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늘 거기에 있었다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청년의 ‘보수화’라는 말에 가려진 좌절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투표 결과에서 확인된 청년 세대의 변심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한창이다. 청년의 ‘보수화’, ‘젠더 갈등’이라는 해석부터 ‘공정’에 대한 요구라는 이야기까지, 심지어는 보수정당의 당 대표 선거에서 이변까지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청년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는 날이 없다. 청년 세대는 진보적이라는 편견 위에서 이러한 사건에 대한 과잉해석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30대들이 20대였던 2007년에도 당시 이명박 후보가 1위를 했다는 이유로, 20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던 바가 있다. 심지어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에 등장한 10대와 비교하며, “너희에게는 희망이 없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화두에 오른 20대가 바로 당시 10대들이다. 득표율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열광하며 보수정당에 대해 청년들보다도 더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었던 것은 기성세대였다. 이후 벌어지는 반동 앞에서 힘겹고 어려운 성찰이 아닌, 이제 처음 선거라는 걸 해본 청년들에게 책임 회피를 했던 것이다.

 

기자회견.jpg

2020년 7월 3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에 대한 청년단체 긴급 기자회견(@청년유니온)

 

지금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보수화의 의미를 공공성 강화보다 경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청년이 보수화되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걸로 사회 전체의 보수화가 가려지지는 않는다. 정당 지지율뿐만 아니라, 노동 정책과 부동산 정책에서, 또는 경제 정책에서 보수적 선호가 강해진 것은 세대를 아우르는 현상이다. 어떤 자료를 보아도 청년 세대가 이를 주도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것도 2030이 주도했다기보다는 보수정당 지지층 내부에서 재보궐 선거의 승리를 이어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에 가깝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된 20대 남성의 표심은 보수화보다는 20대가 보통 가진 기성 질서에 대한 반감, 박원순 시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미진한 조처, LH 사태로 대표되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민주당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20대 여성과는 달리 남성에게는 유의미한 제3의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으로 보였을 뿐이다. 일부 인터넷상에 과대 대표된 여론에 근거해서 이러한 결과를 안티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분석은 20대가 겪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노동시장 상황의 지속적인 악화 등을 가리는 잘못된 분석이다. 오히려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20대에게 이제는 정부와 여당은 철저하게 기성 질서를 수호하는 위치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와 조직 노동에 대한 시선도 다르지 않다. ‘586’에 대한 반감이나, ‘진보 꼰대’라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라는 20대의 평가들이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당장 청년에 대한 정책적 지원보다는 내가 평생 살아갈 사회에 대한 구조적 개혁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내로남불’이라는 말처럼 어떤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의 반감은 분명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사람마다 강도의 차이가 분명하고, 투표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분명 소수다.〈시사인〉에서 2019년에 진행한 심층 여론조사에서는 이러한 집단을 20대 남성의 25.9%라고 추정하였으나, 이조차도 높게 측정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또한 20대 남성은 아직 노동시장 진입 과정에 있어서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아직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20대 남성에서 과대 대표되는 안티 페미니즘 성향조차 이전 세대가 그랬듯이 세대 효과보다는 연령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오히려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시장 진입, 즉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청년 일자리 문제는 지속해서 심화했다. 산업구조의 서비스업화, 경제의 디지털화는 전통적으로 남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고용해왔던 제조업 일자리 축소, 일자리 전반의 저임금화를 촉진해왔다. 단편적으로 고용률 추이를 살펴보아도 대졸자의 고용률은 지속해서 떨어졌으며, 그중에서도 남성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큰 것을 볼 수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극심한 성차별과는 별개로 20대 남성이 갖는 불만 자체는 당연히 그럴만한 일이다. 본질적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대표되는 자산 격차의 확대, 플랫폼 노동으로 볼 수 있듯이 불안정 저임금 노동의 확대와 같은 문제이고, 남성의 지위 하락 같은 문제가 당연히 아니다. 그렇기에 노동을 말하지 않는 ‘이남자(20대 남성) 현상’은 기만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불만이 향해야 할 방향이다. 여기서부터는 운동과 정치가 이러한 목소리를 어떻게 조직화하느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유스토리_표.png

진짜 문제는 20대의 보수화, 20대 남자 현상 같은 것이 아니다. 20대가 처한 사회현실을 정치가 그리고 운동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최저임금 인상에 환호한 이들과 실직에 대한 불안을 가진 청년들이 다른 이들이 아니고,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감동했던 이들과 정규직화 과정의 ‘공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청년들은 결코 다른 이들이 아니다. 이러한 개혁에 대한 지지를 잃은 것이 단순히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가지 않았기 때문만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정책은 정치적 과정의 결과물이고, 그러한 정치적 과정은 오직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논의와 과정이 부재한 채로 대통령 공약이니까, 대통령의 권한이니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갈등이 심화 되면 가장 불안한 당사자들이 먼저 돌아설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떻게 폭넓은 사회적 연대와 지지를 구축하면서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나갈 지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보수화는 20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기류이다. 이러한 사회 전반에 걸친 보수화는 사회진보에 대한 열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마치 없었던 이들이 새롭게 나타나서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구호로 존재하던 이야기가 현실에서 나의 이해와 부딪힐 때 이들의 변심과 고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끈질긴 설득과 높은 책임성일 것이다.

 

박근혜 탄핵으로부터 불과 5년, 사회가 단선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최근의 보수화와 ‘공정’ 논란, 케케묵은 능력주의 대두는 지난 5년의 세월을 퍽 허망하게 한다. 진보적 대안을 만들고 사회에 관철시키는데 실패한 실력 부족이기도 하고,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과정을 도외시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마치 그런 역풍의 선두에 20대만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거품을 걷어내고 정확하게 그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야만 한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