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좌담] 센터 활동의 중심인 사무국, 새로운 활동 영역도 찾아야

by 센터 posted Apr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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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_2021년 3월 25일(목) 10시 30분

▪어디서_한국비정규노동센터 회의실

▪사회_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참석_송용한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운영실장

         곽이경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

         김사이 시인

         이수미 서대문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 

         변정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사무국장

▪정리_강인수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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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와의 첫 만남, 첫 인상

 

배병길   안녕하세요. 두 번에 걸쳐 역대 소장님들과 정책 담당자 좌담을 했고, 이번에는 사무국을 담당했던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는데요. 각자 자기소개와 센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말씀드리면 2019년 3월부터 센터에서 활동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학교 다닐 때 노동 관련 활동을 하거나 학생 운동을 하지는 않아서 이런 단체에서 일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나중에 언론 관련한 시민단체에서 자원 활동하다 보니 시민단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 성향하고도 맞을 것 같더라고요. 우연히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지요. 그전에 언론사나 공기업 면접은 가봤는데 보통 회의실 같은 곳에서 딱딱한 분위기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센터 사무실이 리모델링 중이라 잠시 다른 단체에서 더부살이 하고 있을 때라 카페에서 면접을 했어요. 처음부터 특이했어요. 저보고 왜 정장을 입고 왔냐고도 하고, 끝났다고 “가시면 돼요.” 하면서 제가 앉아 있는데 자기네끼리 담배를 피우러 가는 거예요. 그래도 좀 더 얘기할 거라고 생각해서 센터 리플릿이랑 《비정규노동》 보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도무지 올 생각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몇 분 더 기다리다가 가보겠다고 하고 나왔죠. 저에 대한 흥미가 없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며칠 뒤에 연락 와서 출근하게 됐지요. 출근 첫 날이 이삿짐 옮기는 날이었어요.

 

송용한   1999년 말, 2000년 초 센터 준비모임부터 활동을 시작한 것 같아요. 비정규 노조나 조직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논문을 쓰고 있을 때에요. 노조에 면접조사 다니면서 비정규 노동자들 조직화 얘기를 하면 지금 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도 많은데 비정규직까지 어떻게 신경 쓰냐, 수정주의적 사고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비정규직이 또 다른 제도 속에서 배제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노조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센터 설립 초기에는 정책실에서 조사통계 쪽 일을 담당했고, 2003년경부터 사무국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곽이경   대학 다닐 때 비정규 노동자 투쟁에 관한 자료를 찾을 일이 있었어요. 한국통신 비정규 투쟁을 알게 됐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눈에 제일 많이 띄는 단체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였어요. ‘비정규’를 검색하면 이름 나오는 데도 센터가 유일했고요. ‘비정규’라는 말도 신조어 같은 느낌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센터가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단체에서 활동은 계속 했는데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사회단체 활동가로서 살아가려면 어디에서 일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20대 중반에 돈 벌면서 활동한 첫 단체였어요. 당시 서대문역 앞에 있는 학원 건물 옥탑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제가 예상했던 사무실 분위기와 달라서 내가 잘못 찾아왔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옛날 운동권들이 골방에서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지금 대리운전 노동자인 김주환 위원장이 센터 부소장으로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오민규 동지도 센터에 있었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밤새 일한 분들이 바닥에 누워 자고 있고, 옆에 양말 동그랗게 말려있고, 붙박이장처럼 집에도 안 가고···. 노동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힘들게 사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보니까 그런 분들이 여기저기에서 엄청나게 활동하고 계시더라고요.

 

송용한   센터가 종로 기독교회관에 있을 때엔 사무실이 꽤 넓었어요.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월세 비용 아끼느라 서대문에 있는 학원 옥상이 비었다고 해서 옮기에 된 거예요. 워킹보이스 만들 때는 일주일 정도 밤샌 적도 많고, 정책 보고서 만들 때는 밤새는 게 기본이었어요. 박영삼 국장은 잠도 자지 않고 2~3일 동안 계속 앉아서 일했죠. 그러면 200페이지짜리 보고서가 뚝딱 나왔어요.

 

이수미   2009년 가을,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하던 때였어요.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는 지금 이곳 당산동에 센터 사무실이 있었는데 저는 신촌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웠지요. 지하철로 네 정거장이니까요. 면접 보고 돌아가는데 신촌역 도착하니까 합격했다면서 출근하라고 전화 연락이 왔어요. 깜짝 놀랐지요. 시민사회단체 활동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아마도 센터에서는 기존에 활동하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아요. 바로 출근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한다고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네다섯 명이 같이 일했어요. 사무국장인데 사무국은 나밖에 없더라고요. 또 통장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 통장에 돈이 엄청 많지도 않았지만, 내 개인 통장 잔액보다 적은 거예요. 150만 원이었나? 이 단체가 내 월급 줄 수 있나 싶었다니까요.

