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와 함께한 209일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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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어시유니온(준) 출범과 연대, 그리고 변화


정보영  청년유니온 정책팀장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한 채로 일해도 월급으로 50만 원 남짓을 받고, 그걸 마땅히 견뎌야 되는 사람. 나의 노동을 노동이 아닌 착취로 인식하게 된 사람. 내 주변의 동료들까지 모두가 이 현실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이 환경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 그 사람들이 청년들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을 찾아왔다. 이전에도 이미 다른 노동조합을 찾아가 본 적이 있던 이들은 “사람을 더 많이 모아와야 한다.”라는 말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때 우연히 ‘5인 미만 유니온’으로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해온 청년유니온을 알게 되었다. ‘여기라면 수가 많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청년유니온을 찾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청년유니온을 찾아온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의 이야기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는 말 그대로 패션 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다.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우리가 매일 텔레비전 등의 매체로 만나게 되는 연예인-아이돌, 배우 등- 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을 완성하는 직업이다. 소수의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여러 방송국과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직접 일을 따낸다. 스타일리스트 혼자 여러 명의 아티스트 스타일링을 모두 해낼 수 없기 때문에 어시스턴트를 고용해 업무량을 소화한다. 어시스턴트는 스타일링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의류 협찬 대행업체나 브랜드숍에 가서 의상 협찬을 받아 운반하고, 현장에서 의상과 소품을 관리하여 반납하는 일 등을 수행한다. 아티스트에게 입혀질 옷이 결정되는 순간부터 업체에 반납하는 과정 전체에 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식 고용계약을 맺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유스토리.jpg


당사자들이 털어놓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청년유니온은 곧바로 실태조사에 돌입했다. 11명의 어시스턴트를 만나 인터뷰했고, 파악된 주요 쟁점들에 대해 온라인 실태조사를 진행해 252명의 노동실태를 조사했다. 결과는 역시 충격적이었다[표 1].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노동법이 위반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대부분인 어시스턴트들은 기약 없는 대기시간이 포함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단순 계산했을 때 10년 전 최저임금(4,11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0원대 후반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근로계약도 체결하지 않는데 4대 보험을 들었을 리 없었다.


스타일리스트는 어시스턴트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나 때는 더 심했다.”, “너 아니고도 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 “네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냐.”, “이 시기를 버텨야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다.” 등 스타일리스트를 포함한 업계 전반에서 어시스턴트에게 가스라이팅을 퍼부었다. 성공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뒤로 미뤄놓더라도 당장 이 일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가 걱정인 어시스턴트들은 문제 제기하기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나니 청년유니온을 찾아온 그들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청년유니온은 지난 10년간 다양한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열정 노동, 과도기 노동 문제를 제기해왔다. ‘패션어시’ 이전에 미용실에서 일하는 스태프, 패션 디자이너 밑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인턴이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까지는 해당 의제를 가지고 지속해서 감시 활동을 해나갈 당사자 조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에는 청년유니온 최초의 직종 지부로서 ‘패션어시유니온’을 결성하고 활동을 해나가기로 했다. 현재 패션어시유니온은 창립준비위원회를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조합원을 모아 정식 지부 설립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다.


관건은 조합원을 얼마나 모을 수 있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몇 번의 기자회견과 토론회, 영상 촬영을 해올 동안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당사자/조합원들은 검정 천으로 온몸을 가리고, 가면을 써 얼굴을 가린 채로 모습을 드러내 왔다. 영상출연 시 음성 변조는 기본이었다. 신변이 드러나는 순간 업계에서 완전히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위험 때문에 활동에 여러 제약이 발생한다. 조합비도 문제다. 청년유니온의 최소 조합비는 그해 최저임금액이다. 평균 시급 3,989원을 받는 어시스턴트들에게는 매월 8,590원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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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9일, 청년유니온 패션어시 노동자와 함께한 14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청년유니온)


그때 새롭게 청년유니온에 가입한 어시스턴트 조합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부를 출범하기 위해 조합원이 필요하다면 본인이 사비로 3~4명분의 조합비를 부담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내어준 마음은 감사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대신 일을 좀 더 크게 벌여보기로 했다. 어시스턴트들이 청년유니온을 찾아왔듯, 청년유니온은 전태일재단을 찾았다. 전태일재단의 한석호 실장님께서 감사하게도 모금 프로젝트를 열어주셨다. 이 소식이 전해지며 모금 이틀 만에 프로젝트 목표액 500만 원을 넘겼고, 최종적으로 984만 원이 패션어시유니온에 전달되었다. 이제 청년유니온에 가입하는 어시스턴트는 월 조합비를 3,590원만 부담하면 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지원해주어 어시스턴트들이 매일 오고 가는 대행사에 비치해 노동조합 가입 홍보물과 함께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모두 물질적으로도 도움이 됐지만,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격려와 응원을 받은 것 같아 큰 힘이 되었다.


어시스턴트의 노동권 문제를 제기해가는 과정에서, 모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시스턴트들은 50년 전 평화시장의 ‘시다’로 비유되고 이 연대의 과정은 ‘풀빵 정신’의 재현으로 이해되고는 했다. 그러나 연대 정신만이 전태일 정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우리에게 연대를 딛고 선 ‘변화’ 또한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대는 변화의 시작이며 그 자체로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청년유니온과 패션어시유니온에게는 이 연대를 발판 삼아 어디로 가야 할지가 더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현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는 청년유니온의 요청을 받아들여 업계에서 인지도 높고 어시스턴트도 많이 고용하는 스타일리스트 6인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시스턴트 당사자들이 더 큰 변화를 체감하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조합비가 지원되는 상황에서도 쉽게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어시스턴트들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이 글의 독자 여러분께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한다. 연대로 시작된 관심이 변화에까지 이어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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