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 기억상실증

by 센터 posted Jun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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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1. 분노 사회

빵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빵을 먹기로 했다. 빵을 먹기로 결정한 것은 내 감정인가? 아니면 내 생각인가? 내가 빵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빵을 먹기로 결정한 행동에 도움을 줬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무튼 지금 그따위 고민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냥 내 입에 빵을 넣고 싶을 뿐이다. 그것뿐이다.

 

오늘 회사에서 부장이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럴 때일수록 달달하고 향기로운 빵이 필요하다. 빵만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조급함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빵집으로 간다. 나는 경보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사직서 내고 아마추어 선수로 전향할까. 한 블록, 두 블록··· 평소에 좋아하던 식당도 보인다. 죄송해요, 오늘은 너의 날이 아니에요. 앱으로 포장 주문까지 했다. 나는 매장에 도착만 하면 빠르게 낚아채서 입으로 빵을 넣을 수 있다. 새가 지저귄다. 나는 뛰고 있다. 결국 내 수정체가 빵집을 인식한다. 덜컥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나는 당황했다.

‘딱, 딱, 딱, 딱, 딱···’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문을 여니, 나에게 빵을 줄 직원이 안 보이고 뭉툭한 칼질 소리만 난다. 나처럼 포장 주문을 해서 빵을 가져가려는 사람들, 매장에서 빵을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대충 어림잡아도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계산하려면 20분은 넘게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직원이 지금 계산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지옥 같은 상황인가? 내 몸 안에서 모호한 호르몬들이 분비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호르몬인지는 모르겠는데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안다.

“아, 계산 안 해요? 뭐 하는 거예요?”

“엄마~ 배고파아, 엄마~ 엄마~ 엄마아아앙 어~ 엉엉”

빵집에서 일어난 전쟁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본 적이 있다. 지금 보고 있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빵집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 떠나기도 하고 직원을 향해 표현하기도 어려운 욕을 뱉기도 한다. 나도 배고픔과 예민함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의 짜증은 곧 나의 짜증이기도 했다. 도대체 뭐를 하길래 직원은 어디 있나 궁금했다. 화가 났다. 찌푸린 미간의 힘을 이용해 모가지를 올려 찾아본다. 매장 내 유일한 직원이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계산대 뒤 주방에서 그가 저지르고 있는 행동을 발견했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2. 일상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홀로코스트 

그는 바게뜨를 자르고 있다. 그것도 여러 개를. 대략 10개 정도로 보인다. 얇은 손목으로 바게뜨를 매섭게 잘라본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는 단단한 바게뜨와의 결투에서 패배하고 있다. 그의 칼솜씨는 그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손님 무리의 맨 앞에서 그의 칼질을 유난히 맹렬하게 쳐다보는 손님이 있다. 팔짱 낀 그녀가 저 바게뜨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날숨 하나하나에 “고른 두께로 좀 썰어봐라” 등의 말을 잊지 않는 성실함을 보였다. 그녀는 그의 주인인 것처럼 말했다. 이 긴장 어린 공포의 상황을 만든 것은 그녀이지만, 우습게도 다수의 원망 어린 눈빛과 분노한 욕지거리들은 혼자서 맹렬히 싸우고 있는 직원의 등에 내리꽂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바게뜨와의 결투에서 그가 살아 돌아왔을 때, 새로운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니,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습이다. 바게뜨의 주인인 그녀가 바게뜨를 받으며 계산할 때 “고생했어요”를 말할 것이라는 내 기대는, 그녀가 “이따위로 쓰레기 같이 일할 거면 그만둬라.”라는 그녀의 비말에 처참히 무너졌다. 나는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었구나! 그녀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직원을 향한 그녀의 진한 가스라이팅 이후 돌림노래 같은 손님들의 분노가 계산대 위에 핏빛 색깔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 분노는 작게는 한숨으로, 크게는 문장으로 표출되었다. 어떤 남자는 조언을 빙자하여 “그렇게 일하면 안 된다.”라고 직원을 한 번 더 무너뜨렸다. 이윽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바게뜨를 써는 그의 등줄기를 20분 동안 바라보며 그의 등이 땀에 절어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벽녘의 이슬처럼, 등줄기가 얼마나 서늘했을까? 드디어 그의 얼굴을 문득 보았을 때 그는 얼굴로도, 눈으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허나 우습게도, 그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그에게서 나를 보았다.

 

#3. 그와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음을

“이런 개 같은 알바 새끼! 사장 나오라고 해!”

