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 비껴간 ‘비정규직 종합대책’
노동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없어 아쉬워”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난 7월부터 2개월간 논의해 온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9일 공개됐다. 당정이 막판까지 고용형태 공시제 민간기업 적용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다 추석 연휴에 앞서 이날 발표한 대책은 7대 분야 30개 항목에 이르는 종합대책이다.
그러나 실제 비정규직에게 얼마나 혜택이 돌아갈지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거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라기보다는 비정규직에 대한 복지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번 대책은 사용사유 제한이나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같은 원칙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며 “비정규직 문제에 근본처방이 아닌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사회보험 가입률 높아질까
종합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내년부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월급이 124만원(최저임금 120% 이하)에 못 미치는 경우 고용보험료와 국민연금을 정부가 3분의 1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10인 미만 사업장, 최저임금 130% 이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정부가 예산 문제로 난색을 보여 후퇴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조치로 현재 미가입자 중 50%가 가입한다고 전제했을 때 고용보험은 70만명, 국민연금은 60만명 가량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인당 연간 25만원 수준의 정부 지원이 이뤄질 경우 총 2천3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20~30%에 이르는 영세사업장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얼마나 높아질지 의문이 제기된다. 노동부가 지난해 실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보험 가입률은 26.2%, 국민연금 가입률은 17.9%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임금수준이 낮은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회보험료를 전액 지원해야 한다”며 “특수고용직 산재보험처럼 자기 부담금이 발생하면 임금이 현재보다 깎이는 결과가 나타나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 고용의무 안 지켜도 벌금 3천만원이면 끝
정부와 한나라당은 또 이번 대책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개정해 불법파견으로 확인되면 사용기간에 관계없이 고용의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매년 사업장 3천곳을 대상으로 불법파견 여부를 감독하고 있는데, 실제 불법파견 판정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남신 소장은 “고용의무는 사용자가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과태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적 함정이 있다”며 “2년이라는 사용기간은 부차적인 문제여서 이번 대책은 사실상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노동계 “핵심 비껴간 대책, 실망스러워” vs 경영계 “과도한 규제로 일자리 감소”
노동계는 당정이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정작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같은 원칙적인 내용이 빠져 있어 실망스럽다는 표정이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한나라당이 노동문제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하면서 노동계를 사실상 배제했다”며 “정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가능한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10월 이후로 미룬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근본대책은 없고 '보호'에만 급급할 경우 비정규직이 더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경영계는 “과도한 규제로 현재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반발했다. 경총은 성명을 통해 "정규직 고용에 대한 과보호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과도한 임금인상이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양극화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은 이어 "비정규직 보호의 전제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며 "정규직 과보호 문제 해결 없이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일자리 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