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권 국가인권위원회 유감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15.08.06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휴가철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친 사람들이 바다로 산으로 해외로 무리 지어 떠난다. 나도 2개월 안식월 휴가를 얻어 어디로 떠날까 고심 중이다.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막상 휴가가는 것도 일이다. 육체를 존재조건으로 삼아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기 위해선 쉼과 재충전은 꼭 필요하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일하고 활동하는 건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잘사는 게 별건가.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고 쉴 때 쉬는 것이지. 물론 휴가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더 많은 현실을 떠올리면 우울해지지만. 휴가도 권리다. 모든 노동자가 프랑스처럼 바캉스를 즐기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소망한다.
날도 더운데 짜증나는 소식이 잇따른다. 재벌가 골육상쟁 집안싸움이 그칠 줄 모른다. 요즘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롯데재벌가 막장 드라마가 온통 화제다. 이참에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비정상적인 재벌 지배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근데 이 땡볕 무더위 속 극한의 고공농성 투쟁을 힘겹게 이어 가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 얘기는 단신으로도 보도하지 않으면서, 잘 먹고 잘사는 부잣집 재산다툼을 온 나라 언론방송이 생중계하듯이 떠벌리는 현실이 초현실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여름휴가는커녕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전국 도처에 있다. 120일째 경남 거제 대우조선에서 크레인농성 중인 대우조선 사내하청 해고자 강병재, 113일째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서 농성 중인 생탁(부산의 대표적인 막걸리 브랜드) 송복남과 한남교통 심정보, 57일째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농성 중인 기아차 사내하청 최정명과 한규협, 8일째 여의도 LG화학 광고탑에서 농성 중인 화물연대 이준서와 신기맹씨 소식을 먼저 취재하고 보도하는 게 사회의 공기인 언론방송의 본분 아닌가. 아무리 자본주의라도 사람보다 돈이 더 앞설순 없다. 이 땅에서 다수이면서도 노동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을 외면하고야 무슨 정의사회가 가능하겠는가. 모름지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언론방송은 막대한 비용만 축내는 소음에 불과하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두 노동자가 위험하고 위태롭다. 광고업체가 제기한 소송으로 인한 법원 가처분 판결 때문에 직계가족을 통하지 않은 식사와 물 반입이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생업에 종사해야 할 가족이 평일에 오기 어려운 사정이므로 비인간적인 단식을 강요한 셈이다. 결국 최정명씨와 한규협씨는 일주일 강제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가족 등이 올려 보낸 간헐적인 식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공농성의 위법 여부를 떠나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처우는 제공돼야 마땅하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당사자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태풍이 수시로 올라오는 장마철이다. 피뢰침에 몸을 묶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광고탑 위에서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휘청이는 몸으로 불볕더위를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광고탑 위 자체가 어지럼증을 유발할 정도로 일상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곳인데 기력마저 쇠해지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농성을 지원하고 있는 기아차 화성사내하청분회 노동자들이 낸 긴급구제 요청을 즉각 받아들여 정상적으로 음식과 물을 반입하고 전기도 제공해야 한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10여년 동안 갖은 범법을 저지른 정몽구 회장을 구속·처벌하는 것은 합당한 준법적 조치 수준의 요구다. 기아차는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채용 꼼수로 법원 판결을 아예 묵살하고 있다. 재벌의 위세 앞에 법원의 권위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수차례 비정규직 노동인권 신장을 위한 정책권고를 한 국가인권위원회인 만큼 긴급구제 신청 수용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에 대한 적법한 처벌과 법원 판결에 따른 사내하청 정규직화 시행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마땅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도처에서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노동인권의 파수꾼이 돼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의 직무유기가 심각하다. 임기가 곧 끝나는 현병철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반인권 위원장이란 오명을 감수할 것인가. 고공농성 비정규 노동자도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각성과 정상적인 조치를 강력하게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