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구해야 할 밝음은 존재한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강경희 학생



자취하는 내 또래 많은 학생들은 배달어플리케이션(이하 배달앱)을 이용해 음식을 시켜먹는 것이 일상이다. 여느 날처럼 배달앱을 켜서 주문할 음식을 둘러보다 새삼스럽게 고를 음식점이 정말 많았다. 가장 많이 시켜먹는 치킨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게만도 100군데가 넘었다. 배달앱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은 치킨집까지 생각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퇴직 후 최종 직업은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킨집 창업이 많은 한국에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스크롤을 내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치킨집 목록.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골목에 들어선 치킨집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건 경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년 여름이면 불거지는 최저임금 인상률 논쟁에서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사용자업체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 줄도산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되풀이된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률로 자영업자들이 생계를 잃고, 오히려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590원으로 확정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을 현실화했다. 이에 대응해 자영업자들끼리도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어려움을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실제 자영업자 가운데 70퍼센트는 최저임금과 관련이 떨어지는 가족 경영 또는 홀로 점포를 운영하는 신분인 점을 생각하면 최저임금을 자영업자 줄도산의 원흉으로 내모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자영업이 어려운 이유 중 최저임금이 한 요인이긴 하지만 주된, 유일한 이유가 아니며 근본적으로는 골목 곳곳까지 진출해 상권을 장악한 대기업 독과점 구조, 영세 점포 간 과당경쟁을 초래하는 높은 자영업 비율, 자영업 비중 증가를 유발하는 불완전한 공적 사회보장체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음에도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이들을 대변할 정치적 주체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로서 결집하지 못한다. 당장에 같은 골목에 있는 치킨집이 망해야 내가 사는데, 이 경쟁 속에서 연대와 상생을 꿈꿀 수 있을까? 소위 ‘치킨집 연대’라는 조직은 탄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회의적인 생각이 앞설 것이다.


장강명의 소설 《산 자들》 2부 ‘싸우기’의 첫 편인 〈현수동 빵집 삼국지〉에는 빵집을 운영하는 세 가족이 나온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모녀가 있다. 근처 대형마트에도 입점한 빵집이 있는데 마트를 재정비하며 빵집을 없애자 모녀는 빵집 매상이 늘겠다며 기대하지만 느는 건 매상이 아닌, 경쟁이다. 옆에 제빵 경력 40년차 노인이 동네 빵집을 내고,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빵집을 연다. 빵집 세 개가 하나의 상권을 놓고 싸우니 출현경쟁이 심각해지고 영업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꼭두새벽 매장을 열고 밤늦게까지 빵집을 운영한다. 여기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아침에 다마스를 타고 와 지하철역 앞에서 샌드위치를 파는 부부가 생기고, 한 아주머니는 장바구니에 김밥을 담아 와서 팔기 시작한다. 생과일주스 전문점에서도 베이글을 팔고, 편의점에서도 타르트와 메론빵 메뉴를 출시한다. 결국 빵집 딸이 다른 빵집을 찾아가 영업시간을 월수금과 화목토로 나눠서 하자고 말한다.


“제가 보니까 답이 없더라고요, 이건. 손바닥 만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 노리고 이 골목에 너도나도 들어와서 건물주들이랑 간판업자들 배만 불려 주다가 열에 아홉은 만신창이가 돼서 나가는 거예요. 밤에 몇 시까지 문을 열어 놓는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어요.”

“그 열에 아홉이 아니라 남은 하나가 되어 보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는 거 아닌가요.”

“그게 정말 우리 손에 달린 일 맞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이건 저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집이나 이 집이나 장사 잘되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그러면 여기 장사 잘되는 곳이구나 하고 옆에 빵집 또 생겨요. 틀림없어요. 저는 가게 망할지 안 망할지는 그냥 다 운인 거 같고요, 가게 문을 몇 시에 닫느냐,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 이건 저희가 정할 수 있는 문제 같아요.”


밑 빠진 독에 끊임없이 물을 붓는 치킨게임 속에서 서로 합의해 영업시간을 조정하자는 제안은 그나마 희망적이지만 이 짧은 대화는 한국의 자영업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당장 내 골목을 침범한 빵집을 죽여야 사는데, 생존을 다투는 경쟁 속에서 바로 옆의 빵집과 손잡고 광화문에 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처지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수백만 명이다. 생계형 자영업자뿐 아니라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모두 임시·일용직 노동자에 집중되는 것은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가 마찬가지로 영세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사업주이기 때문이다.


집권 2년 만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세 번째로 최저를 기록하며 힘이 꺾이긴 했지만, 애초에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임금 수준을 올리고 사회 지출을 늘려 소비를 증가시키고 소비 증가가 생산 증가를 가져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실시되어 왔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화되는 현상은 노동조합 조직화 수준이 낮고 노동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사회에서 부분적인 임금 인상조차 매우 어려움을 보여준다.


중소기업도, 자영업자도, 노동자도 다 어렵다. 현재의 비인간적인 경쟁체제에서 연대를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상태로 가만히 머문다면 더 깊이 가라앉게 될 뿐이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로 인해 자영업 비중이 높아지고 그만큼 자영업 페업률도 높아지는 악순환,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줄 고용주가 낮은 임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중소기업이라는 딜레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 경쟁에만 매달리지 않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해나가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영업이 망하면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각자의 처지를 인식하면서 공통분모를 찾고 공생하는 방안을 힘들지만 찾아가야 한다.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밝음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렇지 않다면 치닫게 될 공멸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을들의 연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뒷받침할 책무는 정부에게 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강력하게 존재해야 한다. 소득 증가가 곧바로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중소기업 및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조직화 수준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힘들다. 노동의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국가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입법안을 추진하며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쟁의행위 시 사업장 점거를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일은 어려운 노동 현실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