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좌담] 노동 현장에 스며드는 비정규 노동 정책

by 센터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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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2021년 1월 29일(금) 오후 3시

▪어디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회의실

▪사회  기호운 센터 상임활동가

▪참석  남우근 센터 정책연구위원

          박영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전문위원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최혜인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

▪정리  강인수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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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와 맺은 인연의 시작

 

기호운   센터 20주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역대 소장 좌담회를 했습니다. 센터 설립 초기부터 최근 활동까지 되짚어 보면서 뜻깊었는데요. 이 내용은 《비정규노동》 1, 2월호 보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규 노동 운동 속에서 센터가 각 활동별로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의미 있겠다 싶어 앞으로 센터와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 볼까 해요. 이번엔 정책 담당했던 분들을 모시게 됐습니다. 정책 연구했던 분들을 다 모시면 좋았을 텐데 여건상 몇 분만 모시게 돼서 아쉽긴 합니다. 센터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박영삼   소장 좌담회에서도 얘기 나왔듯이 1999년부터 준비모임을 했고 2000년에 센터를 창립했잖아요. 센터 준비하면서 박승흡 초대 소장이나 조진원 부소장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어떻게 방향을 잡으면 좋을지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를 만났을 때는 한국노동복지센터 같은 구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지금은 비정규 노동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게 좋겠고 단체 이름도 확실하게 비정규센터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노동운동 단체나 정책 연구만 하는 연구소보다는 정책 연구과 법률 상담, 시민사회연대 활동을 같이하는 노동시민사회 단체가 좋겠다고 했습니다. 조진원 소장도 시민사회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지요. 초기엔 송용한 박사가 막내로 들어와 사무국을 맡았고 이후에 손정순, 박종식 박사도 정책국으로 왔습니다. 이혜수 노무사, 강선희 박사도 같이했습니다. 몇 달 안 돼서 매일노동뉴스 기자로 있던 이정희, 김기현 두 기자가 센터에서 일하겠다고 찾아왔죠. 월간 《비정규노동》을 창간해놓은 상태였는데 두 사람이 오면서 취재와 더불어 정책 기능 일부를 담당했어요. 정책과 편집부, 여기에 인터넷 워킹보이스를 엮어 정책기획국으로 시작한 거죠.

 

남우근   저는 시설관리노조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에 감시단속 노동을 연구할 때 인터뷰하면서 센터를 알게 됐는데, 나중에 매일노동뉴스에 채용 공고 난 걸 보고 들어왔죠. 2004년 10월부터 출근해보니 손정순 정책국장, 박종식 정책부장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반상근 비슷하게 일했는데 실제로 같이 작업하진 못했어요. 제가 한두 달 출근하다가 도시철도 적정 인력 산정 연구 때문에 4~5개월 정도 파견 비슷하게 나가 있었거든요. 2005년 5월부터 다시 센터 상근 시작했는데 그새 다 나가고 김성희 소장, 김주환 기획국장이 상근하면서 한 명 정도 왔다 갔다 하던 시기였어요. 정책 관련해서는 김성희 소장하고 나, 이류한승 부장이 좀 참여하는 정도였습니다. 조돈문 대표님이 이사였던 것 같은데 정책에 결합했던 것 같네요.

 

박영삼   박승흡 소장이 2004년 매일노동뉴스를 인수하면서 얼마 뒤 제가 편집국장으로 가게 됐죠. 그때까지 정책 연구 범위를 넓히고 비정규공대위 사무국 역할도 하면서 정책국 활동이 안착 단계였는데 매일노동뉴스로 다소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센터 활동가들도 변화가 있었어요. 물론 매일노동뉴스 인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활동 반경을 넓힌다는 측면도 고려했습니다. 워킹보이스 기자가 매일노동뉴스의 비정규 전담 기자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2004년 총선 앞두고 민주노동당이 비정규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돌아가신 이해삼 선배를 비롯한 몇 분이 비정규직운동본부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때 우리 센터를 민주노동당 부설기관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러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해서 독립적인 센터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박승흡 소장이 센터 이사장과 매일노동뉴스 대표를 겸하고 있던 시기에 센터의 기반이나 활동 방향을 두고 토론이 많았던 시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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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저는 2008년 여름에 센터 와서 반상근을 했어요. 사실 비정규 문제를 잘 몰랐습니다. 도시철도에서 해고되고 해고자 복직 투쟁하면서 공부해봐야겠다고 해서 오게 된 거였어요. 그 당시 센터는 좀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보수 정권이 막 기승을 부리던 때이기도 하고요. 센터가 문을 닫을 거냐 말 거냐 하는 논의를 할 정도였거든요. 우리 역할을 찾다 보니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잘해서 비정규 통계 잘 내고,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부분을 잘 대변하면서 센터를 유지하자고 결론 내렸죠. 그때 조돈문 대표님이 이랜드 투쟁 당사자였던 이남신 소장을 영입했고, 제가 정책국장하면서 김직수 정책부장도 함께했죠. 그러다 미국으로 연구하러 가게 되면서 그만두고, 2014년에 돌아와서부터 다시 센터와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그때 정책연구위원회를 만들면서 센터 정책 연구가 활성화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이하 한노사연)와 우리가 노동운동 관련 연구를 주도했는데, 한노사연은 지방 정책이나 노동 정책 연구를 주로 했고, 우리 센터는 비정규직 연구를 많이 해서 연구 분야가 좀 달랐던 거죠.

