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Talk] 상상하고 실험하는 노동운동, 그 길을 만드는 한 사람_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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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jpg 인터뷰이 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깡.jpg인터뷰어 강인수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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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난 교회 체질이 아니야

 

깡.jpg반갑습니다. 지난 7월 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수련회 때 만나긴 했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일단, 《비정규노동》 독자님들께 자기소개 간단하게 해주세요.

 

박윤준.jpg저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 살고 있고, 2017년부터 음성노동인권센터(이하 음성센터)에서 상담실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센터에 오기 전에는 양계장에서 3~4개월 정도 일했어요. 2016년 8월에 음성군에 처음 내려와서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용직 일을 좀 하다가 여성농민회 분 소개로 양계장에서 일하게 됐죠.

 

깡.jpg색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셨네요. 그럼 음성에 어떻게 가게 된 거예요?

 

박윤준.jpg센터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랑도 연결될 것 같은데 제가 서울에 있는 신학교를 다녔거든요. 신학생 시절에는 사실 노동 문제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그러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영등포산선)를 알게 됐죠. 영등포산선에서 해마다 진행하던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투쟁 농성장 찾아가서 기도회를 하고 그분들이 어떻게 싸우게 됐는지 이야기 듣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게 노동운동을 접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지요. 그러다 군종병으로 군대갔는데 그때 교회 체질이 아니란 걸 확실하게 깨닫게 되고 시민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깡.jpg시민사회운동에 뜻을 두게 된 것이 군대였다니 신선하네요.~ ^.^

 

박윤준.jpg2014년도에 군대에 갔는데 그때가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직후였어요. 그래서 사회 문제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더 많았죠. 군 복무기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 결론은 ‘교회는 아닌 것 같다’였고요. 시민사회운동을 하고 싶다. 특히 노동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제대하고 달리 취업할 데가 없어서 건설 현장에서 배관 일을 했어요. 일하면서 찍은 사진이랑 글도 페이스북에 올렸죠. 그걸 영등포산선에서 일하던 선배가 보고 노동 훈련 프로그램을 같이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노동을 하고 있어서 노동 훈련은 필요 없고 차라리 노동 단체를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죠.

 

 

영등포산선에서 이어진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윤준.jpg그때 당시 홍윤경 부장님이 몇 군데를 소개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음성노동인권센터였어요. 소개받은 다른 곳도 좋았지만, 집에서 독립해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죠. 음성 내려와서 바로 센터 활동을 하진 않았고, 자립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1월부터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깡.jpg영등포산선을 통해서 음성까지 가게 된 거니까 영등포산선은 본인 인생에서 되게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곳일 수도 있겠네요.

 

박윤준.jpg그렇죠. 영등포산선 가기 전에 서울 금천구에 있는 새터교회 영향이 컸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영등포산선에 계신 손은정 목사님이랑 새터교회 목사님과 가까운 사이시더라고요.

 

깡.jpg신학교 다닐 때는 노동 문제에 별로 관심 없었다고 했는데, 보통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어야 새터교회나 영등포산선 같은 곳을 찾게 되는 거 아닌가요?

 

박윤준.jpg그렇긴 하죠. 처음 영등포산선에 갔던 게 신학교 3학년 때에요. 그전에는 뭔가 교회가 좀 이상하다, 소수자 문제나 사회 문제에 있어서 히스테릭하게 반응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세상 밖은 다 죄인이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잘하면 천국 갈 수 있다는 얘기들이 되게 분열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같이 살아가는 이웃들과 어떻게 더불어 잘살 수 있을지 관심을 두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에 관심 갖게 될 텐데 그런 연결고리가 많이 없다는 느낌이었고, 되게 강박적으로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제약시켜야 한다는 분위기였죠. 예를 들면 밖에서 데모하고 왔다고 하면 왜 나가서 데모질하냐 이런 얘기 듣고~.

 

깡.jpg음성 지역을 선택했을 때 지리적인 영향 외에도 어떤 면에서 매력을 느꼈나요?

