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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차별 없는 세상속으로' 칼럼]
비정규 노동자들의 용솟음을 기대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건설노조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치받고 나갈 가장 중요한 산별노조인 건설노조가 양대 선거를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비정규운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가받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이 나왔지만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초 홍익대 투쟁으로 사회연대의 새로운 장을 열며 ‘희망버스’의 마중물 역할을 한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공동투쟁도 어려움을 맞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조직화의 모델이 되고 있는 학교 비정규 노동자들 또한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직 통합의 결정적 난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천751만명 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900만여명이 차별과 일자리 불안으로 고통 받는 양극화 공화국인 한국사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조직화와 투쟁을 지속해 온 대표적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현실이다.
항쟁을 상징하는 흑룡의 해인 2012년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함께 치러지는 중요한 정치적 격변기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으려고 정부와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할 것 없이 여야가 앞다퉈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2002년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로 마무리되는 비정규직 관련 대선 공약을 벌써부터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이런 열기라면 이제야말로 난제로 꼽혔던 비정규직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97년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갈수록 구조화·고착화돼 온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갖는다. 사회여론화와 정치권 쟁점화에는 상당 수준 성공했음에도 현실의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은 왜 이리 더디고 어려운가.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그 힘겹던 조직화와 투쟁의 경험을 디딤돌로 삼아 왜 더 크게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가. 지난 10여년 비정규운동의 역사를 총괄평가하면 ‘사회여론화에는 성공했지만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로 요약된다. 그 문제의식의 한켠에 여전히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양대 노총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도외시해 온 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와 사용자 집단에 대한 울분도 섞여 있다. 그러나 노사정 모두의 공동책임으로 돌려 버리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대안 모색이 참 난감하다.
비정규 노동자 규모와 실태의 심각성으로 본다면야 혁명적 수준의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대다수 미조직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내면화하는 지경에 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가 1% 기득권세력 중심의 왜곡된 경제구조와 사회체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지금, 문제해결을 위해선 당사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법 아닌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해서 비정규직으로 퇴출되는 비정상사회. 수많은 노동자가 차별과 고용불안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불안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구두선이나 공문구로 그치기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 온 사회. 그 결과 노동자의 아이들은 가난을 신분세습처럼 대물림하는 사회.
이 모든 것이 이제 일상이 되고 있는 나라에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들, 노동인권을 알기도 전에 어이없는 차별과 노동착취에 미리 시들어 버린 젊은 청춘들, 노동자성을 부정당한 채 일하다 죽어도 아무 보상도 못 받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진짜 사장과는 대면조차 하기 어려운 간접고용 노동자들. 천민으로 홀대받는 이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이 켜켜이 쌓여 불쏘시개가 돼 있는데 이제 반역을 꿈꾸기만 할 게 아니라 실행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가 강조했던 ‘비관적 이성과 낙관적 의지’로 올해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의 힘찬 용솟음을 기대한다.
비정규운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가받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이 나왔지만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초 홍익대 투쟁으로 사회연대의 새로운 장을 열며 ‘희망버스’의 마중물 역할을 한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공동투쟁도 어려움을 맞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조직화의 모델이 되고 있는 학교 비정규 노동자들 또한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직 통합의 결정적 난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천751만명 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900만여명이 차별과 일자리 불안으로 고통 받는 양극화 공화국인 한국사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조직화와 투쟁을 지속해 온 대표적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현실이다.
항쟁을 상징하는 흑룡의 해인 2012년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함께 치러지는 중요한 정치적 격변기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으려고 정부와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할 것 없이 여야가 앞다퉈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2002년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로 마무리되는 비정규직 관련 대선 공약을 벌써부터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이런 열기라면 이제야말로 난제로 꼽혔던 비정규직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97년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갈수록 구조화·고착화돼 온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갖는다. 사회여론화와 정치권 쟁점화에는 상당 수준 성공했음에도 현실의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은 왜 이리 더디고 어려운가.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그 힘겹던 조직화와 투쟁의 경험을 디딤돌로 삼아 왜 더 크게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가. 지난 10여년 비정규운동의 역사를 총괄평가하면 ‘사회여론화에는 성공했지만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로 요약된다. 그 문제의식의 한켠에 여전히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양대 노총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도외시해 온 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와 사용자 집단에 대한 울분도 섞여 있다. 그러나 노사정 모두의 공동책임으로 돌려 버리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대안 모색이 참 난감하다.
비정규 노동자 규모와 실태의 심각성으로 본다면야 혁명적 수준의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대다수 미조직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내면화하는 지경에 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가 1% 기득권세력 중심의 왜곡된 경제구조와 사회체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지금, 문제해결을 위해선 당사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법 아닌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해서 비정규직으로 퇴출되는 비정상사회. 수많은 노동자가 차별과 고용불안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불안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구두선이나 공문구로 그치기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 온 사회. 그 결과 노동자의 아이들은 가난을 신분세습처럼 대물림하는 사회.
이 모든 것이 이제 일상이 되고 있는 나라에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들, 노동인권을 알기도 전에 어이없는 차별과 노동착취에 미리 시들어 버린 젊은 청춘들, 노동자성을 부정당한 채 일하다 죽어도 아무 보상도 못 받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진짜 사장과는 대면조차 하기 어려운 간접고용 노동자들. 천민으로 홀대받는 이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이 켜켜이 쌓여 불쏘시개가 돼 있는데 이제 반역을 꿈꾸기만 할 게 아니라 실행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가 강조했던 ‘비관적 이성과 낙관적 의지’로 올해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의 힘찬 용솟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