 

김사이   저도 광고 보고 이력서 내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먹고 사는 문제가 턱밑에 걸린 상황이기도 했고, 노동 문제는 살아오면서 내 시선이 계속 가있는 부분이기도 했지요. 사실 제가 숫자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서류 작성도 어려워하는 사람이어서 사무국과는 안 맞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마도 자기소개서를 너무 잘 썼던 것 같아요. 이남신 소장님이 계속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자기소개서가 너무 진솔했다고. 간절함이 담겨있었을 거예요. 정말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나름 최선을 다해 활동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역시나 나는 활동가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멋모르고 덤비기는 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수미   김사이 시인이 면접 왔을 때 저도 같이 봤는데 열심히 하려는 의욕과 진심을 느꼈어요. 그때 얼마나 잘했느냐 못했느냐 보다는 센터와 계속 연락하며 《비정규노동》 시 꼭지도 맡아서 챙겨주시잖아요. 저는 이것만으로도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변정윤   저는 예전에 공장에서 노동자로 노동 운동을 한 후에 빈민 운동을 했고, 여성노조에서도 활동했어요. 여성노조에서는 초창기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정책 자료 내용이 좋아서 많이 봤다고 하더라고요. 센터에는 공개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저는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어요. 그런데 며칠 있다 연락이 와서 면접 보고 활동하게 됐습니다. 저도 처음에 통장을 보고 ‘사람을 왜 구했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계속 임금이 체불되는 상황이 벌어졌죠. 그해 이남신 소장님은 3개월 급여를 모두 후원했어요. 2013년 《비정규노동》 100호 발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후원 받느라 이남신 소장님과 국회며 노조를 엄청 쫓아다녔죠.  그 다음해에는 후원주점을 하고. 기획부터 시장보고, 음식 만들고 서빙하는 것까지 센터 글쓰기 모임인 ‘쉼표하나’ 회원들이랑 다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의기투합이 잘 돼서 성공적으로 후원주점을 마무리했지요. ‘쉼표하나’ 회원들도 그때가 좋았다는 얘기를 아직까지도 해요. 그리고 정책국 프로젝트도 많이 하면서 센터 살림이 나아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이어왔네요.

 

어려운 재정 상황, 새로운 돌파구 찾아야

 

배병길   제가 센터 왔을 때도 재정은 좋지 않았어요. 회원이 크게 늘거나 줄진 않았는데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조금 빠진 것 같기도 해요. 활동하셨을 당시 센터 재정이나 회원 현황은 어땠나요?

 

송용한   센터 초기엔 박승흡 소장이 운영비를 지원해서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활동비는 다른 곳에 비해 높은 편이었지만, 들어오는 돈은 적고 월세 부담이 커지면서 서대문 정진학원 옥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거죠. 거기서 재정 마련을 위해 수익사업으로 학원 자판기 사업을 했어요. 커피 자판기 관리하고, 캔 음료 짊어지고 나르기도 했죠. 센터 상근자들이 2주에 한 번씩 하는 노가다 작업이었던 셈이죠. 그때 허리 나간 사람 많습니다. 제가 사무국 담당하면서 가장 피 말렸던 건 급여일 되면 돈이 깐닥깐닥했던 거예요. 박승흡 소장한테 말하면 어디에선가 돈 구해 와서 집어넣고, 아니면 후원 받아서 통장에 넣고 하는 방식이었죠. 사무국은 기본적으로 급여 안 밀리게 하는 게 가장 큰 책임이었던 것 같아요. 2003년인가 센터 워크숍에서 센터 활동 방향과 재정을 어떻게 할 건지 논의했습니다. 하나는 회원을 확대해서 안정적인 회원 수입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정책 연구를 발전시켜서 센터가 사회적으로 정책을 생산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쪽이었죠. 시각에 따라 재정과 사업 방향을 잡는 데 조금 다른 게 있었던 거죠. 사무국은 기본적으로 재정 사업, 회원 사업을 하면서 대외 연대 사업도 같이 했어요. 연대회의가 있으면 사무국에서 참여했죠. 당시 비정규공대위도 센터에서 거의 중심이 되어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곽이경   비슷비슷했던 것 같아요. 가만 생각해보면 단체가 재정이 계속 어려운 채로 시간이 오래되면 안 되는데. 제가 왔던 2007년 초에도 단체들이 회원 중심이냐 연구용역 중심이냐 가지고 논쟁을 많이 하던 때였어요. 정책 과제를 생산하고 목소리 내는 것도 중요한데 단체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정책 연구용역을 많이 하다 보니 행정 실무도 많아 회원 사업은 약간 등한시하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고요. 회원 사업이나 후원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그때는 사실 못했는데 지나고 나니 들었습니다. 제가 센터에서 활동하는 동안 이사를 두 번 했어요. 서대문 건물 나와서 국회 다리 건너에 있는 영등포 사무실, 그리고 이곳 당산동. 월세 감당이 안 돼서 줄여야 했거든요. 역세권으로 가서 민주노무법인을 살리면 노동 상담이 좀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 인근 부동산 찾아다니면서 발품 팔았던 기억이 제일 많아요. 이사 두 번 하고 났더니 3년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상당히 허름했는데 리모델링을 멋지게 해서 밝아져 좋네요. 센터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사무국 활동가로 마음 졸이며 살았던 일원으로서···.

