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람_이병권 회원,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생

by 센터 posted Jun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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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이병권.jpg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는 2015년부터 매년 하반기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주최하는 자원활동 프로그램에 함께하고 있다. 이병권 회원은 2020년에 비정규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했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중이다. 그가 사 온 빵을 먹으며 얼마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최근 졸업논문 준비로 한창인 그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줘 고마웠다.

 

게임, 공부 그리고 꿈

 

중학생 시절, 그는 게임에 푹 빠져 살았다. 학교에 갔다가 PC방에 가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은행원을 꿈꿨다. 은행원이 되면 오후 3시 30분에 칼같이 퇴근하고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의 압박이 들어왔다. 그리고 은행원 역시 일찍 퇴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공부를 제대로 못 한 탓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말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가 뭘 꿈꾸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단단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것을 현실적인 이유로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그것은 직업 선택의 기준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개인과 구조

 

그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주로 개인의 실천적 측면에서 사회복지를 바라봤다.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려면 최소 4주간 현장 실습을 해야 한다. 그는 병원에서 6주간 있었다. 환자의 가족관계·재정 상황 등을 파악해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환자가 퇴원 후에도 사회적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질병의 예방과 회복, 사후 관리를 도왔다. 그는 병원에서의 일이 마음에 들었다. 의료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배우는 걸 좋아한다.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가 된다고 해도 나중에는 공부를 더 해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과 교수님이, 어차피 언젠가 공부를 더 할 계획이라면 바로 시작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는 고민 끝에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를 주로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사회복지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하여 해결 방안을 찾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사고의 폭을 넓혔다. 개인의 실천과 구조적 해결은 모두 그 나름대로 의의를 지닌다. 그는 그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라고 했다.

 

노동에 눈 뜨다

 

그는 공부하면서도 스스로 밥벌이를 하길 원했다. 자립하지 않으면 단단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봤다. 기숙사 조교 자리를 구했다. 그런데 반년 정도 일하면서 문제의식이 싹텄다. 비슷한 처우를 받는데도 담당 기숙사에 따라 노동 강도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업무량이 폭증했다. 그럼에도 인력 재배치나 증원, 처우 개선 등의 변화는 없었다. 그를 포함한 조교 6명(총원 30여 명)은 기숙사 관장에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노동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과거 그는 노동에 무관심한 채로 살았다. 과외를 하거나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는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노동으로 인식하진 않았다. 어느 수업에서 한 학우가, 노동조합이 우리 삶에 그렇게 가까운 것 같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조교로 일하면서 부조리를 몸소 느끼니 문제의식이 절로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서울대 인권센터 자원활동 프로그램에 관해 알게 됐고, 노동을 배우고 시민·사회단체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경험해보고 싶어 비정규센터에 지원했다. 

 

관심이 연구로 :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그는 비정규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전국의 비정규노동센터들이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갔다. 자원활동 프로그램으로 인터뷰하며 들은 다음 이야기가 그 계기였다. “광주시에서는 광주비정규직센터에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예산을 줬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쫓아가다 보니 학술논문까지 쓰게 되었다. 한국산업노동학회 학회지에 발표한 ‘비정규노동센터의 조직적·제도적 실험: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논문은 2012년부터 2021년 사이 비정규노동센터들의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사례를 다룬다. 조직적·제도적 실험이라는 틀로 분석했는데, 조직적 실험은 노동자들을 이해 대변하기 위해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협회·공제회·모임 등 다양한 조직화 시도를 하는 것을, 제도적 실험은 이해 대변 형태를 개선하거나 조직적 실험이 가능하도록 주변 제도적 환경을 바꾸는 것을 일컫는다.

 

비정규노동센터의 운동성

 

그가 준비 중인 졸업논문 주제 역시 비정규노동센터와 맞닿아 있다. 그는 비정규노동센터들이 제도화된 상황에서 여전히 운동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사례를 보았을 때, 충분히 운동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가정이다. 전국 사례를 기준으로 일반화하여 주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지만.

전국의 모든 비정규노동센터를 조사할 수는 없다. 그는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이하 한비네)에 속한 센터 중 활발히 활동하는 곳 20개(센터당 1명 인터뷰) 혹은 10개(센터당 2명 인터뷰)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때 일부 비정규노동센터만을 조사해서, 그것도 활발히 활동하는 곳 위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센터가 통상적인 민관 협력 거버넌스와 달리 이례적인 사례라는 걸 고려했을 때, 그는 활발히 활동 중인 센터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봤다.

 

단단한 삶을 위하여

 

그는 졸업 이후의 계획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남은 기간을 버텨 졸업논문을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단단한 삶을 위한 수단 중 하나가 공부고, 그렇기에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대학원 공부가 무척 힘들다고 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습득하는 건 재밌으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건 쉽지 않다. 이 글이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쓰일까, 반박하는 데 쓰일까 판단하려면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원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글을 해석하여 인용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유튜브로 ‘카트라이더’라는 게임 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특히 ‘샌드박스’라는 팀에 속한 박인수 프로게이머의 팬이다.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쇼맨십을 하며 게임을 즐기다가도 뒤에선 치열하게 연습하는 모습에 매료된 것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그의 롤모델을 물어봤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마련이라면서 롤모델이 딱히 없다고 했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존경하거나 추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좋아하는 사람(학자)들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공통점으로 성실하고 타인의 비판에 열려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가 바라는 단단한 삶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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