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5월1일 세계노동절을 맞았지만 여전히 상당수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의 고통은 심화됐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올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으로 새로운 노동체제로의 전환’을 향후 10년 주요 과제로 정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고발운동’ ‘4대 보험 미가입 제보센터 운영’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 조직화를 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131회 세계노동절을 맞아 두 단체와 코로나19 장기화 속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처한 노동자의 상황과 현재의 노동운동을 진단하고 과제를 함께 들여다봤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와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이 참여했다. 연윤정 매일노동뉴스 선임기자가 사회를 봤다.

“코로나19로 노동자 소외 적나라하게 드러나”
“미조직 비정규직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의 핵심”

사회 : 131회 노동절을 맞는 지금 한국의 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고용위기와 노동기본권 약화를 비롯해 현 상황을 진단해 달라.

조돈문 : 매년 노동절을 맞을 때마다 조금 민망하다. 나아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위상과 사회적 영향력을 보면 굉장히 막강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시대 때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100% 수준이었고 모든 시민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원했다. 그때하고 비교하면 노동계 영향력이나 위상은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은 노조를 만들고 노조활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는데 역사가 후진을 해도 엄청 후진한 거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노동정책의 실패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잘 드러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보면 비정규직의 경우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해 한 해 동안 실직을 경험한 비율이 정규직의 8배다. 실업했을 때 고용보험으로 보호되는 이는 정규직의 절반이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이 가장 소득보호와 소득안정성 면에서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계급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그 위상이 추락한 점도 이러한 노동시장 상황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한상균 :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부분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기득권들이 제어해 왔다.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왔는데 이것을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가 드러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절을 맞는 조직노동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노동자들이 노동정치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속에서 얼마나 소외돼 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질문도 가능해졌다. 경쟁과 권리를 동일선상에 놓지 못하는 한국 사회 체제가 과연 온당한지, 전문가집단을 포함한 내용적 진단이 필요하다. 또한 계급적 단결의 문제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 이러한 숙제를 던져 준 노동절이다.

사회 : 다수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각지대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한상균 :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맞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사각지대는 보고 싶어도 잘 안 보이는 문제를 의미한다. 역으로 말하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이 사회가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서 5명 미만 노동자, 노동시간에 따라 15시간 미만 노동자, 업종별로 가사노동이나 농업노동자, 교사·공무원, 방위산업체 노동자들은 노동 3권 중 일부만 보장되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 및 사용자 정의에 따라 노동자성 자체를 박탈당하는 노동자들이 차고 넘친다.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이들의 목소리로 과연 그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 이 질문에 사회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함께 찾아가야 한다.

조돈문 : 노동기본권이라는 건 모든 노동자들이 누려야 하는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헌법 32조·33조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헌법과 노동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어둠에 방치된 사람들이 있다. 특히 미조직된 비정규직이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같은 경우 비정규직은 최저임금법 위반 비율이 3분의 1 이상이다. 법·제도의 존재 의미를 잃게 되는 수준이다. 고용보험도 정규직의 경우 90% 안팎의 가입률을 보이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40%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출범한 정권이었고 스스로 촛불정부라 자임했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없어질 거라고 기대했지만 촛불정부가 출범한 그때와 지금, 변한 것은 경미한 수준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2천300만 중 1천200만명 사각지대”
“5명 미만, 손쉽게 해고하고 임금 덜 주는 방법으로 악용”

사회 : 통계로 확일할 수 있는 사각지대 노동자 규모는 얼마나 되나.

한상균 :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실질적 인원과 근기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대략 1천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사회가 근기법이라는 최소한의 권리를 빼앗아야 체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보는 기득권 세력이 암묵적으로 담합한 결과다. 1천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결국 2등, 3등 국민으로 계급을 나누고 신분을 나누는 일들이 10대 경제대국 안에 들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조돈문 : 경제활동부가조사 결과를 가지고 산출하면 1천만명 정도 되는데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부분을 고려하면 1천2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전체 임금노동자 2천300만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1천200만 정도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경제활동부가조사 자료로만 봐도 비정규직이 70%다. 정규직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30%인데 이 30%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40% 정도 된다. 사실상 비정규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대체로 협력업체 정규직이다. 원·하청 고리에서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 건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뜻한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거의 다 비정규직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원·하청 고리에 들어가지 않은 정규직이 있다고 해도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운명은 시장에서 파리목숨이나 다름없다. 한계기업이라는 점에서 고용의 불확실성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의미가 없다. 비정규직 규모가 거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는데 노조 조직률이 2%밖에 안 돼서 그렇다. 1천200만명 정도가 거의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거다.

