에 답을 찾았다.

 

나의 물주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올해로 21주년을 맞이한 세월 중 나와 12년을 함께했다. 나를 당당한 올드 디자이너로 성장시킴에 있어 8할을 해준《비정규노동》이다. 여러 고객Client 중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다. 센터는 회원의 후원비와 프로젝트로 살림을 운영하는 곳으로 넉넉지 못한 사정을 잘 알기에 디자인료 또한 넉넉히 받진 못하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고객이다. 언제나 편집디자인 아이디어idea 컨셉concept부터,  아트웍Artwork까지 디자이너의 생각과 입장을 존경해주기 때문이다. 이쪽(디자인계) 바닥에선  좋은 디자인good design은 실력있는 디자이너good designer보다는 훌륭한 고객good Client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결국 여러 시안 중 최종 컨펌confirm은 고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디가도 사람 생각을 먼저하는··· 사람의 향기가 풍기는 곳이다. 신뢰와 믿음, 지지와 응원, 배려와 연대 이 추상적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모든 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태어 지면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도망치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기회의 문을···

 

박경주 그림 작가

 

안녕하세요? 표지그림을 그리고 있는 박경주입니다.

저는 초등학교에서 비정규직 사서로 18개월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불합리한 노동 현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같은 처지의 지역 사서들과 자주 만나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격려하며 일하다가 민주노총 학비노조 임원과 간담회를 갖고 노조 가입과 함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편법 근무를 강요하고 사서의 전문성을 보장하지 않는 학교장에게 제 의견을 이야기할 용기가 나질 않아서 마침 시작하게 된 그림책 작업을 핑계로 사직서를 내고 말았어요.

저는 그림도 좋아하지만,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눈 맞춤하는 일도 참 좋아했는데, 아는 얼굴과 싸울 자신이 없어서 슬그머니 도망쳐 나온 거예요. 사실 남편의 벌이가 있으니 쉽게 결정할 수 있었는데 “당신은 내가 있으니 생계 염려 없이 싸울 수 있는 것 아니야?”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제가 사서를 그만둔 것엔 후회가 없습니다. 계속 사서를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많은 기회의 문을 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학 시절, 격렬한 시위 현장을 몰래 도망쳐 나왔던 부끄러운 기억과 함께 제 인생의 비겁한 시간으로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제게 《비정규노동》 표지를 그리는 일은 도망치던 걸음을 돌이켜 다시 그때로 시간을 돌리는 일이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일입니다. 그 일에 불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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