 

박윤준.jpg음성은 농촌이면서 동시에 공장이 많은 소도시인데 도시가 주는 느낌이 좋았어요. 벚꽃 필 무렵에 갔는데 첫인상이 너무 좋았죠. 당시 조광복 노무사님 혼자 거의 일을 하다시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풍경만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깡.jpg낮술 마시고 다닌 건 아닌가요? ㅋㅋ

 

박윤준.jpg그랬죠~ 그리고 제가 도시적인 곳보다는 농촌스러운 걸 좋아해요. :) 농사도 짓고, 하고 싶었던 목공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죠. 어머니가 서울에 살고 계셔서 너무 멀지 않아 안심도 됐고요.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깡.jpg그래서 상상했던 일을 하고 있나요?

 

박윤준.jpg거의 다 하고 있어요. 음성에서 활동하다가 만난 분과 결혼을 했는데 장인어른이 농사를 지으셔요. 그곳에 가끔 가서 고추 심고, 감자도 심고. 그리고 주변에 농민분들이 많으니까 모내기를 하거나 일손 필요할 때 돕기도 하고요. 음성에서 목공하시는 목사님을 만나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실제로 가구를 만들어서 팔기도 해요. 제가 상상했던 일을 다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깡.jpg와~ 부럽네요. 음성센터엔 두 분이 일하시는 거죠?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독립했다고 해야 하나. 조광복 노무사님이 청주센터에 계시다가 음성센터를 만드신 거잖아요. 자매 조직 같은 느낌이에요.

 

박윤준.jpg그렇죠. 처음에는 거의 모자 관계였다고 봐요. 청주센터 분들은 저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들이나 마찬가지죠. 조광복 노무사님을 2년 동안 파견 보내주셔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어요. 지금은 완전히 자립한 상태죠. 회원관리도 독자적으로 하고 있고, 작년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필요한 경우에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고요. 왕래도 잦았는데 코로나 시기랑 맞물리면서 좀 뜸해져서 아쉬웠죠. 그러다 지난 한비네 수련회에 같이 갔다 오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어요.

 

깡.jpg회원은 몇 명 정도 되나요. 두 분이 상근하면서 활동하시기엔 재정도 빠듯하고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아요.

 

박윤준.jpg등록된 회원은 한 30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단체 후원도 있고, 1년에 한 번씩 후원 행사를 하는데 그때 많이 도와주셔서 도움이 되고 있어요. 2015년 3월에 센터를 창립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우리 센터는 활동가가 두 명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사회 자원이 적어요. 청주처럼 시민사회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지역도 아니고요. 음성에서 상근 활동가가 있는 시민단체로는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유일해요.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 안에서만 후원 회원을 받아 운영하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깡.jpg그렇겠네요. 그럼 재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박윤준.jpg센터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역을 초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페이스북을 열심히 했죠. 그러다 보니 전체 회원의 20~30% 정도는 음성 지역 외에 사시는 분들이에요. 두 명이 일하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돼요.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정책 활동도 하고 보도자료도 쓰고, 교육도 하고…. 그러다 보니 좀 깊이 있게 한 분야를 파고들지 못하는 한계가 있죠.

 

 

상담이 노동조합 조직화로 이어지다

 

깡.jpg여력이 된다면 더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음성 지역은 농촌과 공장 지역이 결합한 곳이라고 하셨는데 주로 어떤 사업장들이 있는지도 같이 소개해주시면 좋겠네요.

 

박윤준.jpg전국 통계를 보면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20% 안팎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음성군은 거의 절반 가까이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에요. 업종별로 보면 화학 업종이 제일 많고, 금속 기계, 식품 제조 순이고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이에요. 음성이 유독 산업단지를 많이 만드는 중소도시 중 하나인데 지금 조성 중인 거 포함해서 스물여섯 개 산업단지가 만들어져 있고, 또 계속해서 만들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주민들과 겪는 갈등들도 많죠. 자연 부락을 만들어서 살아오던 주민 입장에서는 계속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거죠. 보상금 일부를 받고 땅을 내놓거나, 환경오염이나 수질 오염이 심해서 토착민이 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또 이주 노동자도 상당히 많아서 깊이 들여다보면서 대응하고 싶은데 여력이 안 되니까 이도저도 아닌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항상 아쉬움이 있죠. 요양보호사 분들 처우 문제나 노동조합도 많이 만들고 싶은데 그런 조직 활동도 늘 한계가 있고요.

