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한 참석자가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요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9일 오후 서울시의회는 제270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를 열고 ‘서울시 120서비스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안을 두고 찬반 표결이 진행됐으며 재석 의원 60명 중 찬성 48명, 반대 7명, 기권 5명으로 집계됐다. 서울시가 조례안에 따라 내년 상반기 중 재단을 설립하면, 앞으로 다산콜센터 직원 408명은 120서비스재단 소속 정규직 직원이 된다.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고충, 기억하세요?
다산콜센터는 2007년부터 3개 전문 운영업체에서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돼다가 지난해부터 2개의 전문 운영업체가 관리하고 있다. 황다형 다산콜센터 노조 지회장(35)은 2010년 4월 센터에 들어갔다. 그때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근무시간 8시간 중에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었다. 황 지회장은 “산업화 시기엔 ‘공순이’라는 말이 있었다면, 우리는 ‘콜순이’라 불릴 만했다”고 기억했다. 상담사들은 여성노동자이면서 감정노동자로 언어적 폭력·성폭력에 노출돼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고용불안·저임금에 시달렸다. 다산콜센터 노조가 설립된 것은 2012년 9월이었다. 황 지회장은 “노조가 생기고 나서도 민간위탁 업체가 휴게시간 보장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1인시위 등을 통해 계속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다산콜센터 상담원들 ‘노조를 만든 이유’>(2012년 10월4일)
→관련기사 <다짜고짜 “x새끼”… 서울 120센터 악성민원인들 최대 400만원 벌금>(2013년 3월1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이후 2012년 11월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 인권위원회는 2014년 2월5일 서울시에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을 부당한 노동인권 침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서울시에 대한 시 인권위의 첫 인권 관련 권고였다. 서울시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당시 다산콜센터 상담사은 월 평균 무리한 요구, 인격무시, 폭언 욕설, 성희롱을 각각 8.8회, 8.8회, 6.5회, 4.1회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도 다산콜센터 상담사의 노동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지를 보냈다. 2014년 서울시 설문조사 결과, 시민의 70.3%가 상담사를 서울시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관련기사 <다산콜센터 성희롱악성민원인 첫 ‘원스트라이크아웃’ … 즉각 고소 대응>(2014년 3월11일)
서울시 인권위 권고 이후 서울시가 나서면서 2015년부터는 안정적으로 근무시간 중 40분씩 휴게시간을 보장받고 있다. 황 지회장은 “저는 노조나 학생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집회가 있을 때 쳐다만 보던 사람이었다”며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여기서 크게 느꼈다”고 했다. 2014년 연말 박원순 시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고, 상담사들은 직접 고용을 촉구했다. 서울시는 인건비 증액 등의 문제로 공무직 전환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시는 올해 초 연구용역을 통해 재단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라는 방법을 택했다.
→관련기사 <서울시 “다산콜센터 상담원 직접고용”>(2014년 12월28일)
■다산콜센터 노조 설립 4년 만에 정규직으로
하지만 120서비스재단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되기까지 재단 설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지난달 1일 열린 조례 제정 관련 공청회에서는 “다산콜센터 서비스는 민간에서 충분히 제공 가능한 서비스 분야이고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어 콜센터 이용이 줄어드는 시대에 막대한 예산 낭비”라는 의견이 나왔다.
→관련기사 <다산콜센터 노조 “120서비스재단 설립 조례안 통과 촉구”>(2016년 9월1일)
황 지회장은 “다산콜센터가 처음 생겼을 때의 시민 질문은 ‘시청역 근처 ㄱ음식점은 어떻게 가나요?’였다면, 현재는 ‘음식점 폐업 절차가 어떻게 됩니까?’로 바뀌었다”고 했다. 상담 내용이 전문성을 요구해 민원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다. 현재 상담사들은 서울시 행정 정보 접근에 제한적이고, 시와 직접적인 업무 협력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황 지회장은 또 “서울시는 2년 마다 민간위탁 업체와 계약을 새로 하고 있는데, 상담사들은 2년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고 했다.
서울시도 “현행 민간위탁 체계에서는 장기적 비전 부재, 상담사에 대한 전문 교육 부실, 공적 책임감 부족 등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재단이 설립되면 단순 상담에서 전문상담 또는 특화상담 수요의 증가 추세에 맞춰 상담 관련 전문 데이터를 축적·분석해 시민복리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120서비스재단 설립 타당성 검토 결과’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접수된 시·구정 상담 민원 46만8443건 중 1차 전화에서 해결되지 않은 비율이 17.3%에 이른다. 특히 교통·보건 등 전문 분야에서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 설립까지 남은 과제는
조례안이 통과돼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 중 재단 설립 절차를 밟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위탁 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매년 19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재단을 설립하면 그 예산을 출연금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예산이 늘어나는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현 다산콜센터 건물은 서울시 소유이기 때문에 공간 마련을 위한 추가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심의에서는 “서울시가 다산콜센터의 규모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지, 콜센터 직원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안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지난 1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120서비스재단 설립·운영 조례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이 재임시절 만든 서울시의 민간위탁 사업들이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외주화가 ‘신앙’처럼 여겨져왔기 때문에 이걸 공공의 영역으로 다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시가 직접 고용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재단 설립 통해서 일단은 상시 업무의 고용을 보장하는 정규직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명숙 다산콜센터 노조 사무국장(40)은 “당사자들의 요구에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지자체에서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첫 사례”라면서 “모범적으로 시민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재단으로 전환하는 것인 만큼, 노동현장으로서나 시민서비스 질적인 측면에서나 제대로 된 재단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노조가 협의하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