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근 필수노동자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다수의 인터뷰를 하게 됐다.

청소노동자, 생활폐기물 수거 노동자를 만났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장애인 활동지원사, 사회복지관 사례관리사 등을 만날 예정이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조사라 그런지 대상 직종이 다양하다. 그에 따라 인터뷰해야 할 노동자도 많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한 지 2년하고 4개월이 됐다. 그간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해봤기에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그런데도 인터뷰하러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겁다. 낯선 사람과 얼굴을 마주한 채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센터 문화의 날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상근자들끼리 문화 활동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단합을 도모하는 시간이다.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성격유형검사(MBTI)를 해봤다. 에너지 방향을 의미하는 첫 글자는 예상대로 ‘I’(Introversion, 내향형)였고, 그것의 선호 분명도 범주는 ‘매우 분명’으로 선명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쉽게 에너지를 잃는다. 홀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몇몇 소수의 사람과 친분을 유지한다.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 드물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편이다. 주로 독서나 영화 감상과 같이 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즐긴다. 한번 인터뷰하려면 큰맘을 먹어야 하는 개인적인 이유다.

그래도 일반적인 대화보다는 인터뷰가 수월한 편이다. 무대가 차려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질문자와 답변자라는 역할이 명확하다. 상대는 내가 질문을 할 것을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정적으로 질문거리가 미리 주어져 있다. 질문지를 보면서 대사를 그대로 읊으면 그만이다.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

이번 필수노동자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구체적인 노동 과정과 코로나19 경험에 대해 물었다. 그 외에 고용형태·근로계약·안전보건, 필요한 지원에 관한 질문을 덧붙였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 사전조사를 했고, 각 질문마다 세부질문을 생각했다. 인터뷰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보단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더 편하다. 무대 울렁증이 딱히 없다. 스스로 준비만 잘 돼 있다면 말이다.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첫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살짝 긴장되긴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아무렇지 않았다. 대학교 조별 과제를 할 때 자료조사나 PPT 제작보다는 발표를 선호했다.

왜 여러 사람보다는 한 사람을 대하기가 더 어려울까?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지 싶다. 얼굴을 마주하고, 기분을 살피고, 상대방의 말에 적절히 반응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나만큼이나 너에게도 신경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여러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방을 특정할 필요가 덜하다. 나의 리듬에 맞게 준비한 말을 풀어 나가면 된다. 상황을 통제할 주도권이 많은 부분 나에게 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평소 말 속에 얼마만큼의 진심을 담았던가. 연출된 무대 위에서 형식적인 말만 주절거린 건 아니었나. 아무런 꾸밈없이 타인과 마주하기란 정말이지 어렵다. 사회적 가면을 완전히 벗어 버린 소통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게 타인을 향해 다가갈 수 있으면 하는 요즘이다.

활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행위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구체적인 개인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진심이 모여 거대한 연대를 이룬다. 활동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당분간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 어차피 코로나19로 여럿이 만나기도 힘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