그는 치킨 껍질 튀김 부위가 바삭하지 않다고 나에게 30분째 욕을 퍼붓는 중이다. 대학교 학생회관 치킨집 코너에서 일하는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다. 술기운으로 얼큰히 취한 것을 보니 더 이상 합리적인 대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밤이 늦은 학생회관인데 기댈만한 구세주 사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큰 매장을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오늘 내가 치킨을 정말 바삭하지 않게 튀겼나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등록금을 벌어야지. 일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다.

“다른 날은 맛있게 드셨는데··· . 똑같이 튀겼습니다. 손님.”

“이 새끼가!”

“제 이름은 이 새끼가 아니라 김용근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때, 이미 그가 던진 그릇으로 달짝지근한 양념 소스가 내 얼굴에 흠뻑 묻게 되었다. 순간 소스가 아깝다고 생각을 했다. 이게 얼만 짜린데. 그도 오늘 어디서 힘들었겠지. 눈꺼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낸다. 내 감정도 닦아낸다. 내 기분도 닦아낸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리로 돌아가셔서··· .”

“이 새끼! 사장 나오라고 해!”

 

새콤한 치킨 무 국물이 다시 날아왔다. 이번엔 날렵한 민첩함으로 그릇을 피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벽에 튀겨 다시 날아온 국물을 피할 순 없었다. 내 혀가 빨간 소스와 하얀 국물을 동시에 느꼈을 때 그게 꽤 맛있다고 생각했다. 참아야지. 참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참는 일은 5,500원 시급에 포함되어 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참아야지. 잘 참아야 한다. 2015년 올해 최저시급에 맞춰서 돈을 주는 알바는 다시 구하기 어렵다. 참아보자.

 

하지만 내 빨간 얼굴을 식당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학교 친구들을 발견하고야 말았을 때 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잘 동여매고 있던 어떤 것들이 단숨에 범람하고 말았다. 나의 얼굴이 뜨끈해짐을 느꼈다. 오늘 치킨 무 국물이 따뜻했던가?

“어디가? 어디가! 이 새끼야!”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앞치마 매듭을 풀고 가죽 장화를 벗었다. 닭을 손질하는 싱크대로 가서 물을 틀고 얼굴을 씻었다. 손에 붙은 튀김 쪼가리도 털어낸다. 그리고 도망치듯 거리로 나왔다. 내 일상이며, 알바이며, 노동이며, 일자리이며, 심지어 나의 꿈이 되기까지도 했던 그곳을 그렇게 도망쳤다. 다음날 직원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1년을 넘게 일한 곳이었지만, 내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 곳이었지만 더 이상 용기가 나질 않았다. 버틸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술에 취해 욕을 하던 그 손님의 얼굴이 가끔 생각난다. 또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세상이 붉게 보이면 어떡할까, 그런 걱정도 이따금 한다. 살면서 내가 소스를 쥔 사람이 되면 소스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소스는 원래 달콤한 것이다. 소스는 먹을 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달콤한 것을 준 사람에게 화를 낸 기억이 없다. 나에게 소스를 던진 그는 기억상실증 환자임이 틀림없다.

 

#4 .기억이 연대의 힘이 될지니

“포장 주문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그는 목 깊은 동굴 안에서 힘겹게 목소리를 빼내고 있다. 그는 몸뚱아리에서 힘을 겨우 빼내어 나에게 빵이 담긴 포장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나는 깊이 고민을 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입으로 몇 마디를 겨우 빼내었다.

“무리하게 부탁한 그 손님 잘못이에요. 너무 위축되지 말아요.”

조금 전까지 짜증 냈으면서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것이 참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처지에 있었음을 까먹고 있었기 때문일까. 옛 생각과 함께 배고픔도 저 멀리 가버렸다. 그가 소진한 감정과 에너지를 내가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뿐이다. 요새 알바 자리 구하기도 어렵다는데, 그가 나처럼 도망치진 않았으면 하는 그런 꼰대 같은 생각도 들었다. 도망친 나는 아직 그때 머물러 있다. 역시 조용히나 있지 괜히 말했다 싶어서 떠나야겠다. 오지랖이다.

“감사합니다··· .”

내 마음이 그에게 닿았을까? 다행이다. 그가 얼마나 오늘을 힘들게 기억할지 애처롭다. 그가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그가 너무 자신을 옥죄지 않았으면.

 

나는 예전의 기억을 너무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감정을 살핀다는 것이 어려운 시대이지만, 우린 모두 대개 비슷한 경험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다른 이의 감정이 소중한 것처럼 내 감정이 소중한 때가 있었다. 마치 손에 잡힐 듯 내 감정이 쓰라렸던 기억을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 기억이 함께 살아갈 힘이 되고 모두의 감정을 보살필 인내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기억상실 환자였다. 내 감정이 소중했던 그때의 기억으로 다른 이의 감정도 어루만지는 내가 되길. 그런 우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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