 

깡.jpg상담 전화는 많이 오는 편인가요? 한 번 걸려오면 상담시간도 많이 걸리잖아요. 내담자는 궁금한 게 많아 질문도 많을 테고요.

 

박윤준.jpg그렇죠. 많은 날은 일고여덟 통 정도 돼요. 저희는 대면이 더 많아요.

 

깡.jpg상담이 많으면 지원할 것도 생기고, 뭔가 일거리가 자꾸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조직이 필요하면 조직도 같이하고,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상담으로 끝나고 그렇게 정리를 하시는 건가요.

 

박윤준.jpg네~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다르죠. 설명만 드릴 때도 있고, 제도적인 구제 절차가 필요하면 지원하고, 기자회견이나 피케팅을 하기도 하고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해결할 의지가 있어서 조직한 사례도 있고요. 사건이나 내담자의 조건에 따라 그때그때 해결책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깡.jpg상담 사례 중에서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었다고 느낀 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윤준.jpg아무래도 노동조합까지 이어지게 된 상담인 것 같은데요. 충주 지역인데 북충주 농협 임원 중 한 분이 한우 매장을 하는데 몇 년 동안 소고기를 무상으로 날랐어요. 나중에 계산해보니 단가가 3천만 원이 넘었더라고요. 이걸 직원들이 알고 내부고발했어요. 그런데 내부고발한 직원들 대부분이 사직 압박을 받아 퇴사하고, 결국 여성 두 분만 남았던 상황인데 결국, 전보를 당했어요. 한 분은 주유소에, 한 분은 농협은행 창구에 대기 발령 식으로 앉아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6개월 정도 전화로만 상담했는데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센터를 찾아오셨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바로 민주노총 사무금융 서비스노조 지역본부장님 모시고 곧바로 노동조합을 만들었죠. 그날 한 사람은 분회장 다른 한 사람은 사무국장이 되었죠. 다음날 팩스로 노조 설립을 알리는 공문 보냈어요. 농협 측에 창립총회 장소를 협조해달라고 했는데 묵묵부답이어서 농협 현관 앞마당에서 집회 형태로 창립총회를 하고 비리 사실을 알렸습니다. 작은 동네라 주민분들이 삼삼오오 구경을 나와 이야기 듣고 응원도 해줬어요. 이후에는 조합장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사회에 들어가면서 조합장이 꼬리를 확 내렸고, 최근에 임단협까지 체결했어요. 그때 자기들한테 용기를 줘서 너무 고맙고 든든했다고 얘기해주시니까 제가 뭐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ㅎ

 

깡.jpg그분들로선 정말 고마웠겠죠. 그런 분들하고 계속 이어지다 보면 더 많은 사람과 같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윤준.jpg제 눈에는 그분들이 대단한데. 상담하다 보면 멋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상상력과 새로운 실험이 가능한 비영리 단체 활동, 그리고 한비네

 

깡.jpg음성센터처럼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비영리 민간단체잖아요. 뻔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민간단체 활동가로서 느끼는 보람이나 어려움이 복합적일 것 같은데요.

 