 

최혜인   2000년부터 시작했는데 갑자기 2014년으로 확 넘어왔네요. 전 2013년에 자원 활동을 하러 와서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센터가 비정규 문제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정리해주셨는데, 사실 저는 비정규직 문제를 잘 알지도 못했고, 대학에서 전공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정책 담당 상근을 시작했네요. “비정규직은 이거다.”라고 가르쳐주면 의심의 여지 없이 “아~ 그게 비정규직이지.” 했거든요. 배우면서 일하다 보니,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주로 실태조사라든지 비정규 노동 포럼, 이슈 페이퍼 발간하는 등 정해진 사업들을 해나갔습니다.

 

비정규 노동 정책의 흐름을 잡다

 

기호운   그러고 나서 지금 희망제작소에서 정책 연구하고 있는 김세진 정책부장에 이어 제가 센터에서 정책 담당 활동가로 일하게 됐네요. 센터 초기엔 비정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방향을 잡았을까요?
 

박영삼   초기에는 외환위기로 힘든 상황에서 노동시장도 격동의 시기였어요. 이미 1999년에 통계청 공식 통계로 임시일용직이 50%를 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여성노조나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 움직임도 있었고, 몇몇 연구자들이 비정규직 통계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연구자도 적었고 비정규직 문제의 줄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센터는 기본 개념과 통계 개선, 입법 과제, 산업별 현황, 조직화 전략으로 연구 범위를 차츰 넓혀갔습니다. ILO 보고서를 근거로 단시간 파트타임 문제를 주목할 때 한국에서는 단시간 노동이 문제가 아니라 임시계약직 문제로 표상된다고 봤고요. 또 다른 하나는 사내하청, 특고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문 연구자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 당시만 해도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파고 들어가 보겠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우리가 교수나 박사는 아니지만 줄기차게 해나갔지요. 그러면서 연구자들도 결합하고 풀이 형성될 수 있었던 거라 봐요. 정책 과제 시리즈를 내고 외국의 비정규 동향이나 사례를 연구하고, 금속, 금융, 서비스, 공공부문 등 산업 연구로까지 넘어갔어요. 질적 연구 이른바 현장 조사가 엄청 많았습니다. 비정규 문제에 대한 기본 입론을 세우고 정책 연구와 상담, 비정규직 조직화 지원을 축으로 센터 활동을 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기호운   작년부터 센터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인데요. 우리 정책 연구는 큰 틀에서 일정한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 년 정도 있다 보니 변화 발전시켜야 한다는 고민이 생기는데요. 우리 센터가 그동안 했던 연구 과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박영삼   크게 흐름을 보면 초기인 2000년엔 비정규 노동 관련 입론을 연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박인상 의원실 의뢰를 받은 것이 첫 외부 용역이었는데 기본 개념과 통계 개선안, 입법 정책 과제, 조직화 방향 등 뼈대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비정규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법 해설집인 《비정규 노동자의 모든 것 Q&A》 단행본도 만들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2001년 정이환 교수와 함께 ‘비정규 노동의 사회적 대안’이라는 정책 보고서를 냈습니다. 30여 개 단체로 구성된 비정규공대위 사무국을 센터가 맡고 있었는데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에 대한 입장, 파견법 폐지론 등 예민한 문제들도 다뤘고, 한일 교류나 미국노총 방문 경험을 토대로 국제사회에서의 비정규직 정책 담론을 비교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김선수 변호사(현 대법관)의 안을 중심으로 비정규공대위 입법요구안을 정리한 것도 그때입니다. 최저임금연대가 만들어질 때도 간사단체를 맡았는데 한참 뒤에 현실화되는 지자체 생활임금 조례제정 운동을 제안한 것도 센터입니다. 2002년엔 비정규 입법 요구의 근거로 《유럽연합의 비정규 고용지침과 주요 국가들의 노동입법 동향》 단행본을 출간했지요. 금속산업, 금융산업, 서비스산업, 공공부문 등으로 산업 연구와 조직화 전략 연구도 차츰 확장해갔습니다. 금속산업에서는 조선, 철강, 기계, 자동차, 전자 등 업종별 비정규직 실태를 분석하고 가능한 조직화 방안과 대응 전략을 업종별로 구분해서 제안했는데 금속연맹의 현대차 불법파견 고소 고발 투쟁은 우리 연구와 함께 진행됐습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의뢰로 냈던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산업별 심층 사례 연구〉는 12개 산업에 기간제교사, 집배원, AS기사, 캐셔, 가사도우미 등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을 심층 조사한 미래를 내다본 연구였는데 내용에 비해 빛을 크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프로젝트를 받아서 최초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광범위하게 했던 것도 센터 초기의 성과입니다. 현장 조사를 위해 십수 명의 변호사와 노무사들을 대거 결합시켰지요.

