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청년자원활동가 16명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 일자리 불평등 인식 조사와 비정규 노동자 인터뷰를 할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청년과 일자리 불평등,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를 주제로 온라인 강연을 듣고 토론했다. 자원활동가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관심이 많았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로 갔다. 노동자들과 마주 앉아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다. 4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음 정권으로 옮겨 갔다. 내년 대선 경선으로 온 언론이 들끓고 있다. 이번 정부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무더위 속에서 투쟁 중이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는 노노 갈등으로 전락했다.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갈등구조로 축소된 최저임금 논의를 보는 듯하다. 정부가 이런 갈등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갈등을 중재하고 돌파해 보려는 적극적인 의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투쟁하는 노동자들 옆에서 단식농성이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책임과 의무가 실종됐다.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는 비정규 노동자를 향한 혐오가 도를 넘어섰다. 노동 3권의 의의와 투쟁에 이르게 된 경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노동자들의 외침은 그저 떼쓰기로 그려진다. 참 편하다. 단어 하나로 누군가의 오랜 노동과 절박한 심정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니 말이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좀비로 묘사했다. 최소한의 보도 윤리마저 저버린 저급한 행태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편협하다. 답을 미리 정해 놓은 것 같다. 능력주의로 대표되는 절차적 공정 말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이 노동자로 인정받고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여긴다. 불합리하다. 현장에서 쌓은 수년간의 경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역시 하나의 능력이나,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지 못할 뿐이다. 왜 하나의 길만 고집하면서 누군가의 노동을 철저하게 부정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상시·지속적이거나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라면 직접고용하는 게 상식적이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업무가 그렇다. 매년 60조 넘는 건강보험료가 걷히고, 비슷한 규모의 급여가 지출된다. 상담은 이렇게 큰돈이 오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다. 게다가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는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고, 코로나19 관련 상담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비용 절감과 사용자 책임회피를 이유로 핵심업무를 외주화한 것에 불과하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강원도 원주에서 출발해 경기도 여주·이천·용인, 인천, 서울 강남을 거쳐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이어지는 일정이다. 이들의 외침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함께 걷진 못하더라도 말이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단지 절차적 공정만을 묻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떼쓰기로, 문제 해결책을 능력주의로 단순화하는 건 손쉬우나 무책임한 행위다. 노동기본권, 일자리 불평등, 일터의 안전, 계급적 연대 등 고민해 봐야 할 지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