박윤준.jpg주로 재정이 어려운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 센터 활동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면, 그리고 이런 활동이 알려진다면 후원하는 분이 분명히 생긴다고 봐요. 반면 어느 날 후원인들이 계속 빠져나간다면 미련 없이 활동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비영리 단체의 유연성, 그리고 이점인 것 같아요. 활동을 재생산할 수 있고, 매일매일 새로운 활동을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이 현실화되고 스스로 평가할 뿐이지 누가 너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니까요. 산별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에서 하지 못하는 활동을 민간단체에서는 좀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깡.jpg노동조합에서 하지 못 하는 일 가운데 비영리 단체가 할 수 있는 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윤준.jpg저는 한비네가 하는 일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노동운동이 어떻게 지역 운동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봐요.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지역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고, 마을 사람들을 조직하고. 노동조합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산별 조직 체계 중심으로 지역 노조 성격의 지역본부가 광역으로 묶여 있다 보니 지역민들과 이웃으로서 살 부대끼며 하는 밀접한 활동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요. 충북의 경우도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져서 비청주 지역민들과 더불어 지내면서 일상적인 활동을 하기는 어렵거든요. 그런데 한비네는 지역에서거점 센터 중심으로 활동하니까 지역과 밀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깡.jpg지역 비정규 운동 단체가 노동조합에서 하지 못 하는 일을 하기도 하지요.

 

박윤준.jpg기존 노동조합 운동이 대공장 중심으로, 그리고 사업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임단협을 맺는 방식으로 운동을 해왔다면, 지금처럼 원하청 구조가 다양해지고, 그에 따라 하청 비정규 노동자, 작은 사업장 노동자 비율도 늘어난 조건에서는 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정규 노동자들을 사업장 안에서 조직하기 어렵다면 공장 바깥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들의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 한비네가 앞장서서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안산센터가 노동공제회나 노동대학 같은 방식으로 공장 밖에서 만나서 노동 문제를 얘기하고, 지역사회 전체의 노동인권 역량을 증진해 나가는 활동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걸 보면 정말 멋져요. 이렇게 다른 센터 활동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음성 지역에서도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깡.jpg활동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하는 사업을 참고도 할 텐데요. 지자체 센터에서 할수 있는 일과 민간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딱 구분되진 않지만, 재정 문제로 제약도 많잖아요.

 

박윤준.jpg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센터를 보면 확실히 재정 지원이 되고, 사람도 많고,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으니까 되게 부럽죠. 반면에 보조금을 사용하니까 회계 처리나 사업 운영에 제약이 있어서 유연하게 처리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거잖아요. 각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돈이 없는 대신에 행정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여러 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한비네 워크숍에 참여하고, 여러 센터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역마다 정말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센터 활동이 지역 특색을 반영하게 되니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갖고 활동하고 있구나 생각하죠.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지역을 초월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같이 일을 추진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게 민중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하고 풀뿌리 운동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깡.jpg다른 센터에서 하는 사업 중에 음성에서도 한번 해보면 참 좋겠다 싶은 사업이 있나요?

 

박윤준.jpg아파트, 청소 노동자 자조 모임을 하는 센터들이 있던데, 그런 노동자 자조 모임을 직종별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에서는 당장에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하면 되게 부담스럽거든요. 노동조합으로 가기 전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성에도 비슷한 걸 하고 있는데, 신세계푸드 음성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겪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요가수업하고 살아왔던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요양보호사, 경비 노동자들과도 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깡.jpg한비네가 좀 변화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나 제안하고 싶은 사업이 있을까요?

 

박윤준.jpg수련회 참여하면서 권역별 모임이나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충남이나 대전센터, 경기도 이천센터가 가까운데 평소에는 교류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소통하며 활동하면서 느낀 고민이나 과제를 나누면 좋을 것 같고요. 한비네가 일본과 교류한 모습을 보면서 세계 각국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장도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역을 초월하고 국경도 넘어설 때 한비네의 노동운동 공공성이 확장될 것 같아요. 특히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 비정규 노동운동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습니다.

 

 

한 뿌리에서 시작한 기후위기와 노동의 위기

 

깡.jpg기후위기 관련해서도 관심이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요. 한비네 젊은 활동가들 중심으로 소수자 운동, 기후위기 등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박윤준.jpg맞아요. 2019년부터 국내에서 기후위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인데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기후위기 피해를 보는 사람 대부분은 지역 소도시나 농어촌에 사는 사람들인데요. 사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전문가들 중심이 아니라 최전선에 있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아래로부터 위로 더 많이 해야 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지역의 목소리를 조직할까 하는 물음표가 항상 있었는데 한비네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비네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단체들의 네트워크이고, 지역을 기반으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농민이나 건설 노동자, 업종 위기를 겪고 있는 발전소 노동자, 내연기관차 제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사업을 전국적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깡.jpg기후위기 문제는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예요?

