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 6년간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주관한 학생-인권단체 자원활동 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에 6명의 청년 자원활동가와 함께 서울대 노동자 실태조사, 비정규노동 관련 활동가 인터뷰를 했다. 12월 말에 관련 활동을 끝냈고, 올해 2월 중순에 마무리 모임을 가졌다. 한 편의 실태조사 보고서, 세 편의 인터뷰를 묶은 자료집이 곧 책자로 나올 예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듣고, 센터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성실히 활동해 준 자원활동가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설문조사와 그에 대한 분석은 보고서에 제대로 싣지 못했다. 그러나 미화·조리·경비·설비·행정·조교 같은 여러 업종 노동자를 만나 전반적인 노동 현황을 파악했다. 2019년 서울대 미화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휴게공간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환기나 채광에 취약한 곳이 있었다. 생활협동조합 조리노동자는 서울대 내에서 가장 처우가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식수가 감소해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경비노동자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로서 임금·휴게시간에 있어 취약했다. 설비노동자는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빠른 작업 속도를 요구했다. 행정·조교 노동자의 경우 동일 노동을 해도 입직 경로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인터뷰는 아파트 경비노동, 장애인 노동, 대학원생 노동 관련 활동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단기 계약, 부당 업무지시, 휴게시간 미보장 등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들었다. 그리고 양적 성과에만 집중하는 장애인 노동정책과 그 결과인 장애인 일자리의 질적 저하, 장애인의 노동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능력 강화의 필요성을 배웠다. 지도교수와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 대학원생의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도 들여다봤다. 인터뷰이들은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조직화된 노동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게 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공통적으로 말했다.

자원활동 연계 프로그램의 목표 중 하나는 주변의 노동을 재발견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학교는 배움의 장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터다. 자원활동가들이 매일 오가는 캠퍼스와 그곳에서의 시간이 어떤 노동 위에 구성된 건지 생각해 봤으면 했다. 그리고 집을 오고 갈 때마다 마주할지 모르는 아파트 경비노동자,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하나 잊고 지냈던 장애인 노동자, 학생이 아닌 노동자라고는 생각해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대학원생 노동자의 노동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다행히 자원활동가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걸 가장 기억에 남은 활동으로 꼽았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노동자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불행히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말이다.

실태조사와 인터뷰로 만난 이들은 대부분 고용이 불안정하고, 저임금이며,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채 각종 갑질과 폭력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였다. 비정규 노동자를 재발견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조직화 되지 않아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자로서, 타자로 존재한다. 이들을 노동자로 규정하는 건 하루하루의 구체적인 노동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협소한 근로계약 관계다. 개인의 생존과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해 ‘필수노동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어엿한 주체로 바로 서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이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우리의 일상이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을 촘촘히 엮어 지탱하는 건 이들이다. 반 년간의 자원활동 연계 프로그램은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곧 일상의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