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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노동센터

매일노동뉴스 연재칼럼 [비정규직 활동가의 차별없는 세상 속으로]

 

견디고 이기게 하는 힘, 비정규노동 수기

 

 

이채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얼마 전까지 청년 활동가들끼리 글쓰기 계모임을 했다. 각자의 활동을 ‘글’이라는 언어로 쌓아가자는 취지였다. 보증금을 내고 글을 쓰지 않으면 벌금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강제요인을 둬 꾸준히 글을 써 보고자 했다. 내가 참여한 이유는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활동을 글이라는 언어로 정리해 나가는 게 왜 중요한지, 다른 참가자들의 글을 보면서 이 모임의 취지를 이해하게 됐다.

 

동시에 우리 센터에서 매년 진행하는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됐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해에 13번째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을 열었다. 전과 같이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1편의 대상과 최우수상, 3편의 우수상을 선정했다. 수상작을 선정하고서 가장 즐거운 일은 수상자에게 연락하는 일이다. 수상소식에 기뻐하는 수상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소식을 전했다는 마음에 뿌듯하기까지 하다. 수상자를 만나는 날도 기다려진다. 공모전 시상식을 12월 말, 우리 센터 대학생 자원활동 결과발표와 함께 진행한다.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함께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같은 노조원들과 위원장이 꽃다발을 들고 오기도 한다. 수상자만큼이나 고무된 표정을 한 지인들을 보면서 내 기쁨도 한껏 올라간다.

 

“제 글이 신문 지면에 실린다고 해서 응모했어요.” 수상자 중 한 명이 수상소감으로 수기공모전에 참여한 이유를 말했다. 수기공모전이 지금까지 이어진 이유와 앞으로 이어져야 할 명분이었다. 자신이 하는 노동과 일하면서 겪는 불합리함을 이 사회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기공모전은 열악한 환경에 잘 알려지지 않은 노동을 수집해 누군가 읽을 수 있도록 알리는 증폭기였다. 수상작 중 최민자 작가의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들의 소망’ 작품은 손님과 회사로부터 여성대리기사이기 때문에 겪는 부당한 대우를 고발한다. 길한샘 작가의 ‘나는 동네 배달노동자다’ 작품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일반배달대행사 노동자의 현실을 서술하고 있다. 작품에 언급돼 있지는 않지만 최근 작가는 충북 청주지역에 라이더유니온 충북지회를 창립해 지회장을 맡았다. 배달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개선되길 바란 작가의 의지가 실현된 것이다. 정권찬 작가의 ‘바보야, 문제는 노동이야!’ 작품은 자동차판매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당했던 일들과, 문제를 해결할수록 법원도, 노동부도, 국가도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는걸 확인했을 때 심정을 볼 수 있다.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명동에서 일하는 마사지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일반적으로 상상하지 못할 영역의 노동환경을 파노라마처럼 그려 처음으로 마사지사의 노동이 머리에 각인됐다. 분명 수기공모전은 비정규노동의 현실을 알리고 사람들의 주목을 이끄는 데 힘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모을 공간이 있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청자를 모으는 데 수기공모전은 유의미했다.

 

수기공모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비정규노동의 투쟁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투쟁 당사자가 풀어낸 현장의 이야기는 글로 기록되면서 입체적이고 생기를 얻는다. 김경학 작가의 ‘해고노동자 분투기’는 한국지엠 하청노동자가 재계약을 반복하는 불합리함에 시작한 노조활동과 파업·투쟁기를 기록했다. 김덕희 작가의 ‘나의 삶은 언제나 투쟁의 연속, 윤슬 같은 반짝거림이다’는 학습지 회사가 학습지 교사에게 행하는 악행과, 그 악행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조간부들의 지난한 교섭의 시간을 기록했다.

 

투쟁의 기록이 담긴 작품들을 보며 싸움의 시간을 겪은 작가와 노조가 존경스러웠다. 기업과 싸우고 사업주와 싸우고, 어떤 때에는 정부와 싸우면서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텐데 그 시간을 견딘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싸우고 견디고 결국엔 이겨 낼 사람들을 보며 힘이 나기도 했다. 노동정책도 노동기본권도 역행하는 시기이지만 이들의 투쟁기는 투지를 다지는데 좋은 동기를 준다. 투쟁의 경험이 기록되고 기록이 읽히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의 기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비정규노동 수기공모 수상작은 센터 격월간지 <비정규노동>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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