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협동조합] 나에게도 좋은 이웃이 생겼다-‘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을 만들다

by 센터 posted Sep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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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 사무국장

 

 

2015년 3월 22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세 200여 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이하 좋은이웃)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몇 년 간 수많은 토론과 다양한 시도를 거치면서 가졌던 회의와 우려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안산·시흥지역 노동자생활공제회라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국 사회, 그리고 반월시화공단 현실

 

‘좋은이웃’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한국 사회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서 출발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53.9 대 46.1퍼센트,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노동 시간, 월 120만 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 323만 4천 명(전체노동자 중 25.9퍼센트), 평균 근속년수 4.9년. 장시간 저임금, 높은 고용불안, 낮은 기업복지로 허덕이는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반월시화공단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대부분이 시급 5,580원을 받고 있는 최저 임금 노동자이며 평균 임금이 초과 근무를 포함해 179만 원이다. 1만 5천600개의 사업체가 있으나 사업체당 평균 노동자 수는 16.6명이며, 50인 미만 사업체가 98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한 사업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간 평균 노동 시간이 54시간으로 최장 노동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은 그야말로 가난한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며, 각종 사회 문제와 갈등이 집약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조직률은 1퍼센트에도 못 미치고 있다. 자본이 집체적이고 집중적으로 탄압하는 데다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은 낮고 사업장은 영세하며 노동 시장이 안전하지 않다보니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부터, 만들고 난 뒤에도 유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노동 관련 예산은 안산시 예산의 0.1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노동 정책이나 지원이 전무한 현실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고 뭉칠 수는 없을까? 비정규직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상부상조하며 스스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2012년과 2013년 진행한 노동자 실태조사와 욕구조사, 정책 연구를 바탕으로 얻은 결론은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 보장과 권익 증진을 위한 노동자공제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노동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공제회를 창립하고 일터와 삶터에서 필요한 것을 공동의 힘으로 풀어가자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은 그렇게 탄생했다. 창립총회는 회원들이 한마음으로 만들어간 자리였다. 행사장에 쓰일 바람개비를 만드는 것부터, 좋은이웃을 창립하는 감동을 담은 카드섹션 공연까지 회원들의 땀방울이 스며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땀과 노력이 모여 드디어 3월, 300여 명이 가입한 좋은이웃이 ‘나에게도 좋은 이웃이 생겼다’라는 슬로건아래 창립을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든든한 울타리, ‘좋은이웃’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획-발족식.JPG

2014년 11월, 좋은이웃 체험단 설명회 및 발족식을 가졌다.(@좋은이웃)

 

‘좋은이웃’ 어떻게 준비했나

 

처음 ‘좋은이웃’을 구상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인 데다, 과연 사람들이 모일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 운동의 정체성을 퇴색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나은 삶을 바라며 함께 꿈꾸는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노동자생활공제회라는 새로운 구상을 현실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 

 

200명이 넘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혹은 회사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 구석구석 찾아가  ‘좋은이웃’에 대해 설명하는 여성 노동자도 있었다. 유창한 언변은 아니지만, “좋은이웃은 우리의 복지 사업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스스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한 여성 노동자의 절실함과 순수함이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여 해당 사업장에서만 80여 명이 가입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좋은이웃’을 자신의 사업으로 생각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2014년 지역 노동자 동아리, 노동대학, 민주노총, 미조직 사업장, 비정규센터를 주축으로 공제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대부분 현장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는 준비위원회의 특성상, 늦은 잔업이 끝나고서야 회의가 시작됐다. 몸은 천근만근, 집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월시화공단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라는 공감대, 우리 문제를 함께 해결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힘겨운 현실의 벽을 하나씩 넘어설 수 있었다.

 

준비위원회에서 조직홍보팀과 사업팀을 꾸렸다. 사업팀은 교육사업팀, 반찬사업팀, 사업발굴팀, 동아리소모임팀으로 세분화했다. 2014년 8월, 노동자생활공제회의 자녀교육센터 ‘꿈꾸는 숲’을 개관했다. 그곳에선 학업 능력을 높여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공단에서 늦은 밤까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밥을 주고,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다양한 문화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반찬사업을 비롯한 생활 편의 기능을 시범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원 모집에 돌입했다.

