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난해 12월 중순이었다.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의심 증상이 나타난 건 아니었다. 무료로 검사가 가능하고, 무증상 감염 위험도 있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보았다. 주말 오후였는데 1시간가량 기다린 것 같다. 추운 날씨 탓에 제법 고생했다. 물론 매일같이 검사소에서 일하는 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춥고 지겨웠으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7일, 서울시가 코로나19 진단검사와 관련된 행정명령을 하나 고시했다. 이주노동자와 그를 고용한 업주는 진단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검사를 받지 않을 시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무 검사가 차별적 조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사회와 각국 대사관의 비판도 쏟아졌다. 결국 서울시는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코로나19 검사를 의무가 아닌 권고로 변경했다. 서울시 외에도 경기, 대구, 경북, 광주, 전남 등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사한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자체와 함께 논의한 사안이었다.

동일한 검사를 받았지만, 나와 이주노동자가 느낀 감정은 천양지차였을 것이다. 나는 자발적으로 검사소에 갔다. 이주노동자는 행정명령에 의해 움직여야 했다. 나도 그들도 대한민국 어딘가에 거주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식당과 카페를 가며, 노동을 통해 밥벌이하는 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은 국적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방역 수칙 준수 여부와 어떤 환경에 노출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노동자에 비해 특별히 방역 수칙을 더 어긴다는 증거는 없다.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생활·노동 환경이 문제라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집단 감염이 발생했거나 발생 위험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검사하면 된다. 이주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의무 검사는 지극히 차별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발상일 뿐이다.

감염병에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이주노동자가 너무나도 많다.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해 겨울,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숙소에서 자다가 유명을 달리한 이주노동자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농·축·어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는 최소한의 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양주와 동두천의 이주노동자 집단 감염 사태는 또 어떤가. 집단 감염의 원인은 밀집·밀폐·밀접이라는 3밀 환경이었다. 이 밖에도 낮은 4대 보험 가입률, 열악한 노동조건, 외국어 지원이 제대로 안 되는 재난안전문자 등 갖은 이유로 인해 이주노동자는 감염병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지 않은 채 검사만 확대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안 된다.

우리 사회와 이주노동자 사이의 차별적인 경계를 지워나가야 한다. 이번 행정명령은 이주노동자를 관리의 대상쯤으로 생각한 결과다. 각 개인의 특성과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환경을 무시했다. 그냥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렸다. 무심한 행정이었다. 창고와 같은 주거 환경에 사람이 물건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힘들고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값싼 자원쯤으로 여겨진다. 한 예로 이주노동자도 택배 상하차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들 수 있겠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기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택배 상하차 업무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게 우선되어야 하지 않는가? 너의 위험이 곧 나의 위험인 시대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 안전하지 않고는 나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감염병은 평등하다. 국적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