 

이수미   연결이 되네요. 이사를 했는데 마무리가 안 됐어요. 제가 와보니 서류 정리가 안 돼 있는 거예요. 이사를 하면 사업자등록증 주소 바꿔야 하고 등기이사 찾아다니면서 확인 받고 해야 되잖아요. 처음 와서 했던 일이 서류 정리하는 게 일이었죠. 그래서 제가 있는 1년 동안 크게 한 일은 서류 정리, 체불 임금 정리였어요. 그리고 다른 분들과 똑같지만 회원 확대 문제가 항상 고민이었죠. 당시 센터에서 주요하게 논의했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게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비정규노동》을 계속 내느냐 온라인으로 전환하느냐는 거였어요. 그래도 《비정규노동》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었으니까요.

 

김사이   저도 이수미 국장님 다음으로 사무국 일을 하면서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서류 정리, 행정 업무를 깔끔하게 잘 처리하고 엄청 고생했다는 걸요. 재정 문제나 회원 확대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센터 리모델링하면서 사무실이 좋아져서 재정이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안 좋은 거 같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느 단체든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큰 문제인 것 같아요. 2012년에도 《비정규노동》을 계속 내느냐 마느냐로 여름 내내 토론했죠.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디자인만 좀 바꾸면서 유지하는 걸로 정리했지요.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삶의 기록과 치유를 위한 글쓰기 교육’도 하고 글쓰기 모임도 만들고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까지 하게 됐죠. 다른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것이었고, 더 확장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변정윤   회원 관리나 서비스 관련해서 비슷한 고민을 계속 하는데요. 한 단체에서 손 편지를 인쇄해서 받은 적이 있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희도 몇 년 동안 회원들에게 손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생은 됐지만 보람은 있었어요. 장기적으로는 못하더라도 시도는 좋았던 것 같아요. 항상 회원 확보 문제 이야기하면 너무 힘이 들어요. 우리가 할 일도 많은데 여기에만 집중할 수 있나 하는 회의가 드는 거죠. 안정적으로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회원 확보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방식을 찾아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제가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우수리 사업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려고 드니 만만찮은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양대 노총의 조직적 후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민주노무법인이 없어지긴 했지만, 상담을 통해 후원을 조직하는 거예요. 무료상담을 하거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임하고 나면 감사하다고 후원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걸 통해 상근 활동가들도 상담 사례를 공부하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다고 봐요. 현장 연대 활동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요. 단체의 모든 활동을 웬만큼 파악하는 것도 사무국 역할이거든요. 재정이 어려울 때 사업 조정 권한을 가진 게 사무국이에요. 센터의 가치 실현을 위해 안정적인 재정이 기반되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을 것 같아요.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는 재정이 부족해서 후원주점을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 운동의 허브 역할

 

배병길   작년에 센터 20주년 맞아 부설 연구소 설립을 목표로 후원 조직을 계획했는데 코로나로 행사를 못하게 됐죠. 장기적으로 안고 가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회원을 확대하고 재정을 확보할 방안을 만들긴 해야 하는데요. 솔직히 다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해결은 안 된 거잖아요. 새로운 활동의 방향이나 아이템도 말씀해주시면 센터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곽이경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라는 이름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같은 이름이잖아요. 센터가 지역 비정규 노동 운동 단체를 아우르는 전국 허브 조직 같은 곳으로 인식되면서 센터 재정도 폈겠구나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서울노동권익센터, 서울감정노동센터 수탁기관이기도 하다 보니 예전보다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하죠. 저도 그랬거든요. 센터가 비정규 노동 정책 허브 역할을 한다고 봐요. 우리가 회원 단체가 되려면 회원 사업을 엄청 해야 돼요. 그러기엔 어려움이 있잖아요. 센터가 인적 자원과 커뮤니티를 잘 조직해서 시민사회와 노동 쪽으로 진출하는 활동가들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센터는 항상 다른 곳에서 해보지 않은 영역을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노동인권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기존 노동 운동이 건드리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이야기해보자는 의미에서 2009년에 노동인권 강사단 교육을 했거든요.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라든지, 보이지 않았던 비정규 노동의 다른 이야기들로 확장한 비슷한 맥락의 사업이었다고 생각해요.