 

2014년 11월, 서비스 체험단 사업에는 무려 100여 명이 신청했다. 좋은이웃 사업이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바로 우리들을 위한 사업임을 알기에 스스로 체험해보고, 평가해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체험단은 석 달여 간 팀별로 서비스를 체험해보기도 하고, 원주사회적기업네트워크를 탐방해 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후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지원서비스를 확정지었다.

 

기획-창립총회.JPG

‘나에게도 좋은 이웃이 생겼다’라는 슬로건 아래 치러진 창립총회(@좋은이웃)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이란 무엇인가

 

‘좋은이웃’은 안산·시흥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생활공동체다. 최저 임금으로 생활하면서 열악한 기업복지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이 서로 도와가며 지역 복지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간접적인 임금 상승 효과를 불러일으켜 일하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현재 공제회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지역의 건강한 생산자와 연계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생활지원서비스를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상조, 법률서비스, 카센터, 병원, 교육센터, 부동산, 휴대폰, 문화(영화, 연극, 공연), 여행사, 관광버스, 우리 동네 할인가게, 안경점 관련 업체와 협약을 맺고 회원들이 해당업체를 이용할 경우 할인 혜택 및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원 간 제철 농수산물을 비롯한 소비재를 공동구매하기도 한다. ‘좋은이웃’은 여행, 도예, 영화, 주말농장 동아리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꿈꾼다. 일밖에 모르던 노동자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도자기 그릇을 만들고, 주말농장에서 농작물을 기르면서 함께하는 즐거움, 잊고 살았던 자신의 열정들을 발견하고 있다. 

 

안산·시흥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좋은이웃’의 규모가 커지고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성장하면 이후에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정책 제안을 하는 등 지방정부, 자본, 노동 간 교섭도 추진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산별노조에 집단 가입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조직화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본다.창립총회 이후 지금까지 370가구가 가입했으며, 연 1회 진행하는 총회, 월 1회 진행하는 운영위원회, 분기별로 진행하는 이사회를 통해 사업 보고 및 의결을 하고 있다. 조합원이 되려면 출자금 1구좌(5만 원)이상을 신청하고, 매달 5,580원을 납부해야 한다. 월 회비를 최저 시급으로 정한 이유는 한 달 노동 중에서 한 시간은 서로가 함께하는 삶을 위해 나누자는 취지이다.

 

좋은이웃의 희망과 가능성

 

최근 ‘좋은이웃’은 동네모임을 통해 생활공동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동네모임은 안산 및 시흥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회원 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네모임을 시작하기까지 운영진들은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모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동네마실 나오듯 편안한 복장으로, 아직은 낯설기만 한 이 모임에 용기 내어 나와 주었다. “외롭고 힘든 자신의 생활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생긴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쿵쾅했다”는 이웃도 있었고, “다양한 직업이 있으니,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는 이웃도 있었다. 그렇게 회사와 개인의 울타리에 갇혀 살아왔던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손을 건네는 연대의 시작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획-동네모임.jpg

안산, 시흥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회원 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네모임(@좋은이웃)

 

지난 8월엔 ‘좋은이웃’과 연계하고 있는 지역 노동자 동아리들과 안산노동대학과 함께 공동야유회를 다녀왔다. 180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그야말로 옛 시절 마을잔치와 학교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장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수박 쪼개 나눠먹고, 술 한 잔 걸치면서 흥에 겨워 춤도 추고, 이어달리기, 줄다리기, 박 터뜨리기를 하며 함께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우리의 이웃을 느끼고 돌아왔다.아직은 초기단계라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하반기부터 생활 지원 서비스를 확대하고, 다양한 삶의 문제를 공동의 힘으로 풀어가기 위한 시도들을 하면서 명실상부한 생활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에서 ‘좋은이웃’을 거점으로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기를 꿈꾼다. 그 꿈이 ‘좋은이웃’과 함께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우리에겐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함께하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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