 

남우근   초기에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화를 하고 분석 틀을 잡았던 거고, 제가 들어왔을 때는 2003년 10월에 이용석 열사 분신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때였습니다. 2006년부터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를 한 번 하고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종합대책을 내기 시작했거든요. 그게 해마다 업데이트돼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거죠.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대응 토론회를 주로 했습니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연구 틀을 많이 잡아줘서 연장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대응 자료 만드는 작업을 많이 했지요. 당시 노동연구원에 있던 은수미 박사하고 같이하면서 노동부 자료를 우리가 2차 분석하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고요. 2005~6년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특수고용 논의를 한참 했어요. 그러면서 특고대책회의가 가동되었고, 우리 센터가 여러 연구자와 함께 특수고용 대책에 대한 대응 활동을 하면서 종합보고서를 냈습니다. 센터는 주로 민주노총 특고대책회의에 참여하면서 정책 분야를 맡아 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던 거죠. 또 민주노총에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대책회의와 간접고용대책회의 등에 들어가서 정책 지원을 했고요. 또 하나는 비정규직법, 그러니까 기간제법인데, 2006년에 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2007년부터 시행됐어요. 정부는 비정규보호법이라고 얘기했지만, 우리는 문제 많다고 해서 기간제법 사유제한 도입, 파견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토론회 등을 통해 대응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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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책 참여를 활발하게 하고, 특수고용이나 간접고용, 공공부문 등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왔을 땐 비정규직 규모도 어느 정도 되고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이란 걸 다 알 때였어요. 비정규 노동 운동이 주목을 받으면서 운동적 관점에서 보건의료 비정규직 실태조사 등 노동조합 실태조사를 많이 했어요. 화섬노조, 금속노조 통해서도 2~3년에 한 번씩 했죠.

 

최혜인   2014년부터는 노조에서 받은 연구 용역은 많지 않았고, 주로 국가인권위원회나 지역 비정규센터에서 발주 받아 한 연구였어요. 지역 비정규센터들이 많이 늘어나던 시기와 겹치던 때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일 이슈는 최저임금이었어요. 알바노조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처음 얘기한 게 2010년 즈음 같은데, 제가 대학생 때였거든요. “뭐 만 원?” 그랬는데···. 센터가 최저임금연대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이남신 소장님이 2015년부터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되면서 최저임금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때 배석하면서 더 신나게 참여한 것도 있어요. 이전엔 최저임금이 결정되기까지 어떤 식으로 논의가 오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였어요. 처음엔 최저임금을 만 원이든 얼마든 많이 인상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목표만 있었는데 막상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회의록을 속기록처럼 투명하게 공개해야 된다, 배석자를 늘려라,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등. 그러면서 최저임금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토론도 활발하게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고요. 그 결과 단행본 《이런 시급 6030》까지 공저로 냈네요. 그리고 해마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용역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특수고용, 초단시간,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한 번씩 다 훑어볼 수 있었어요. 또 다른 이슈는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 완화, 기간제 사용 기간 확대, 파견 허용 업종 확대와 같은 개악을 예고했던 일이었습니다. 대부분 철회되긴 했지만, 이후에 양대 지침으로 축소되어 끈질기게 추진됐어요. 정책국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이건 전 국민을 비정규직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안 그래도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과 같은 대안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했지요.

