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 코로나19와 함께 사라지다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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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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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쓰레기를 줍는 어르신들(@노년유니온)


코로나19는 사람들과 도시로부터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인 듯했다. 이경숙 (가명·76) 어르신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노인 일자리가 중단되어 일시적인 실직자가 되었다. 어르신은 일을 잃었기에 구속된 시간이 없었다. 구속된 시간이 없는 만큼 ‘자유로운’ 시간도 없었다.


이경숙 어르신은 코로나19로 생활양식이 바뀌었다. 일할 곳이 사라졌다. 복지관에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없다. 교회도 가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던 가족도 발길을 끊었다. 유일한 낙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산책도 사람이 많지 않은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나갔다. 외로워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친구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함께 살았다. 가족이 같이 살아도 외롭긴 마찬가지였다. 각자 방에서 나오지 않고, 나와도 대화를 하지 않고, 밥도 따로 먹는다고 친구가 말했다.


혼자 사는 자신이나 가족과 사는 친구나 외롭기는 똑같다. 우울함을 먹을거리로 푸는 습관이 있는 어르신은 노인 일자리 중단으로 좋아하는 오렌지 하나 사 먹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가던 병원도 가급적 미루고 한 번에 3개월 치 약을 받아온다.


우왕좌왕 지자체 대응


“서울시 긴급복지 지원 신청하세요.”

사회복지사에게 전화가 왔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노인 일자리가 중단되면서 서울시는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에 일주일에 한 번 어르신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은 긴급복지 지원을 안내해 드리라고도 했다. 전수 조사해서 결과를 보고하라고 공문을 내렸다.


이경숙 어르신은 전화를 끊고 바로 구청에 가서 긴급복지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구청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노인 일자리 하는 친구에게 긴급복지 지원 신청을 했는지 전화를 걸어 물었다. 친구는 “구청에 신청했는데, 좀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사흘 만에 돈이 나왔어.”라고 답했다.


이런 사실을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알렸다. 사회복지사는 정확한 지침과 내용이 구청과 주민자치센터에 전달되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며 긴급복지 지원을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도 구청의 지침이었다.


얼마 지나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는 긴급생활복지 지원 대상자에서 제외된다는 방침이 내려왔다. 노인 일자리 사업 중단이 길어지자 이 방침은 변경됐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도 긴급복지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고 자격을 완화했다. 이경숙 어르신은 신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노인 일자리 활동비 선지급


노인 일자리 사업 중단으로 어르신들 생활은 곤궁해졌다. 그러자 복지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일하지 않은 3월분 활동비를 선지급하고 4~6월 또는 5~7월, 3개월 동안 월 30시간 노동을 40시간으로 늘려 일하라고 했다. 선지급은 어르신들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당장 돈이 급한 분은 추후 활동을 약속하고 선지급을 받았다. 이경숙 어르신도 선지급을 받았지만 찜찜하다. 빚진 기분이고 나중에 이자 내는 느낌 때문이다.


4월도 노인 일자리가 휴업했다. 4월은 선지급하지 않았다. 3월 선지급 일수를 채우고 나면 다시 3개월에 걸쳐 월 10시간을 추가 근무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인 일자리는 7, 8월은 혹서기라고 해서 하루 3시간, 10일 일한 것을 7일만 일해도 급여를 지급했다. 올해는 혹서기에 3월 선지급분과 4월 일하지 못한 달까지 추가 근로를 한다. 코로나19로 노동 조건이 더 나빠졌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 평균 나이가 70대 후반임을 고려하면 혹서기에 추가 근로가 건강에 해를 끼칠까 걱정이다.


노인 일자리 휴업은 어르신들이 일하기 싫어서 중단한 게 아니다. 정부가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 휴업을 했다. 휴업 귀책 사유가 정부에 있다. 이런 경우 직장에서는 휴업급여라고 해서 월급의 70%를 지급한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 노동이 아니라 복지 차원의 봉사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복지 차원에서라도 휴업 기간의 급여를 전액 지급해야 한다. 복지 차원이니까.


내 잘못이 아닌데 돈을 안 주는 게 맞아?


5월 6일부터 노인 일자리가 재개됐다. 이경숙 어르신은 기쁘지 않았다. 어르신이 하던 일은 지하철 역사에서 시각 장애인 길 안내이다. 코로나19가 아직 위험하다고 판단한 지하철 역사에서 어르신에게 연락할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했다. 보육시설,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어르신들도 같은 이유로 일을 할 수 없었다.


복지부는 수요처에서 와도 괜찮다고 할 때까지 비대면 사업으로 일시 변경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비대면 사업이 갑자기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행기관에서는 거리 청소로 사업을 일시 변경했다. 이경숙 어르신이 일하는 지하철 시각 장애인 안내 도움 사업도 거리 청소로 변경했다. 어르신은 허리가 불편하다. 허리를 숙이고 몇 시간씩 일하는 거리 청소는 부담이다.


거리 청소로 사업이 바뀌면서 어르신은 일자리를 쉬었다. 일을 쉬니까 3월 선지급 받은 급여를 토해내야 한다. 어르신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 노인 일자리 수당 27만 원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화가 났다. 수요처의 거부로 일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거리 청소로 일을 대체했다. 길을 지나다 보면 유독 거리 청소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이경숙 어르신은 “나는 원래 지하철에서 시각 장애인 안내 일을 한다고 수행기관과 계약하고 들어왔다. 내가 잘못한 일도 없고, 천재지변으로 일을 못 하게 됐는데 급여를 주지 않고, 계약과 다른 일을 권유하고 싫으면 실직자로 지내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나?”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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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일할 곳이 사라진 어르신들이 해고 반대를 주장하며 모였다. (@노년유니온)


어르신 두 번 울게 한 상품권 지급


코로나19가 길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월 급여 27만 원 중 30%에 해당하는 8만 1천 원을 온누리 상품권으로 받고 현금 18만 9천 원을 받으면 추가로 상품권 5만 9천 원을 주는 정책이다. 어르신들 동의는 필수다. 어르신들 의견은 50대 50이다.


좋아하는 의견은 5만 9천 원이 상품권이지만 더 받아서 좋다는 의견이다. 반대 의견은 상품권을 받으러 수행기관에 가야 하는 게 번거롭고, 노인 일자리에서 버는 돈은 공공요금에 자동이체를 걸어 놔서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가 상품권 지급은 절차가 까다롭다. 수행기관과 어르신 간에 이루어지던 급여 전달체계에 은행이라는 곳이 추가된다.


이경숙 어르신은 일을 못 해 손해 보고, 추가 상품권을 못 받아 화가 난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안 하는 사람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노인을 위한다면 문재인 대통령 공약 ‘2020년 노인 일자리 수당 40만 원 지급’을 지키라고 말한다. 공약을 지키는 것이 상품권보다 더 노인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는 노인 일자리 현장에도 질문을 던진다. 노인 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에게도 국가가 휴업을 지시했으니 그에 따른 보호 책임 차원에서 휴업 기간 급여를 전액 제공해야 한다. 또한 계약된 일의 내용이 변경됐을 경우에 자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거부해도 노인 일자리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상처받은 어르신들의 정의로운 회복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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