사회 : 사각지대가 여전히 이렇게 방대한 원인은 무엇인가.

한상균 : 5명 미만 사업장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낮은 임금으로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상황을 유지하면서 노동력을 쓰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악의적 목표가 있다.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가산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고 이러한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5명 미만으로 하면 아주 수월하다는 것을 전 산업이 알게 됐다.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모든 업종과 산업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고 점점 확산되고 있는데 이 지경까지 되도록 우리 사회는 왜 이 문제를 방치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조돈문 : 사각지대가 없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거고, 그 세력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개발성장과 고속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자원을 동원해서 재벌 대기업그룹에 몰아줬는데 그 성과는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변화를 못하게 하는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거의 조직이 안 돼 있다. 스스로 주체를 형성해 자기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채널이 없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데가 정부다. 정부도 노동시장 사각지대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대선공약을 보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조법 2조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거다. 변화를 저항하는 세력의 연대가 얼마나 공고한지 너무 우습게 봤고 그걸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개혁동맹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 거다. 중소·영세기업 자본하고 노동자들을 묶어서 개혁동맹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갈라치기를 했다. 진짜 노동시장 개혁, 노동기본권 복원을 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개혁동맹을 만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조직종속성 개념 포함해 근로자 정의 다시 해야”
“근기법 준수, 최소한의 기업윤리이자 사회의 인권”

사회 :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산업 성장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했다.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노동법 개정에서도 이 문제는 배제됐다. 근기법은 어떤 방향으로 개정해야 하나.

조돈문 : 근기법과 노조법 2조에서 개념 정의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1994년 대법원 판례부터 사용종속성에 근거해 이걸 굉장히 협의로 해석하면서 시작된 문제다. 그렇다고 대법원에 새로운 판례를 내놓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고 개념정의 자체를 바꿔야 되는 상황이다. 사용종속성뿐만 아니라 경제종속성·조직종속성 개념을 포함해 근로자 개념 정의를 다시 하게 되면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직·프리랜서들이 모두 노동자로 대우받게 된다. 근로자로 노동 3권을 인정하는 대상과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ILO 핵심협약에 포함돼 있고 이를 준수한다는 게 한국과 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으로 들어가 있다. 정부는 이번에 핵심협약 비준을 하면서 노조법 2조 개정을 하지 않았다. 개정을 안 하면 ILO의 비판을 계속 받아야 하고 한EU FTA 이행과 관련한 문제로 계속 시달리게 될 거다. 노조법 2조 개정이 시급하고, 근기법 개정도 (궁극적으로) 추진하는 게 맞다.

한상균 :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로 전제하고 이 사람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사용자에 있다는 입증 책임의 문제, 근로계약 체결을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라도 근로조건의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정의하는 문제, 모든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근기법을 전면적용하는 문제 모두 현재 180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근기법 전면적용과 노조법 2조 개정을 ILO 핵심협약과 어떻게 연동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ILO 협약의 핵심이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점이다. 다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기본이고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기본적인 상식인데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되지 않고 있는 데에는 정치·사회·경제적 이유로 집단행동을,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문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까지 해결해야만 그나마 노동이 민주주의 가치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첫 단계를 떼는 것이다.

사회 : 5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근기법 적용제외 문제가 심각하다.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 달라.