 

박윤준.jpg사실 어렸을 때부터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가 사는 도시 모습이나 교통 시스템, 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산업 전반의 모습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사람들이 아스팔트 도로를 연장으로 깨부수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요. 생태를 파괴하는 시스템은 인간을 파괴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는 직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환경 파괴가 아니라 노동자의 몸도 파괴하고 정신이나 마음도 힘들게 하면서 다 연결된 체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기후위기나 노동의 위기는 같은 뿌리에서 초래됐는데 어떻게 하면 좀 더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죠.

 

깡.jpg뭔가 노동자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되게 인상적으로 들리네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이기도 하고요.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보려고는 하는데 노동 문제와 연결하면 참 어려웠거든요.

 

박윤준.jpg저도 어렵죠.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인간소외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인간의 몸과 정신, 감정을 도구화할 뿐이지 어떻게 관계 맺는 게 좋을지 고민할 틈을 주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자연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는 게 좋을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뽑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죠. 다시 질문해야 할 때라고 봐요. 관계맺기 중심에 노동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을 재조직화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페미니즘, 생태주의 경제학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이 많다고 해요. 대표적으로 가사 노동을 예로 들 수 있죠. 한 경제학자가 얘기한 목록을 보면 가족들한테 안부 전하기, 마당 가꾸기, 거리 청소하기. 사실 이런 노동이 우리 삶을 지탱해주고 우리 삶을 인간답게 해주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고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되는 노동이 좋은 노동이고, 귀한 노동이라는 거죠. 그 노동이 자연을 파괴하는지, 사람을 어떻게 힘들게 하는지,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시장이 매겨주는 가격표대로 그 노동의 가치를 매겨왔단 말이죠. 그래서 이젠 그런 것을 뒤집어엎을 때라고 저는 생각해요.

 

깡.jpg새로운 이야기들이라 흥미롭네요~ 공감은 되는데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현실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과 노동계가 대응해야 하는 소소한 것부터 제안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윤준.jpg지금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뭐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지역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일 것 같고요. 노동 단체들이 할 수 있는 건 자기 분야를 넘어서서 어떻게 내 노동과 다른 노동을 연결지을 수 있을지 질문하고, 다른 나라 노동과는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어렵네요.

 

깡.jpg음성센터에서는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관심이 많으셔서 뭐라도 하실 것 같네요.^.^

 

박윤준.jpg기후위기에 따른 산업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음성 지역은 그런 이슈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센터에서 기후위기 얘기를 하면 지역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좀 동떨어진 게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시민들끼리 모임을 하고 있죠. 내년엔 센터 사업으로 만들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환경 변화로 인해 농업이 힘들어지는 측면도 있어서 당사자들과 할 수있는 얘기들도 많을 것 같거든요.

 

깡.jpg한비네 내에서도 같이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박윤준 님이 주도해서 관심 있는 한비네 활동가들과 모임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또는 센터 활동과 관련해서 계획이 있다면요?

 

박윤준.jpg계속해서 저의 관심은 우리 음성 지역 사회의 노동인권 역량을 어떻게 증진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있습니다. 올해는 소책자를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에요.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서로 연대할 때 우리 지역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내용으로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려고요. 그리고 피케팅하고 기자회견 하면서 싸우는 것만으로 해선 답이 없다고 느껴서 담당 공무원들과 대화하면서 서로 이해를 높여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있습니다. 좀 낯설긴 할 것 같은데 행정 담당자들도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걸 활동하면서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기후위기와 노동을 연결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공부하며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활동을 만들기엔 정리가 안 된 느낌이라 함께 고민해주면 좋겠습니다.

 

깡.jpg오늘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지속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박윤준.jpg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근데 뚱딴지같은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다음에 한비네에서 기후위기 활동가 모임 하게 되면 같이하면 좋겠습니다.

 

깡.jpg네~ 그때 제안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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