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여성 노동을 꿈꾸며_우새롬 회원,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by 센터 posted Oct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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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는 5개의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위원회·기획편집위원회·정책연구위원회·지도위원회·현장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교육위원회는 주로 작은 사업장과 초기업 단위 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기획편집위원회는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비정규노동》을 기획한다. 지도위원회는 비정규센터 자문그룹이고, 현장위원회는 현장과 접점을 찾으며 조직화 지원 사업 및 현장의제 지원 사업을 논의하는 단위다.

마지막으로 정책연구위원회가 있다. 일종의 연구진 풀이다. 비정규센터가 수행하는 연구를 함께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정책연구위원 중 한 명인 우새롬 회원을 만났다. 대전에 거주 중인 그는 비정규센터 사무실로 먼 발걸음을 해주었다. 마침 서울에 볼일도 있고 하여 겸사겸사 왔다고 했다.

 

반항의 기억

 

그는 학창시절 평범한 학생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말썽부리지 않는, 그런. 그러나 마냥 조용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불의를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정의감이 있었다.

그가 다니던 사립 고등학교는 비리가 많았다. 선생님들이 심심찮게 투쟁했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야자비’로 월 1인당 5천 원씩 걷겠다고 했다. 대부분 학생이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사실상 전교생을 대상으로 돈을 걷겠다는 것이었다. 명분은 선생님 간식비였다. 5천 원은 어떻게 보면 큰 금액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계산해본 바에 따르면, 월 1천만 원 정도 되는 큰돈이었다.

그는 곧바로 선생님에게 따졌다. 그러나 학생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냐며 적반하장으로 혼났다. 쉽게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그는 학우들에게 야자비 각출 반대 서명을 받아내 학교에 제출했다. 결국, 야자비는 없던 일이 되었다.

 

먼길 돌아 도착한 곳

 

반항의 기억은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다. 면접장에서, 왜 법학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정의 실현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당시 그가 생각한 법학은 불의에 맞서 저항하는 무기인 셈이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가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바빴다. 정의 실현은 엄두도 못 냈다. 법학 관련 자격증을 공부할 형편이 안 되어, 졸업 후 바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는 한 공기업의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2년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근무한 지 2년이 조금 안 된 시점에 문제가 생겼다. 직장 상사의 스토킹에 시달린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고도 하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 그때,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불합리한 일을 겪어야 했고, 어떻게 해결했어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석사 전공으로 ‘젠더법학’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공부해보니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법은 판단을 내려줄 순 있지만, 젠더폭력을 예방하거나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덴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는 법보다는 상담·사회복지 공부에 더 힘을 쏟았다. ‘여성긴급전화1366’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급기야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꿨다. 여성 노동을 공부하고 싶었다.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노동할 권리가 중요하다고 봤다.

 

여성 노동을 마주하다

 

그는 여성 노동자 노동조합과 조직화에 관심이 많다. 석사 논문으로 간접고용 여성 노동자 조직화를 다뤘다. 콜센터 노조 사례 중심이었다. 콜센터 노동자 외에도 여러 여성 노동자(교육·보건·돌봄·사회복지 비정규직)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노조 활동을 꾸준히 살펴봤다. 박사 논문에서 이런 경험과 공부를 종합하고 싶다고 했다. 글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감정 노동’, ‘디지털기술 발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꼽았다.

여성 노동 문제는 비정규 노동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 노동자의 상당수는 비정규 노동자다. 그는 여성 비정규 노동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의 여성화’를 언급했다. 이는 노동 자체가 저평가되는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노동 중에는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게 많다. 그러나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남성들도 제법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저평가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여성 노동 문제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란 걸 보여준다. 남성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여성 노동 문제에 함께 의문을 제기하고 저항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공부하며 경험한 여성 노조의 특징 중 하나로 ‘연대 정신’을 꼽았다. 여성 노동자끼리 연대하고 서로를 챙겨준다는 인상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물론 투쟁도 열심히 한다). 그 이유는 계속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하나 이야기해주었다. 한 노조 간부를 인터뷰하면서 ‘여성 조합원이 잘 활동하다가도 가족 문제 같은 것으로 많이 나가죠?’라는 식으로 물었다. 여성 노조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가미된 질문이었다. 인터뷰이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성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하기 어렵다. 편견, 가족의 만류, 가사 노동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한다. 그런데 일단 가입하고 나면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미 여러 부침을 겪은 뒤 굳은 각오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비정규센터와의 인연

 

그의 연구 관심사는 비정규센터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비정규센터는 작년에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용역을 받아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이하 콜센터 실태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는 이 실태조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석사 논문을 제출했을 무렵, 학과 선배의 소개로 연결된 것이었다. 실태조사는 4개의 분야(민간부문 직영과 간접고용, 공공부문 직영과 간접고용)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그는 민간부문 직영 노동자 면접을 담당했다.

그가 연구하며 만난 노동자는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였다. 그런데 콜센터 실태조사를 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를 여럿 만났다. 고용형태에 따라 노동자 간 인식 차이가 컸다. 당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정규직 전환 이슈가 한창일 때였다. 그가 만난 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정규직 전환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리고 본인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반대로 AI 도입 등 외부적 위험에 대한 감수성은 낮았다. 같은 일을 함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 있는 운동장은 너무나도 달랐다.

 

건강하게, 연구하고 연대하자

 

그는 여성 노동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연구하면서 자주 감정이입이 된다고 했다. 콜센터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때였다. 그는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그가 인터뷰하며 만나봤던 한 노동조합 간부가 발언했다. 그런데 도중에 울음을 터트렸다. 노조 활동을 오래 하였기에, 일하며 겪은 어려움을 기계처럼 말하리라 봤는데 아니었다. 그 역시 눈물이 나왔다.

흔히 연구 시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노동을 연구하는 노동자로서 그건 하나의 ‘연대 의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여성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간 연대에 관해 연구할 계획이었다. 이때 연구와 현장을 분리하기보다는 현장 곁에 머물길 원했다. 그리고 노동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가 모순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연구자 역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착취를 하며 연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며 연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약자에 힘을 보태며 글을 쓰고 고민하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라는 개인적인 소망을 피력했다. 무해한 삶을 꿈꾸는 그였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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