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Talk] 답을 찾아가는 과정, 다시 마주하다_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by 센터 posted Jun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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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이 : 류민.jpg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 인터뷰어 : 채은.jpg이채은 센터 상임활동가

 

 

채은.jpg 안녕하세요. 일단 되게 의례적이지만 자기소개와 지금 일하고 계신 센터 소개 부탁드릴게요.

 

류민.jpg 자기소개가 참 어렵네요. 어떻게 저를 소개해야 할까요. 저는 류민이고요. 지역에서 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나름 움직여 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고 2019년에 만들어졌어요. 지역의 노동자들이 일의 현장에서 또 삶의 관계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같이 나누고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인 혹은 사회 운동적인 방법들을 함께 찾고 실현해 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채은.jpg지금 일하고 계신 센터에서 어떻게 활동하게 됐는지 얘기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류민.jpg8, 9년 정도 한국을 떠나 파리에서 생활했어요.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마주했던 저의 여러 한계가 있었고 또 많이 지치기도 해서 쉼표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질문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같은 질문을 똑같이 하고 있었죠. 그런데 내 삶이 행복했을 때를 돌아보면 세상을 바꾸는 일의 일부일 때, 거리에 있을 때, 현장에 있을 때 그래도 살아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운동에 아주 일부라도 관계 맺을 수 있는 곳에서 자신을 추슬러보고자 했어요그런데 그것이 서울도 아니고, 파리도 아니고, 제가 또 청소년기를 보낸 대전도아니고, 잘 모르는 낯선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센터가 만들어진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전에도 지역 센터들의 흐름과 맥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제 친구들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일하기도 했고 이남신 소장님이나 활동가를 인터뷰한 경험도 있었고요. 유의미한 변화들을 지역에서 실천해 보는 데 여러 가지 역할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충남이 제 고향이기는 한데 여기에 연고가 전혀 있지 않거든요. 고향이기는 하지만 살아보지 않았던도시이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이니까 제가 실험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연 반 계획 반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채은.jpg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고민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류민.jpg부모님의 영향이었을 것 같기는 한데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나는 뭔가 혁명을 만드는 사람의 한 사람이고 싶은 로망이 있었어요. 머리로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집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훌륭한 사람들처럼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로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이론적으로 설계하거나 그 방법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제 언어로 갖고 있거나 하진 못했죠. 처음에는 지역 언론 단체 안에 시민운동 영역에서 언론에 관련한 일을 하게 되면서 어떤 방법들이 필요한지 뭐가 문제인지를 계속 조금씩 조금씩 배워나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데 노동과 노동자의 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조화시키고 있지 못했던 것 같아요.

 

채은.jpg지금 하고 계신 일도 있는데 그동안 해온 일 중에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을까요?

 

류민.jpg어렵네요. (웃음) 처음에 민언련에서 대안 언론 모니터를 하면서 내는 모니터 보고서나 언론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지방선거나 총선 과정에서 선거 관련 모니터를 의제화하면서 또 나름의 사회적 목소리를 냈던 경험이 있어요. 그걸 하기 전에는 안티 조선일보 운동 캠페인 자원봉사를 하면서 매일 한 달 정도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1인 시위하시는 분 옆에 보조하는 일을 했어요. 처음에는 택시 기사님들이 지나가면서 저 빨갱이 새끼들이러면서 욕했는데 나중에는 시민들이 관심 가져주시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효능감도 있었어요. 그다음에 활동했던 청소년 단체는 언론을 비판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있는 새로운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청소년 대안 언론으로부터 시작하면서 관계를 맺었어요. 그 안에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만나고 사람들과 작게라도 모델을 구현해보면서 세상을 바꾸려고 같은 세계관을 갖고 움직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관계라는 게 뭔지를 눈으로 직접 봤죠.

 

채은.jpg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효능감을 얻으신 것 같아요.

 

류민.jpg우리도 사회의 사회적 관계 일부인데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많은 사회적 실천들이 역사적으로 혹은 현재에 어떠한 유의미성을 가지는지 객관화하기가 참어려운 것 같아요. 이게 어떨 때는 작은 일도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일은 큰일도 작은 일로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사회적 의제와 시점들이 만나서 폭발하는 운동 안에서 고흥되고 고취되기도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 곁에 있지 않았지만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끼리 관계 맺으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다른 걸 느끼는지를 보는 게 훨씬 더 효능감을 느끼는것 같아요.

 

채은.jpg류민 님이 생각하는 운동은 무엇인가요?

 

류민.jpg저는 잘 모르지만, 운동은 사회적 관계를 바꾸기 위한 것이고 사회적 관계를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달라지는 거잖아요. 사람의 생각과 방식들이 관계가 먼저냐 개인의 실천이 먼저냐 이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구현하는것은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관계와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자본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것들을 꿈꾸기가 참 어려워 보이고 달라지기가 참 어려워요. 저도 그랬지만 어떤 운동과 실천과 만났을 때 사람들이 급격하게 달라지거든요.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활동가들이 가장 긍정해야 할 어떤 유일한 비과학적 믿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1.토론회.jpg

6.1 지방선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참석한 류민 팀장

 

채은.jpg한비네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한비네도 하나의 조직이고 사람들이 모인 공간인데 인상이 어땠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류민.jpg센터에 오기 전에도 한비네 존재를 알았어요. 지금은 센터에서 일하면서 한비네 일부로 활동하고 있지만 한비네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이해 수준을 좀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조직적으로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비네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지만 상당히 유의미한 조직이라고 생각을 해요. 지역의 고유한 현실들을 마주 고민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잖아요. 여러 지역에서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노동 문제를 고민하고 그것들을 풀어나가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 지역의 현실에서 출발하되 전국적인연대로 한국 사회 전체의 변화를 만들고자 고민하는 것이어서 상당히 유의미하고 필요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채은.jpg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배우고 싶은 점이 있었던 활동가가 있는지 궁금해요.