한상균 : 5명 미만 사업장이 영세한 규모만 있는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남양주 플라스틱 사업장 같은 경우 1천명이 되는 규모인데도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기를 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재벌·프랜차이즈기업들도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을 많이 만들었다. ‘가짜 5명 미만’의 문제는 ‘진짜 5명 미만’의 문제고 해법은 근기법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다. 근기법 준수는 최소한 기업윤리가 되고 사회의 인권이어야 한다. 폐지운동을 넘어 입법운동으로 가야 하고 당사자의 직접행동을 통해 관철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대상으로만 객체화해선 안 돼”
“전 국민 고용보험 재원과 유인책 포함 총체적 설계 필요”

사회 :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법·제도 개선과 함께 다른 한 축에선 조직화도 중요한 문제다.

조돈문 : 법 개정은 반드시 추진돼야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노동이 주체적으로 투쟁을 하되 미조직 노동자들을 노조 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느냐도 중요한 과제다. 산별노조가 명실상부하게 산별협약을 체결하면 기업별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지금은 노조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자기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이 간다. 산업수준에서 산업·업종별로 체결된 단체협약은 어느 사업장이건 산업·업종에 소속돼 있으면 중소·영세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이 8% 정도로 한국보다 낮다. 그런데 단협 적용률은 100%다. 우리는 산업별·업종별로 초기업단위 교섭체계를 정착시키고 단협 적용률을 확대해야 된다. 그런데 노조 실천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특히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노동자가 싸워 봐야 얻을 이윤이 뻔하고 기업도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 벼랑 끝에 몰린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경제정책·산업정책으로 풀어야 하는 거다. 원·하청 간 성장과 이윤의 배분을 공정하게 하고,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임대료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상가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일정 정도 보장해 주는 제도적 장치도 보완해야 한다. 경제·산업정책이 제대로 되고 공정거래 질서가 확립되면 중소·영세기업 이윤율이 정상화되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훨씬 수월해지면서 스스로도 노조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화 대상으로만 객체화해선 안 된다.

한상균 : 산별교섭을 통해 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전 단계로 두 가지 경로가 필요하다. 조직노동자들은 노조 바깥 노동자들의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그것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또한 당사자들의 직접행동이 필요하다. 두 가지 경로는 서로 윈-윈 관계여야 한다. 이때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권력과 독점재벌이 담합하고 있는 전략적 구조를 깰 수 있는 하나의 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회 :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속 취약노동자 보호를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평가하나.

조돈문 : 직장갑질119와 함께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왜 가입 대상이면서도 가입을 하지 않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비정규직은 가입률이 40% 수준이다. 초단시간 노동자, 소규모 건설사업 노동자의 경우 아예 배제가 되는데 20% 정도가 된다. 나머지 80% 가운데 절반만 가입하고 절반은 가입이 안 돼 있는 거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채용할 때부터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등 사용자의 위법행위로 가입이 안 된 사례들이었다. 스스로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고용보험료를 부담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미가입 노동자 절반 이상이 본인이 의무가입 대상인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이걸 알려 주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 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사회보험료 지원사업, 두루누리사업이 있다. 10명 미만 피고용자가 있는 사업장에 한해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제도인데, 지원 대상을 고용형태나 사업장 규모를 따지지 말고 예산규모도 확대해야 한다.

한상균 : 전 국민 고용보험을 어떻게 실현할 거냐를 논하기 전에 전 국민 고용보험이 나오게 된 배경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을 통해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문제는 국가 책임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와 고용보험 문제를 연동해서 봐야 한다. 고용보험이 사회에서 순기능을 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직업교육에 대한 부분이 잘 돼 있다. 사회안전망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재원 문제나 악용하는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문제, 현재 두루누리 이상의 유인책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등 총체적 설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경제정책 하위범주로 가져가”
“직접정치 공감대 만드는 일 내년 대선의 주요 과제”

사회 : 문재인 정부 4년 노동정책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와 남은 임기 1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짚어 달라.

