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노동과 새로운 과제
장 희 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며칠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5G 기술이 상용화 되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3D 프린터, 스마트 로봇, 자율주행과 같이 4차 산업혁명을 특징짓는 기술적 진보가 더 이상은 미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변화를 소개하는 매체들은 기술 진보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빨라지고 편리해질 것인지 설명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미래에 장밋빛 전망의 한편에 막연한 불안감도 같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 미래의 직업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내 일자리는 어떻게 될 것인지.
불과 4~5년 전만해도 미래의 기술이라고 소개되었던 것들이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앱으로 맛집의 음식을 배달시키고 가사도우미를 호출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다. 반쯤은 쏠쏠한 부업으로, 반쯤은 호기심으로 전동 킥보드를 타고서 우버이츠나 마켓컬리 배달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주위에 적지 않다. 기술의 변화로 우리의 일상이 변화하는 것처럼 일의 의미와 노동의 조직화 방식이 변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가이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변화 앞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대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ILO는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일의 미래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해당 위원회는 최근 ILO 100주년을 기념하여 『더 밝은 미래를 위한 노동(Work for a brighter future)』 보고서를 발행하였는데, 해당 보고서는 인간 주도의(human-in-command) 하에 기술이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ILO의 선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정책 실험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핵심은 급격한 기술 변화가 이후 우리의 일자리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 노동자의 지위와 노동조건에 미칠 영향,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논의에서 학계와 대중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고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산업구조와 고용에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일 것이다. 특히 경제구조의 변화로 줄어드는 일자리와 새롭게 발생하는 일자리의 순효과(net effects)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는 Frey와 Osborne의 연구가 널리 회자되고 있고, AI로봇의 도입으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가장 큰 위협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도 비등하다. 하지만 이러한 비관적 전망들이 지나치게 기술결정론적 사고에 치우쳐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술로 인해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 또한 적지 않으며 일자리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사회의 능동적 개입을 통해 기술과 노동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포용적 로봇(inclusive robots)’ 개념은 로봇을 인간의 대체가 아닌 인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한편 노동시장에 미칠 효과와 관련해서는 최근 디지털화가 특정 집단에 미칠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까지 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소수자 집단들에게 디지털화는 과연 기회일까 위협일까. 돌봄 노동에 묶여 있는 여성들에게 디지털화는 노동시장으로의 진입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동화의 대상이 되는 주변적이고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큰 위협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집단별로 신기술이 가져올 복합적 효과에 대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특히 정보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령계층, 저소득계층에게 디지털 기반의 산업구조가 가져올 효과에 대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최근 들어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새로운 산업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노동의 형태일 것이다. 플랫폼 노동, 클라우드워크, 긱노동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갖는 특성과 이것이 일자리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사이다. 지금까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몇몇 실증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이러한 종류의 새로운 노동은 높은 유연성, 낮은 소득, 길고 예측하기 어려운 노동시간, 높은 이직률 등 불안정성을 그 특징으로 하여 일자리의 질 측면에서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알고리즘에 의한 불명확한 업무 할당, 임의적인 계정 비활성화 정책, 인종/성별/외모에 대한 디지털 차별, 과업의 극단적 분절화와 노동 소외 현상도 디지털 노동을 특징짓는 어두운 단면이다.
우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디지털 노동자들 상당수는 기업, 플랫폼, 고객에 종속되어 일하면서도 계약형식상 자영업자인, 일명 ‘디지털 특고’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 전통적인 특고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디지털 특고로 불리는 새로운 고용형태가 일자리의 질에 미칠 부정적인 효과는 상당부분 예견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고용형태가 불안정성을 주요 특징으로 삼게 된 것은 새롭게 등장한 부문의 고용관계가 비제도화되고 비전형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제도성을 완화하기 위한 보호방안이 시급히 도입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변화 속에서 산업의 성장을 독려하면서도 노동을 적절하게 보호하는 것은 국가별로 중요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미 여러 국가들에서는 이와 관련한 정책 수립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선진적으로 프랑스는 2016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플랫폼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해당 법률은 플랫폼에 대한 종속성이 인정되는 종사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전통적인 노동자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을 노동자에 준하여 파업권과 같은 기본 노동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진일보한 방법이다. 이 외에도 독일의 노동 4.0, 영국의 굿워크플랜과 같은 다양한 정부정책 보고서들도 발행이 되면서 각국마다 노동의 미래에 대한 보호의 방향과 정책비전을 도출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한 미국의 경우 국가의 직접적 규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자율적인 규제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의 미케니컬터커들이 고객들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평가시스템인 터콥티콘과 다이나모가이드라인을 들 수 있고 최근에는 이동형 복지(portable benefits) 플랫폼에 대한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제도적인 보호방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인 해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다양한 해외 사례들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조직화 방식과 이해대변방식도 지금보다 더 포용적이고 유연하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사회 전반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혁신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디지털 노동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는 문제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비고용 노동, 취약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의 이해대변체를 확립하는 것, 사회적 연대를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을 세우는 일과 떼놓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라는 대세 속에서 이제는 정치와 사회가 능동적으로 개입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