 

정책 연구의 산실, 정책연구위원회

 

기호운   작년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주 받아 ‘가구 방문 노동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했는데 센터 초기부터 국가인권위원회와 꾸준히 해왔네요. 그리고 또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통계 분석도 계속하고 있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박영삼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분석도 센터 초기부터 했던 거예요. 2000년 노동부 의뢰로 노동경제학회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26.4%라는 시험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했는데, 센터는 이 분석 결과도 비판했지만 부가조사 정례화, 조사 문항 전면 개편 등을 요구했고, 2001년 7월 노사정위 비정규직특위가 처음 만들어질 때 두 노총과 공동으로 〈비정규 통계 개선에 대한 노동계 의견〉이라는 문건을 제출하게 됩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조사 문항을 참고하고 국제비교 가능성도 고려해서 설문을 전면 재구성할 것과 함께 원자료 공개와 폭넓은 접근을 요구했죠. 지금도 부가조사 발표 자료에 노사정 합의에 따른 것이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는데 그때 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센터는 통계 개선 요구부터 시작해서 부가조사가 정례화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공식 통계가 생산되면 센터가 정기적으로 분석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가지고 있었어요. 2001년 두 번째 시험조사 결과 원자료를 입수한 뒤에 자체적으로 할까 하다 조금 안전하게 가기 위해 한노사연 김유선 선배에게 분석을 의뢰했는데 한노사연 이름으로도 발표하겠다고 얘기해서 차질을 빚습니다. 결국 제가 직접 분석을 했는데 센터의 고용 형태 분류 체계는 통계청이나 한노사연과 차이가 있습니다. 센터 방식은 각각의 고용 형태를 트리구조로 순차적으로 배열하고 배타적으로 구분해서 서로 중복이 없도록 했어요. 예를 들면 기간제이면서 동시에 파트타임이면 파트타임으로 보고, 파트타임이면서 파견 노동이면 파견으로 보는 식이죠. 각각의 규모를 더하면 전체 합산되는 방식입니다. 가장 최근의 경사노위 연구보고서를 보면 센터 방식대로 중복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더군요. 국제 비교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임시직 분류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합니다.

 

남우근   한때 한노사연과 서로 누가 먼저 분석해서 보도자료를 내느냐로 시간을 앞다툰 적이 있죠. 연말에 별도 단행본으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만 분석해서 냈어요. 한노사연에선 김유선 소장이 꾸준히 담당해서 ‘비정규 분석은 김유선’이라고 각인돼버린 게 있는데 우리도 그럭저럭 계속 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담당자가 계속 바뀌기도 하고 분석한 걸 상품으로 잘 써먹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비정규 문제, 라고 하면 한국비정규노동센터라는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었는데 내부 인적 구성이 안정적이지 않다 보니 유실된 느낌이어서 안타깝죠.

 

기호운   그러게요. 센터의 연구 용역이 재정 문제와도 연관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이 있는 것 같아요.

 

박영삼   초기에는 꼭 필요한 연구는 자체 재정으로라도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박승흡 대표가 뒷받침해서 가능했던 거였죠. 산별연맹에서 적은 비용으로 연구 용역을 맡길 때도 센터에서 추가로 투자해서 규모 있게 하기도 했고, 일본의 파견 노동 연구자 와키다 시게루 교수를 초청해서 열었던 토론회도 센터 자체 재정으로 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연구는 양대 노총과 산별연맹이 주된 수요처였고 정부 용역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노동부 감시단속근로자 연구가 시발이 됐습니다.

 

남우근   2004년부터 자체 연구는 거의 없었어요. 연구 용역을 받지 않으면 재정이 충당되지 않는 상황이었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조에서 주는 프로젝트는 몇백만 원 수준으로 적었고,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용역으로 2003년 공공부문부터 해서 여성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실태조사를 했고, 2010년부터는 거의 해마다 한 거죠. 그게 재정 면에서 도움이 됐어요. 규모가 작은 건 센터 내부에서 두세 명이 했고, 큰 프로젝트는 외부 연구진이 결합했는데 연구비를 많이 못 드렸어요.

