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왜 분노했는가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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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청년


정보영  청년유니온 정책팀장



지난 6월 22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900여 명의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이후 이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직접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지난 6월 발표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 내부 갈등에서 우리 사회의 중심 갈등으로 떠올랐다. 최근 3개월 동안 지난 정규직화 협의 과정이나 정규직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많은 자료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정당화의 논리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도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논의는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제까지의 반응과 대응을 먼저 정리해보고자 한다.


유스토리_표.jpg


공정하지 않다?


간접고용을 통해 정규직화하겠다는 기존의 합의 내용과 상충하는 직접고용 계획이 발표되자 정규직 노조는 문제를 제기했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알바하다 정규직화로 연봉 5,000이 되어 기쁘다는 메시지가 담긴 단체 채팅방 캡처가 “연봉 5천 소리 질러”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한 언론사에 실렸다. 이 보도는 가짜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해당 내용을 그대로 퍼나르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다 노력 없이 운 좋게 정규직화되었다는 식의 기사가 온갖 자극적인 표현들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권에서는 대표적으로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이 나섰다. 그는 발표 이틀만인 지난 6월 24일, “인천공항이 ‘청년’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며 ‘청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일명 ‘로또취업 방지법’을 발의했다. 공공부문에서 신입·경력직을 채용할 때 국가공무원과 같은 공개 채용 방식을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미래통합당에서는 ‘요즘것들연구소’를 출범하고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나선 청년은 인천공항의 정규직이 아닌 공공부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보통 청년’을 자처하며 인천국제공항이라는 공공부문이 얼마나 취업하기 어려운 일자리인지,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들이 이제까지 쏟아부은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했다. 노력한 자에게 보상이 주어져야 공정한 것인데 지금의 정규직화는 그렇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의 반대는 효과적으로 취준생과 청년의 분노로 전이되었다. 일명 ‘부러진 펜 운동’이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에 의해 시작되었고, 어느 순간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청년이 정규직화에 반대한다’고 여겨졌다.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은 빠르게 20만 명을 채웠고, 정규직 노조에서는 촛불문화제를 열며 이 자리에 참석한 취업준비생에게 직접 제작한 ‘공공부문 취업후기집’을 배포했다. 갈등의 경계는 소수의 안정적 일자리를 독점하는 정규직과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과 취업준비생 사이를 가른 것이 아니라 ‘노력한 자(정규직과 취준생)’와 ‘노력하지 않은 자(운 좋게 정규직이 된 비정규직)’ 사이를 갈랐다.


기자회견.JPG

지난 7월 31일, 55개 청년단체는 ‘신분제를 그리는 펜은 부러져야 한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청년유니온)


누가 청년이고 무엇이 공정한가


이러한 반응에 맞서 정규직화를 수호하는 자들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진보언론과 여당, 정부 관계자의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일영 의원(인천국제공항공사 전 사장)과 정부 관계자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더라도 직무가 완전히 다르며 기존 정규직의 처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김부겸 전 의원과 이해찬 대표 등은 가짜뉴스가 사람들을 속였다고, 노노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 대응 방식은 핵심 키워드인 ‘청년’과 ‘공정’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공채만 공정’이라 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분노를 조직하는 미래통합당을 비판했다. 어떤 언론에서는 인천공항 정규직이 이른바 ‘꿀직장’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을 짚으며1) 인천공항의 정규직은 과연 공정한지 물었다.2) 청년유니온도 그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한 사람들의 노동은 왜 ‘노력’이 될 수 없는지 물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지원할 정도의 스펙을 쌓는 이들, ‘노력’할 수 있는 이들은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며, 그 기간을 버틸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과 이유, 억울함


