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 당선작 [장려상] 우리는 욕받이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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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

 

 

오늘도 욕을 먹었다. 답답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달래려 지하에서 올라와 하늘을 향해 또다시 한숨을 짓듯 담배 한 대를 문다.

 

나는 지하철 역무원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는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좋은 사람도, 못난 사람도, 착한 이도 있었으며 정말 나쁜 이도 있었다. 고맙다고 아침에 우유 한 팩 가져다주던 아이도 있었고, 아파 쓰러져 있는 아이를 챙겨줘서 고맙다고 박카스 보내주던 아이 엄마도 있었으며, 지나가며 고생한다고 떡 하나 챙겨주시던 할머니도 계셨다. 탈북자에게 뒷머리 잡혀 맞은 적도 있었고,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목도 졸려 보았으며 그 사람들에게 당할 때 도와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 중에 가슴속에 많이 남고 머릿속에서 제일 많이 떠오르는 건 역시나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듯 욕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다.

 

처음으로 당한 것은 술주정이었다. 일하던 역 근처에 화상경마장이 있었다. 경마는 금, 토, 일 3일만 열기 때문에 오후 6시가 지나면 한 번에 200~300명 정도가 20분가량 끊임없이 몰려나오기에 제일 바쁜 날이자 바쁜 시간대였다. 그날도 여전히 경마장이 끝나고 바쁘게 사람들을 안내하며 지나가는 줄 알았다. 10시가 좀 넘었을까? 갑자기 대합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기에 사고가 난 줄 알고 급히 나가보았더니 웬 중년 남자가 발매기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있었다. 그 본새가 무서웠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술에 잔뜩 취한 얼굴로 침을 튀어가며 욕을 해대는데 금방이라도 뒤춤에서 날붙이를 꺼내 휘두를 것만 같았다.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시냐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건 욕이요, 무릎을 꿇으라는 소리뿐이었다.

“야 이 XXX야 꿇어! 니들이 나를 무시해?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XXX가 무릎 꿇어 XXXX아!”

 

당황하고 무서웠지만, 어찌어찌 설득해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승차권이 나오지 않는다. 그건 기계가 자기를 무시하며 승차권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니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거다 라는 것이었다. 남자의 손을 바라봤다.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신용카드였다. 남자는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이라서 우대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데 무료승차권을 우대권이라고 부른다. 장애인이 발권기를 이용해서 우대권을 발급받으려면 복지카드를 발권기에 넣어서 인식되면 바로 발급이 되는 시스템인데, 이남자는 신용카드를 복지카드로 착각해서 우대권이 발급되지 않자 소리 지르며 난동을 부린 것이다. 설명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욕설과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몸이었다. 한참을 난동 부리던 그 남자는 누군가가 신고한 경찰이 오자 바로 잠잠해졌고 우대권을 뽑아서 지하철을 타고 바로 가버렸다. 다시 역무실로 들어오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너무 떨리고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바가지를 먹어야 했으며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걸 다 맞고만 있어야 했을까? 너무억울했다.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내가 혼자였다면, 집에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없다면, 그래도 한마디라도 했을 텐데 라는 생각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 이후로 짧으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계속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고 나도 서서히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갔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술 취한 사람은 진상도 아니구나.” 시작부터 반말로 시작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으며,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조금의 손해라도 봤다고 생각하면 역장을 찾고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아비, 어미를 찾는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이 우대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니 내놓으라 하는 사람은 하루에 수십 명이다. 우대권은 정당한 신분증을 가지고 기기에서 발급받아 사용하거나 교통 복지카드를 발급받아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고 약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안 줄 수 없다. 아니 안 줄 수는 있지만, 그 후환이 너무 크다. 100% 말싸움을 하거나 욕을 먹는다. 심할 땐 역무실까지 들어와 욕을 하고 손찌검을 하며 역장을 찾거나 그 사람의 자식들까지 찾아와서 민원을 넣고 창피를 준다. 신분증을 안 가져오고 그냥 달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의 같다.

“얼굴 보면 알잖아?”얼

굴 봐도 모른다. 65세인지 64세인지 얼굴 보고 알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 가방을 바꿔오면서 지갑을 놓고 왔으니까 하나 줘.”

“오늘 옷을 갈아입고 와서 지갑을 안 가져 왔네? 하나 줘.”

외출하는데 몸만 나온 거다. 아무것도 없이.

“신분증을 잃어버렸는데 한 달 넘게 걸린대. 하나 줘.”

주민센터에서 일주일 걸린다.

“아들이 다른 지방 사는데 필요하다고 가져가서 아직 안 가져왔어. 다음에 가져올 테니까 한 번만 줘.”

이 분 1년 넘게 저렇게 하고 우대권을 받아 가셨다. 매일 같이 와서 추궁을 해보니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있다고 하더라.

“야!”

(손만 내민다)

“네?”

(손만 내민다)

··· 말하기도 귀찮은 걸까. 근데 이런 사람이 많다.

 

우리가 욕을 먹는 절반은 기분이 나빠서다. 그냥 기분이 나쁜 일이 있었고, 지나가는 길에 우리가 있었을 뿐이다. 그냥 앞에 맘대로 해도 되는 놈이 있고 자신은 기분이 나쁘니 욕을 하고 부모를 찾고 주먹질을 하는 것이다. 근데 그 기분을 우리가 나쁘게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받이다. 자신의 화를 자신보다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 화풀이하고 기분을 정화 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캠페인 어구가 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본인들 외에는··· 내가 아니니까. 내가 당하는 일 아니니까.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이들이니 내가 월급 주는 거다. 그러니 내 맘대로 해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욕을 쏟아내고 나면 경찰이 온다. 그러면 얼굴이 변한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한다. 욕받이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폭행을 당했지만 우리는 그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이렇게 말한다.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우리 역무원들이 욕을 먹는 경우에 우리 잘못이 없지는 않다. 말실수했거나, 일하면서 숙지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일 처리에 미숙함이 있어 처리가 매끄럽지 않아 이용에 차질을 빚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그건 분명 우리의 잘못이다. 내가 잘못한 것에 욕을 먹는 건 할 말도 없고 억울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냥 운이 없어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있었고 욕받이를 받아도 아무 말 못 하고 웃기만 해야 하는 심정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며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특히나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넌 싹수도 없다, 넌 아비·어미도 없냐? 라는 말을 들을 땐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우리는 욕받이가 아니다. 캠페인의 슬로건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감정을 가진 사람이며 당당히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어리게 보인다고, 기분 나쁘다고, 같잖은 우월주의로 사람을 무시하고 하찮게 보는 그럼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욕을 하는 본인들도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나보다 약자야. 내가 더 힘이 있으니까 해도 돼! 라고 생각을 한다. 언제든 자신이 약자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족이 욕받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상기하고 자제하고 절제하고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나하나가 서로 존중한다면 감정을 상할 일도 감정 노동자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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