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선

by 센터 posted Dec 22,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새해.png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1887-1956), 〈정월 초하루 나들이〉, 1921년, 채색목판화, 38×26㎝, 개인 소장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가죽 위에 비단을 덧댄 한국 여인들의 신발은 매우 아름다워 장식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조선에 대한 그녀의 친절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림은 정월 초하루 설날 풍경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광화문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해태상 주변 좌판에서 가족들이 고무풍선을 사며 놀고 있다. 예스러운 설빔을 잘 차려입은 젊은 엄마와 함께 나들이 나온 두 아이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조선의 풍경이지만 왠지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그림 〈정월 초하루 나들이〉의 제작 연도는 100년 전인 1921년이다.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2년 후다. 일제강점기 새해를 맞이하는 광화문이 활기찼을지 몰라도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차가운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었다. 빼앗긴 들에 봄을 기다리던 때, 나라에 ‘빛’이라고는 찾아보기 암울했던 시대를 상기하면 마냥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림 속 분위기는 풍요롭고 여유롭기만 하니 혹시 조선총독부 선전물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작품의 화풍도 일본 우키요에 목판화 양식이 깔려있어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그림 속 사람들의 삶이 소소한 기쁨에 젖어 있으며, 그들이 입은 한복 묘사는 기품이 있고 멋스럽다.

아무래도 영국인 키스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아픔 따위는 공감하지 못한 듯하다. 그녀에게는 이런 풍경이 지극히 단순한 이국적인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정치성이 배제되어 순수하다.”라고 말한다. 글쎄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시대의 아픔 속에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애잔한 삶이 지속되어 왔음을 느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 희망의 '안녕' file 센터 2021.12.23 87
54 해피엔딩 file 센터 2018.02.28 1424
53 편견 file 센터 2016.03.11 1973
52 지연된 정의 file 센터 2021.04.26 998
51 주격이 아닌 소유격인 나의 삶! file 센터 2021.10.27 91
50 절망이 가져온 희망 file 센터 2019.10.30 2179
49 전염병 의사 file 센터 2020.04.27 933
48 장벽 file 센터 2023.02.27 31
47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 file 센터 2018.07.02 2768
46 이별에 대한 슬픔_아메데오 모딜리아니<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file 센터 2019.08.29 3888
» 이방인의 시선 file 센터 2022.12.22 33
44 이미지의 진실성 file 센터 2022.02.24 92
43 의심하라 file 센터 2017.04.26 1531
42 은혜 씨의 얼굴도 참 예쁘다 file 센터 2022.06.27 56
41 은밀하게 위대하게 Thank you Banksy file 센터 2023.04.27 38
40 예술인가 혐오인가 file 센터 2017.02.27 2849
39 예술은 스스로 시대를 말한다 file 센터 2016.12.27 2551
38 영원한 선과 악이 있을까? file 센터 2018.08.28 2048
37 연인의 변심 file 센터 2016.10.31 2631
36 애정만세 file 센터 2021.08.25 75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