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문득 대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끼적인 습작 소설 한 편이 생각났다. 줄거리는 이렇다.

옥탑방에 사는 한 남자가 있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에 들어서는데 침대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뱀을 발견한다. 남자는 패딩에 긴 청바지를 입고 군화와 고무장갑으로 맨살을 감춘다. 무장을 마친 그는 뱀잡이를 시작한다. 침대 매트릭스를 들춰 샅샅이 뒤지지만 찾지 못한다. 119를 불러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술 냄새를 맡은 대원이 그가 취중 장난을 치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남자는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집에 있는 짐들을 옥탑방 마당으로 모조리 빼낸다. 여전히 뱀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텅 빈방에 누워 곤히 잔다.

이상하게도 빈방을 볼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신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덕택이다. 비단 타인뿐만이 아니라, 물건과의 지나친 관계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옆에 무언가가 있으면 괜히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물건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청소하고, 망가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사물인터넷이니 가상현실이니 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관계는 더 촘촘하게 얽히고설키고, 세계는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다. 동시에 스스로에 집중할 시간은 더 부족해질 것이다. 머리가 아파 온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고 했다. 그 말에 ‘물건도 지옥이다’를 더하고 싶다.

흔히 우리는 관계에 지칠 때마다 자기만의 휴식법을 취하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것은 산책일 수도, 명상일 수도, 여행일 수도 있다. 내게는 이사를 하다가 빈방을 마주하는 순간도 그에 해당한다. 빈방에 눈을 감은 채 편히 눕는다. 앞으로 살 집에서는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에, 청소가 끝난 떠날 집에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에 잠긴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휘경동·장안동·신림동에 살았고, 지금은 대현동에 살고 있다. 휘경동에서는 두 곳에서 살아 봤으니, 다섯 번 이사한 셈이다. 귀찮고 번잡스러운 이사 때마다 빈방은 잠깐이나마 쉼터가 돼 줬다.

앞으로도 여러 번 이사를 할 것 같다. 서울에서 내 집을 구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때마다 빈방을 마주할 것이다. 그런데 예전처럼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빈방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를 것 같아 그렇다. 요즘따라 날로 커져 가는 욕망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주식과 가상화폐 기사에 눈길이 간다. 아직까지는 행동으로 이어질 만큼 욕망이 강하지 않다. 또 투자를 하려고 이것저것 정보를 찾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게 귀찮다. 나름 ‘미니멀리스트’라는 겉옷을 입은 ‘귀차니스트’인 나다. 물론 그런 정체성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요즘이지만.

재보궐선거가 끝났다. LH 투기 사태, 공공·민간 주택 공급, 공시지가 조정, LTV·DTI 등 온통 부동산 이야기뿐이었다. 정치권은 부랴부랴 청년을 소환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표심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변화의 원인 중 하나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임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평생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는 현실과, 권력자들의 위선과 부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실패와 그에 따른 양극화가 청년들의 욕망을 부추겼다. 희망을 잃은 청년들이 한줌의 확률과 불확실성 속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중이다. 밤낮으로 힘들게 공부하고 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번 신명나게 자신을 불살라보는 것이다. 운이 좋아 잘 풀리면 ‘Fire족’(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조기 은퇴하는 사람들)이 되고, 잘못 풀리면 Fired다. 청년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빚까지 내서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소수의 성공은 다수의 실패를 먹고 자란다. 그럼에도 나는 성공할 거라고 헛되이 믿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라도 필요한 시대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