조돈문 : 문재인 정부는 노동문제가 무엇이 심각한지 알고 있었고 정답도 알았다. 대선공약을 보면 미흡한 부분은 있었지만 A0나 A-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행을 하지 않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간접고용 비정규직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잘했지만 자회사 방식을 정규직 전환의 한 유형으로 규정한 게 문제다. 자회사 방식이라는 건 민간위탁해서 민간이 고용하고 있던 것을 공공이 고용주가 되게 하는 건데 고용안정성 측면에서는 강화되지만 여전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인데 이걸 정규직으로 규정해 버린 거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사망한 김군은 서울지하철에서 일했지만 은성PSD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은성PSD가 아니라 서울지하철 자회사에 고용됐다면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간접고용이기 때문에 직접 통제센터에 연락할 수 없다. 자회사 소속이 돼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부문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도 산입범위 확대나 사상 최저치 인상 등으로 유턴했다. 노동시간단축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상한제를 확정하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정책을,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하위범주로 가져갔고 자본과 기획재정부가 반대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한상균 :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 사회는 차별과 배제,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나는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는 선을 넘을 실력과 철학이 없다. 결국 우리는 이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다음 대선에는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하는 기본적 권리가 무엇이어야 하고 사회안전망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이 문제를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이 사회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은 준엄한 주권자의 명령’이라고 하는 직접정치의 계기를 만들어야만 한다.

사회 : 노동운동 역시 과제가 만만치 않다. 기존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에 한계가 많다.

조돈문 : 사각지대라는 게 정부가 잘못하고 자본이 기획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운동은 잘했냐, 책임이 없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기업별노조주의의 한계라고 본다. 기업별노조주의의 성과는 낙수효과가 없다. 가입이 돼야 혜택을 받는다. 이걸 극복하려면 산별교섭을 하고 단협적용을 확대해야 한다. 노조가 전체 노동계급 이익에 복무하지 않고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들만 혜택을 받도록 한 거다.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에 대해 정규직노조가 소극적 지지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반대했다. 불법파견 기간 동안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체불임금이 되는 건데 이를 없었던 걸로 하는 게 특별채용 방식이다. 금속노조에서 1사1조직을 하라고 했지만 현대차 노조는 3차례나 투표를 했는데 부결됐다. 사업장 수준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적대적으로 가게 되는 구조적 조건을 없애는 게 노조가 투쟁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았다.

한상균 :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기대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정리하고 싶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이전에 김씨·이씨·박씨로 호명됐던 ‘공돌이’ ‘공순이’가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들불처럼 일어났던 노조 조직과 노동자 투쟁의 성과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대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방어투쟁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방어투쟁을 하면서 과연 우리가 공장 울타리를 넘는 계급적 연대에 대한 공동의 가치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는 있었지만 그것을 전체가 공감하는 가치로 만들어 내는 일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가짜 보수와 위선적 진보가 하는 정치로는 한국 사회 불평등을 깰 수 없다. 조직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와 손을 잡고 한편이 되는 길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직접정치의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 내년 대선에 1차적으로 주요한 숙원사업이 돼야 할 것 같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어떻게 잘 넘어갈 건지, 어떤 공감대로 끌고 갈 건지, 현장 조합원들한테 무수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질문을 쉼 없이 던지다 보면 질문 속에 답이 있고 그 현답은 질문이 모아질 때 힘을 발휘할 거다.

사회자 : ‘87년 체제’를 깨기 위한 ‘새로운 노동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운 노동 체제 형성을 위한 노동운동의 과제는.

조돈문 : 새로운 노동체제 라는 것은 유린됐던 헌법이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 유린됐던 노동기본권을 헌법에 따라 제대로 보장하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노동체제는 노동기본권 회복이 핵심이 돼야 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주체형성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먼저 노조법 2조 개정이 돼야 한다. 두 번째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돌봄서비스 사회화다. 이를 통해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함께, 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여성을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세 가지를 통해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더불어 권리의식을 배양하고, 이를 토대로 주체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상균 : 한국의 불평등 구조는 지금의 처방대로는 깰 수 없다. 지방정치부터 중앙정치로 가는 과정 속에서 계속 파편화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제대로 노동정치를 시작한다는 시그널이 필요하다. 2021년이 분명한 시작을 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다. 권리찾기유니온 같은 운동이 우후죽순 일어나 그 힘들이 연결될 때 의외로 정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다. 노동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절대가치를 중심으로 목소리가 모이는 날을 꿈꾸고 있다. 많은 동지들이 함께해 줄 거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