 

류민.jpg굉장히 많죠. 사실은 제가 누구랑 일할지를 모르고 조직을 선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대체로 누군지 아는 사람들과 일을 했는데 걱정이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저희 센터장님이나 식구들, 또 우리 센터뿐만 아니라 충남에 있는 다른 활동가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조직에서 동지적 관계로 함께 지내고 싶은 매력 있는 동료 활동가들이 너무나 많아서 여기 있으면서 함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비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 친구나 지인중에 한비네 활동가들이 상당히 많아요. 새롭게 만나는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마주한 고유한 현실의 문제들을 계속 놓지 않으려고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한국 사회의 큰 의제로 띄울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서로에게 나누는 신뢰를 보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그것의일부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채은.jpg지금까지의 활동이 큰 에너지를 가지고 일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활동을 쉬고 싶어서 한동안 한국을 떠나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얘기해주시겠어요?

 

류민.jpg대전에서 계속 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대학에 갔고,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는 그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했어요. 2008년이었는데 상당히 사회적으로도 큰 투쟁이 있었죠. 이랜드 투쟁이나 서비스업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서 고민이 풍성해지고 성장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 배우고 효능감을 얻고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으로든 활동가로든 사회적으로든 중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고 중요한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상당 부분 많이 지쳤는데 당시에 활동했던 조직의 정치적 세계관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계속 누적됐어요. 그 세계관을 얼마만큼 구현할수 있을까를 중심으로 제 역량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봤죠. 그리고 멈춰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무래도 활동을 하다 보면 뭔가를 많이 제안하고 설득하고 조직하잖아요. 제가 넉살 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위 조직을 잘하는 활동가로 평가를 받았어요. 사람을 많이 설득하고 집회나 활동에 많은 사람을 조직하는 일들이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는 내가 제안하는 내용이 저 사람의 삶에도움이 되는 경험일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친구한테 뭔가 제안하고 있는 제가 가짜로 웃고 있다는 거를 느꼈어요. 내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고 혼란한 가운데에서 이것이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책임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를 휴학하고 활동을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집안 어른의 도움으로 외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채은.jpg파리에 있으면서 가지고 갔던 고민이 조금은 풀렸나요?

 

류민.jpg미루어 뒀던 잔은 결국 마셔야 한다고, 미루어 뒀던 질문들을 다시 이제 마주하는 기분이었어요. 말의 무게가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작은 말과 작은 결정들이 어쨌든 누군가의 삶에는 유의미한 개입이 되는 건데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어떨 때는 우리가 아무 권한이 없다고 느껴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또 의외로 한마디 뱉은 것들이 유의미한 결정이 되기도 하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정말 책임 있게 구현할 만한 힘을 갖고 있나그렇지 않으면서 멈추지 않는 게 맞나, 한편으로는 멈춰야 하나 이런 고민에 지금도 휩싸여 있는 것 같아요.

 

채은.jpg파리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해요.

 

류민.jpg우연히 기회가 생겨서 나가게 되었는데 어디로 갈지가 고민이었어요. 일단은 영어를 못하기도 하지만 아예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너무 관심이 없는 데에 가기보다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관심 있는 데로 그냥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계 지도를 놓고 한 번에 핀을 던져봤어요. 마침 신기하게 프랑스가 나왔어요. 그전에도 프랑스에 가면 어떨까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프랑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완전히 낯설기도 해서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길게 있을 생각이 없긴 했지만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느니 뭐라도 배워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학교를 계속 다닐까 말까 고민을 했긴 한데, 사회과학이나 사회학의 개념들을 저스스로 잘 구조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가서 공부할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닌데 학교에 가게 됐고 그러면서 학사를 거기서 다시 졸업했어요. 마무리를 짓지 못했지만, 석사를 시작하게 됐고요.

 

채은.jpg연구주제는 어떤 거였어요?

 

류민.jpg68세대 자녀들과 86세대 자녀들의 정치적 사회화 경험들을 분석해 보는 거였어요. 저는 정치적 효능감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아요. 사회적으로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객관화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사회적 실천들을 사회적 혹은 역사적 경험으로 객관화하는 것이 정치적 효능감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봐요. 그런데 청년 세대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회적 경험들이 있었는지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촛불집회, 탄핵 같은 여러가지 정치적 이슈 이벤트들은 있었는데 사회적 객관화가 86세대들의 정치적 경험과는 결이 매우 다르죠. 청년들은 자신의 정치적 실천들이 어떤 성취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스스로 객관화되는 경험들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다를 것 같기도 해요. 탄핵 국면 이후의 상황들이나 관련 연구들을 보면 제 연구는 사회적으로 객관화된 부모세대가 이룬 정치적 실천이나 경험이 준 정치적 효능감이 그 이벤트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녀 세대에게도 전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관심이었어요.

 

채은.jpg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해요.

 

류민.jpg센터에 와서 운동을 깊이 고민하고 깊게 관계 맺고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결국, 제가 답해야 할 많은 문제, 마셔야 할 잔들을 다시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답을 찾아야 할 텐데,센터는 참 감사하게도 많은 한계가 있는 동시에 많은 유의미한 실천을 할 수 있는 공간이고 그게 가능하게 해주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고 있고 그걸 어떻게 잘 정리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의 접점을 만드는 과정들이 여러 의제 사이에서 제가 혹은 우리가 미뤄뒀던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채은.jpg진짜 고민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앞으로도 많이 하시지 않을까, 또 그 과정을 제가 같이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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