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건조하다. 겨울이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차갑다’는 표현보다는 ‘건조하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전자에서는 미약하게나마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차가움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따뜻함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사막이, 인간이 아닌 사물을 바라보는 텅 빈 시선이 떠오른다.

LG트윈타워 앞이다. 청소노동자들이 거리에 서 있다. LG트윈타워 건물관리업체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끝냈다. 그러나 고용 승계는 없었다. 2019년 10월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1년이 조금 더 지나 벌어진 일이다. 기업이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면, 파견·용역 계약을 해지한다. 간접고용으로 인한 이익은 챙기고, 의무는 하청에 떠넘긴다. 성가신 노동법을 피할 수 있는 값싼 방법이다.

LG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의 지분을 100% 보유 중이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 두 명이 (매각계획을 밝혔지만) 지수아이앤씨의 지분을 50%씩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LG가 바라본 건 청소노동자 80여명의 구체적인 삶인가, 아니면 어느 장부에 적힌 숫자 ‘80’인가. 숫자를 읽을 수는 있으나,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것일까.

국회로 가보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했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회는 수백 명의 삶과 죽음을 제멋대로 결정지었다. 노동자의 구체적인 삶은 너무나도 쉽게 잘려 나갔다. 영세사업장의 수가, 그것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법안이 경제에 미칠 효과가 논의됐지 싶다. 국회가 바라본 건조한 세상에서 노동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중대재해처벌법뿐만이 아니다. 5명 미만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는 연차·수당·근로시간·해고 등에 있어 차별을 받는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 또한 이들을 외면한다. 이곳의 노동과 저곳의 노동이 지닌 가치가 다르지 않을 것이고, 노동 기본권은 누구나 당연하게 누려야 함에도 말이다. 법은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불행히도 현실은 반대다.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보호해야 할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규율해야 할 것들을 규율하지 못한다.

‘5명 미만 사업장’이라는 기준이 어떤 대표성과 도덕적·논리적 권위를 지녔는지 궁금하다. 영세사업장의 경제적 취약성과 행정력의 한계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답변이 돌아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가 죽음과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정부가 건넨 몇 마디 말에 졸속으로 처리할 사안은 아니었다. 삶과 노동의 무게가 그토록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가끔은 소설을 읽듯이 노동을 바라보면 좋겠다. 소설에는 빈 곳이 많다. 글은 모든 걸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준다. 독자는 빈 곳을 메꿔야 한다. 그래서 기억하고, 느끼고, 체험하고, 때로는 토론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글을 읽는다. 소설에 몰입하고,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그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소설은 건조하지 않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80’이라는 숫자를 읽고 그것에 최저시급을 월급으로 환산한 수를 곱하기에 앞서 80명의 하루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80명이 너무 많다면, 10명, 아니 1명이라도 괜찮다. 사람들로 부대끼는 지하철과 버스, 고된 노동과 짧은 휴식, 일터에 흐르는 희노애락과 삶의 의지, 모두 건조한 숫자 뒤에 감춰져 있는 삶이다.

‘5명 미만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가상의 선을 그어 멋대로 삶과 죽음을 나누거나 차별을 못 박지 말고, 영세사업장에 속한 노동자가 직면한 위험과 불합리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 그곳에도 역시 삶이,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이 있을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