 

정흥준   프로젝트는 일 년에 열 개에서 열다섯 개 정도로 남우근 위원이 할 때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되게 힘들었어요. 연구할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내가 많이 한 것 같아요. 제가 연구자 네트워크도 없을 때라 김성희 소장이 센터 외부에 있으면서도 알음알음 소개해주며 중간 역할을 해줬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연구자를 체계적으로 조직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쯤엔 제가 박사 학위 받고 2년 정도 됐던 시기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연구도 가능했고, 인맥도 약간 있을 때라 가능했습니다. 조돈문 대표, 김성희 소장, 이남신 소장이랑 합심해서 그때 열서너 명을 모아 정책연구위원회를 꾸렸어요. 손정순, 박종식, 노성철 등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집 나간 사람들을 불러들인 거죠. 그동안 센터와 같이했던 분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다시 모인 거예요. 연구도 하고 정기적으로 회의도 하면서 체계화시키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용역을 받아 차분하게 진행하면서 히트작들을 만들어냈죠. 조돈문 대표가 공들여서 PMProject Manager 역할을 하셨거든요. 2015년 특수고용, 2016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2017년 간접고용 이렇게 쭉 비정규 노동 정책 연구를 활발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젊은 연구자들도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었죠. 그리고 제가 한국노동연구원 들어가면서 황선웅 교수가 정책연구위원장을 맡게 된 거죠.

 

기호운   저는 센터 창립 초기부터 정책연구위원회가 있었던 걸로 알았는데 뿌리를 이제야 알았네요. 그럼 그전에는 센터 정책국에서 다 진행했나요?

 

남우근   외부 연구자들에게 정책위원으로 이름을 붙여주는 식이었지 위원회 회의가 따로 있지는 않았죠.

 

박영삼   센터 초기에는 외부 연구자들도 있었지만, 우리보다 더 잘한다고 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센터가 연구 방향이나 방법론을 기획해놓고 꼭 필요한 부분만 참여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이후엔 센터를 거쳐 간 활동가들이 박사, 교수가 되고 전문 역량을 키우면서 그 풀들이 양질 전환되면서 위원회로 다시 모일 수 있게 잘 풀어온 것 같네요.

 

비정규 노동 정책의 전략적 방향 고민해야

 