 

송용한   시기적으로 센터도 위치와 역할 변화가 오는 것 같아요. 지금은 비정규 노조들도 만들어지고 지역에 비정규 센터도 만들어지면서 연대 조직의 틀이 단단해지고 있잖아요. 센터가 거기서 또 다른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사무국의 활동도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 운동의 위치 변화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교육 사업과 연결시킨 회원 사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육 후 센터 회원도 조직하고, 우리 센터와 계속 결합해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변정윤   센터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에서 재작년부터 교육에 대한 요구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또 드네요.

 

이수미   제가 후원하고 있는 한 곳에서 후원금 10% 증액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정도는 큰돈이 아니잖아요. 기존에 후원하던 사람이 그 정도 증액하는 건 가능하거든요. 구체적인 절차는 모르겠지만 복잡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있는 서대문센터 상근자들끼리 재미로 당근마켓하기로 했거든요. 온라인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 올려서 파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센터가 후원주점을 안 하니까 조금 섭섭하기도 한데 온라인으로 하는 후원 방법도 찾아서 하면 좋겠어요.

 

사무국 기본 활동을 너머

 

배병길   당근마켓 신선한 것 같아요. 개인적인 고민이기도 하고 여기 계신 분들도 조금씩 했을 고민일 것 같은데요. 사무국이 하는 일이 당연히 중요하긴 한데 외부 활동 보다는 내부 활동이고 혼자 하는 일이잖아요. 활동하시면서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어떤 고민을 하셨고, 개인적으로 다른 활동을 시도해본 경험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송용한   저한테는 센터에서의 활동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친정 같은 곳이라고 할까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했던 곳이에요. 그래서 항상 뭐 한다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하고 싶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조직의 발전과 개인, 상근 활동가의 발전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들이 하는 활동이 나한테도 발전의 계기를 줘야 하고요. 저도 실질적으로 실천하다는 의미에서 센터에 결합했는데 3~4년 하다 보니 소진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매일같이 밤샘 작업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갔는데 내가 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들면서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공부할 생각을 했고요. 공부하면서 활동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사무국 활동이 회계 정리하고 사무 처리하는 기본 업무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축을 만들 수 있는 활동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정규직과 관련된, 또는 활동가를 지원하는 교육 사업도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다른 활동의 영역을 넓힐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개인과 조직이 연결되는 사업을 잡으면서 고민하고 자기 발전, 앞으로의 진로나 경력을 계발하는 과정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곽이경   저도 센터에서 활동했던 게 이후 노동 운동에서 활동가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방향을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사무국 활동 같은 경우는 그 자체가 단체 기반이고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반면에 인정을 잘 받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원래 난 자리는 보여도 든 자리는 안 보이는 곳이잖아요. 센터 같은 소규모 단체에서는 업무를 돌아가면서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2008년까진 정신없이 지내다가 2009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이것저것 해봤거든요. 교육 사업도 하고 기획 사업도 해보고, 그 기간이 짧아서 아쉽기는 한데 그때 다른 단체 사람들 만나서 협업도 하고, 사업도 하나 맡아서 완수해본 경험이 굉장히 크게 남아있어요. 소수자 운동과 노동 운동을 결합하는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된 게 그때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계기들이 모든 활동가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하나쯤 있어야 단체 활동하는 재미도 있고, 맛도 생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적극적으로 찾아줄 수 있는 단체가 돼야 된다고 봅니다.

 

이수미   사무국 활동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활동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할 것 같은데 100%를 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같이 찾아 가면서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거든요.

 

변정윤   저는 사무국 6년, 네트워크국 2년을 담당했어요. 그렇게 전환하는 건 좋다고 봐요. 전국 비정규센터들의 사업을 보면서 배우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동안 예전 상근 활동가들과 교류가 없었어요.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이런 고민들을 나누다 보면 아이디어도 나오고 할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을 하고 그만두는 거라 센터가 고마운 곳이에요. 멤버십과 애정을 가지고 떠날 건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김사이   사무국장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의 도전이랄까, 먹고 사는 문제와 같이 결부돼있기도 해서 덤비기는 했는데 그걸 잘 받아준 소장님이 고마웠어요. 사무국이 실제로 다른 업무를 파악해야 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업무를 조율하고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사실 조직의 기둥이지만 빛이 안 날 수도 있는 자리예요. 우리 배병길 활동가님 파이팅~!

 

배병길   고맙습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하고요. 앞으로 이런 자리를 더 자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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