틀린 정보를 교정하고, 공정 프레임을 비판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기존 정규직과 정규직화 인원이 서로 다른 트랙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규직을 달랬지만,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화 이후 다수를 차지하게 될 이들이 노조를 통해 권익 개선을 요구할 것을 우려했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그게 뭐가 문젠가 싶기도 하지만, 공공부문 총액 인건비를 풀지 않는 이상 지금 처우가 다르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더하여, 청년이라는 기호를 경유하는 모든 언설은 필연적으로 일부 청년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악의적 청년팔이고 누가 진정 청년을 대변하는가 하는 소모적 논쟁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공정 찾기’, ‘진정한 노력 찾기’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가치를 수호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진짜 공정인지 다투면 결론은 나지 않는다. 팩트 체크와 프레임 전환은 이미 정규직화에 찬성하는 사람에게 좋은 논리를 제공해주었으나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에 나선 한 청년은 자신들을 “가짜뉴스에 현혹된” 혹은 “무지한 청년들”로 호도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정규직화는 당연히 바람직한 것이라는, 그렇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면 무지하거나 이기적이라는 식의 호통은 이미 고통받고 억울한 이들에게 ‘꼰대질’로 다가올 뿐이었다.


꼬여버린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핵심은 팩트가 아니라 분노,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억울함의 정서다. 억울함에 기반한 분노는 이성적 설득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등장한 것도 20년이 지났고 비정규직은 더 이상 특수한 고용 형태가 아니다. 격차는 점점 벌어졌고 격차는 신분제처럼 공고하다. 사회는 자라나는 이들에게 ‘공부를 잘하면’, ‘시험을 잘 보면’ 보상이 따를 것이라 주입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시험이었다. ‘노오력’, ‘열정페이’, ‘헬조선’ 등 자조적인 담론이 등장했지만, 과도한 스펙 경쟁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 지도 이미 10여 년이 지났다. 변화는 없었다. 직무능력을 평가하겠다고 도입된 국가직무능력표준(NCS)도 또 다른 형태의 시험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청년이 스펙 경쟁을 비판하는 것보다 그 스펙을 쌓는 게 훨씬 빠르다는 점을 체화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당장 불안정한 일자리로 진입했고 누군가는 죄책감을 느끼며 부모에게 의존했다. 각자는 모두 사회가 청년에게 내어준 룰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룰을 통하지 않는 자가 있다니. 억울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침묵되어진 자들을 위한 진지전 


지난 20여 년 동안 심화되어 온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듣고 경험해 온 청년들은  단순히 공공부문의 정규직화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 문제를 어떻게 격차 해소로 풀어갈지가 없는 정규직화는 중심부 노동시장을 조금 넓히는 것에 그칠 것이다. 마치 한국 사회의 저임금 구조와 자본 간의 격차를 간과한 채 밀어붙이는 최저임금 인상이 금세 동력을 상실했듯이 정규직화도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당장 구조적 대안이 어렵다면, 좋은 일자리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진입 과정에서 치른 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 완화,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 채용 방식의 획일적 공정성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들이 더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 논의가 함께 진행되지 않은 채 정규직화가 바람직하다는 당위적 전제만으로는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하여, 이 갈등이 (취준생의 분노를 조직하는 데 성공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와 이에 연대하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라면 결국 어떤 의견이 더 많은 시민의 지지를 가져가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잠재된 상태의 연대자원이 존재한다. 이 논쟁은 사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상위권 대학을 위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서 소외된 청년들은 이 의제에 관심 가지지 않았거나 관심 가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분노하는 청년이 일부 청년이라고 응수할 것만이 아니라 지금 분노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 침묵되어진 청년을 찾아 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문제를 ‘인국공’의 문제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불안정 노동시장 전반에 설득하고 연대를 쌓을 수 있다면 언젠가 이 이슈가 다른 형태로 다시 가시화되었을 때 전혀 다른 지형 위에 서 있을 수 있다. 결국 정책을 발표하는 정부도, 더 넓은 연대를 상상하는 운동조직에도 세심한 설득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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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원진. (2020. 7. 19.) 인천공항 정규직은 어떻게 평균 연봉 9100만 원 일자리가 되었나, 경향신문 

2) 전혜원. (2020. 7. 14.) 인천공항 정규직은 공정한가, 시사인,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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