기호운   센터의 정책 연구 흐름과 관련해서는 많은 얘기가 오간 듯합니다. 비정규 노동 운동에서 센터가 정책적 방향을 잘 설정해온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센터에 와서 최근 정책 연구 보고서를 보면서 10여 년 전과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센터 20년을 지나오면서 올해부터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을 센터 활동 목표로 정하고 운동으로 만들어가려고 구상하고 있는데요. 센터가 만들어가야 할 정책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새로운 방향 제시 등 고민되는 부분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흥준   비정규 노동에 관한 정책 생산은 우리보다 다른 데가 훨씬 더 잘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떻게 보면 고용노동부 정책 과제 1/3이 비정규직 관련된 것들이에요. 그거를 전문가들이 어떻게든지 만들어내고 관료들도 공부해서 웬만큼은 다 알아요. 그래서 공무원들이 꾸준히 비정규 관련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고 봐요. 그런데 비정규 문제를 개선하고 차별을 줄이고, 이해대변할 수 있느냐는 건 다른 문제죠. 정책이 없어서,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우리가 계속하려고 했던 비정규 노동 운동의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건지, 주체들을 위한 정책 대안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으로 비정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은 많이 나와 있다고 보고 전략적 방향에 대해 센터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의미가 있었던 것은 2014년에 센터가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수탁받은 거예요. 첫 설계를 잘했어요. 아쉬운 것은 생각보다 시너지가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박영삼 위원의 말씀처럼 처음에 우리가 선도적 역할을 하면서 정책 생산을 했다가 운동의 주체를 형성해오면서 결국 우리가 주체가 돼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현 정부 들어 일자리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에 비정규직 대표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고요. 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센터가 하고 있고요. 그런데 살만 쪘지 근육이 없어서 과연 이게 잘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봐야 해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서울노동권익센터, 서울감정노동센터가 모두 성과를 내고 있지만, 각자 열심히 하는 형태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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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근   비정규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데가 많아진 건 사실이죠. 정흥준 박사 얘기와 유사한 맥락이긴 한데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노동 정책을 거의 전담해왔다면 지자체들도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고 공간을 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지역에 적합한 정책을 발굴해내는 것, 사례들을 자꾸 만들어내서 중앙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를테면 서울시가 했던 노동 정책들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잖아요. 지역 노동 정책은 서울시 노동 정책을 대부분 흉내 내고 있는 형태인 건데, 저는 그게 꼭 나쁘다고 보진 않아요. 그런데 각 지역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해서 지자체 노동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걸 중앙에서 담당하기보다 지역 센터들이 지역에 있는 역량과 같이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체 비정규 운동에서 정책 측면을 봤을 때 사회 전반으로 비정규 노동에 관한 연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연구자들도 학교에 있든 연구소에 있든 많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비정규 운동 주체들의 정책 역량은 어떤가를 보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비정규직 조합원이 35%가 될 만큼 비정규 노조들도 예전에 비하면 규모도 커지고, 조직도 많이 생겼어요. 지역 비정규센터도 마찬가지고요. 그에 비해 자체 정책 연구 역량은 크게 바뀐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지역 센터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노동단체인데,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정책 하도급을 주는 구조에 여전히 머물러있다는 게 고민이에요. 우리 센터가 과제 받아서 보고서 써주고 납품하는 게 아니라 지역 활동가들과 같이하면서 연구 과정에서 정책 역량을 전수하는 식의 연구 패턴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비정규 노조들의 정책 역량을 향상시키고, 지역 비정규 단체들의 정책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영삼   센터 창립하고 20년이나 지났는데 돌아보면 한순간인 것 같습니다. 그때 상황과 많이 달라져 있기도 하고요. 비정규 문제를 연구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건 사실이에요. 비정규직 문제를 빼면 노동 정책 주제의 절반 정도는 없을 정도로 누구나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비정규직 문제라고 해도 이미 노동 영역을 넘어섰거나 비정규직 이슈였던 것이 이제는 전체 사회의 미래 문제로 변화돼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로 비정규직을 전전하기 시작했던 사람들 가운데 거의 20년이 흐르는 동안 국민연금을 제대로 못 넣은 사람이 꽤 많을 거예요. 그리고 취업이 늦어지고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국민연금 이력을 쌓지 못한 청년들도 많잖아요. 50대에 직장을 나온 사람들의 상당수도 연금 수급 시기까지 긴 기간을 착실하게 메꿀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시작으로 소득기반 사회보험을 확장해서 취업 형태와 무관한 사회안전망을 확장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제는 기여형 사회보험 방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 완전히 새로운 소득보장제도를 모색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안전망의 현실과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에 건강보험, 국민연금 직장 가입 의무화 대상이 5인 미만 사업장까지로 확대됐어요. 그런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임금 노동자인데도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에 모두 가입돼 있지 않은 사람이 여전히 3백만 명이 훨씬 넘습니다. 센터 분류상 비정규직이고 영세사업장 소속이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오래전부터 5인 미만까지 사회보험에 편입됐다고 하지만 아닌 거죠. 최근엔 인적 용역 프리랜서 계약이 늘면서 아예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쪽으로 많이 옮아간 걸 확인할 수 있잖아요. 이들은 임금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특고 플랫폼 사회보험 의무가입 확대도 지난 시절의 5인 미만 적용 확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원인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 과정에 관한 연구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득 파악, 사회보험 가입이 사업주는 물론 종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생각만큼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고용 노동의 문제뿐만 아니라 소득, 세금, 사회보험 등 영역에서 충실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혜인   센터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 노동 쪽에서 일하면서도 느끼는 건 고용 형태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규직도 정규직 나름이고 비정규직도 비정규직 나름이잖아요. 그런 구분을 하는 건 연구자들이 하는 거지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청년층을 생각했을 때 비정규직이 아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거든요. 일정 단계를 통과한 사람이라든지 시험에 합격한 사람인 건데 어느 정도 배경이 갖춰졌기 때문에 시험도 볼 수 있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란 것에 갇혀있으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누구에게든 보편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 사회안전망은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최근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든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것들이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실업급여가 필요하고, 육아휴직이 필요하고, 산재보험을 통해서 다쳤을 때 국가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고. 최저임금도 그랬던 거죠. 비정규직에 한정하지 않고 모두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전반적인 노동 시장 개선, 상향 평준화를 위한 정책을 좀 더 폭넓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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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운   두 시간 넘게 고생 많으셨고, 바쁘신 가운데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고요. 앞으로 센터에서 정책 연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노동 환경이 나아질 수 있도록 비정규 노동 문제에 대한 대안을 폭넓게 만들어가는데 함께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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