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어이없고 쓴 웃음을 짓더라도 하긴 해야겠다.
송용한(센터 정책연구위원)
며칠 전 20대 총선 투표 안내문과 선거공보물이 집에 배달됐다. 그 선거공보물을 집어 들고 들어와 여태 책상 한 편에 던져놓고 제대로 들춰보지 않았다. 이번에 내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는 나오지 않았고, 다른 당 후보들은 다 그렇고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더구나 이번 총선은 공천 과정은 서로 계파 싸움을 하며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정치권의 이전투구 싸움이 민의를 대변하기 위한 조정과정이고, 그게 바로 정치고 민주주의라면 나로서는 할 말은 없다. 그냥 속으로 ‘너희들이나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욕 한 번 내던지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을 뿐이다.
나도 무의식중에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거다. 그런 정치에 대한 불신 속에서 정치에 대한 참여나 관심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이게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며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선거는 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요식행위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정치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이 막말로 지들끼리 다 해먹도 관심이 없다. 더 관심 가져봐야 골치 아프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되어 있다.
문득, 이게 나만의 문제로 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한 때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당에 가입하고 지역에서 열심히 정치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은 거기서 멀어져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봐야 바뀌는 건 없고 일상이 피곤할 뿐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기성 정치권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은 아닌가 싶다. 어렵게 말하면 무의식중에 우리는 구조적으로 정치로부터 배제되는 과정 속에 있는 거다. 그리고 불신과 무관심 속에 ‘정치인들이 지들끼리 계속 해먹게 냅두세요’를 무의식중에 인정하는 구조다. 어쩌면 비정규직 문제도 이런 과정 속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사회・제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번 선거에서 투표는 해야겠다. 차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특히 ‘공약 없는 총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약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판에 공천 싸움에서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지난 2월 3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 집중'에서 19대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에 대해 "51점 나왔다. 낙제점임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다' 이렇게 표현해야 될 것 같은데 18대 국회보다는 약 16%p정도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이없지만 18대 국회의 공약 이행률은 35%대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들 공약은 공약이 아니라 순 ‘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19대 국회의원들이 공약 이행률이 18대보다 16%올라 51%가 된 게 공약이행에 대한 감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약 이행률을 생각하고 선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쓴 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공약을 살펴보고 따져봐야 한다.
오늘은 퇴근하고 들어와 인터넷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 각 정당 정책공약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리고 책상 한 편에 던져둔 선거공보물을 펼쳐들고 각 정당 후보들의 정책공약을 비교하며 따져보고 있다. 어쩌면 이게 우리가 무의식중에 정치로부터 배제되는 구조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고 감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이없고 쓴 웃음을 짓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힘이 없는 정당이고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후보라도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정책을 내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정당과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특히 되지 않을 군소정당 후보보다 당선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달콤한 말에 더 이상 놀아나고 싶지 않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에 그동안 속을 만큼 속았고 이제는 됐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