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하는 연구자_김세진 회원, 희망제작소 연구사업본부 연구원

by 센터 posted Apr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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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얼굴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17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3년간 비정규센터 정책 담당 활동가로 상근한 김세진 회원이었다. 그가 사 온 음료를 마시며 인터뷰에 앞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함께 활동하던 때가 떠올랐다.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며 세월이 빠르게 흘렀음을 실감했다. 

30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이윽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금 전 수다의 연장선이라도 된 듯 문답을 주고받았다. 조금 멋쩍은 면도 있었다. 그에 대해 잘 아는 사실도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호기심 많은 전공 부자

 

그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대학에서 여러 과목을 전공했다. 국문학과로 대학에 입학했다.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수업을 몇 개 들어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 문제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모범생으로 자란 그였으나, 재수 시절 한 선생이 ‘바다이야기’에 자신의 처남이 투자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터였다.

 

그는 사회학과 국제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국제학부로 전과했다. 국제학을 공부하면서 중국에 관심이 갔다. 이번에는 중어중문과를 복수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서예를 배워 한자는 잘 알았지만, 중국어는 조금도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대만에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가 중국어를 익혔다. 어느 날 성적표를 보는데 국문학과 전공을 세 개나 들은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신청했다. 21학점만 수강하면 인정되는 부전공을 36학점 수강했다. 전공 수업만큼 학점을 채운 것이다. 입학할 때의 전공이 부전공이 되었다가 다시 전공이 되었다. 그렇게 세 가지 전공을 이수하고 졸업했다. 갈대 같은 학부 생활이었다. 

 

정치에서 노동으로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는 국회의원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의원실에서 편의를 봐줘 수업을 들으며 다닐 수 있었다. 현실 정치를 배워보고 싶었다. 정치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주변에서 왕왕 듣곤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을 맛봤다. 그런데 국회의원 비서로 현장에서 몸소 일해 보니 정치를 직접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대신 정치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궁금하니 공부를 더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정치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부 시절의 관심을 녹여내 한국과 대만의 선거제도를 비교하는 논문을 썼다.

 

그는 2017년 2월에 비정규센터에 들어왔고, 8월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반 년가량 일과 공부를 병행한 셈이다. 정치학을 공부한 그에게 노동은 생소한 분야였다.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가며 비정규센터를 다녔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역시나 호기심이 많은 그였다. 연구뿐만 아니라 활동도 흥미로웠다.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 상황이었다. 당시 이남신 비정규센터 소장과 최저임금위원회에 함께 갔다. 흔히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맛봤다. 무엇보다도 요양보호사, 통신 노동자 등 비정 규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게 기억에 남았다. 어떤 노동이 자신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지,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노동’의 굴레

 

2020년 2월, 그는 비정규센터를 그만뒀다. 곧바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예정했던 유학을 접어야 하는 등 여러 풍파를 겪었다. 그 뒤 희망제작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희망제작소는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하는’ 단체다. ‘THINK & DO TANK’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구뿐만 아니라 진보적 변화를 위한 행동에도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희망제작소에서 노동이 아닌 사회혁신(공동체, 거버넌스 등) 관련 연구를 하길 기대했다. 비정규센터에서 수행했던 노동 연구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무기를 하나 더  만들고 싶었다. 여러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호기심도 한몫했다. 

 

그러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처음 맡은 연구는 ‘부천시 감정 노동자 권리 보호 및 좋은 일터 조성 계획 수립’이었다. 희망제작소에서 노동 연구를 경험한 연구원은 그밖에 없었다. 그리고 희망제작소는 사회혁신을 위한 의제 중 하나로 지방 소멸을 다룬다. 지방 소멸 문제는 지역 일자리·고용·노동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그가 수행한 연구 중에서 예를 들자면, ‘거제형 일자리 모델 구축 및 운영 지원’, ‘경상북도 기반 신규혁신 일자리산업 개발 용역’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원래 목표대로 노동과 완전히 다른 분야를 연구해볼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5~6년 동안 노동 관련 연구만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겠느냐면서 웃었다. 그러고는 일자리와 고용 측면에서 노동 문제를 새롭게 들여다보아 재미있다고,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다루는 게 의미있다고 했다.

 

최대 관심사이자 고민

 

그는 노사, 나아가 노사정 대화를 어떻게 촉진하여 상생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의 일자리·고용·노동 연구를 하면서 노조가 대화에서 배제되는 경우를 자주 봤다. 노사정이 함께해야 하는 거버넌스에 노 측을 형식적으로 참가시키거나 아예 습관적으로 빼고 간다는 것이었다. 일자리·고용·노동 정책에 목소리를 내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노조도 있었고, 별 관심이 없는 노조도 있었다. 기후·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산업 생태계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고, 기존의 일자리가 없어지기도 한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노동을 배제한 상태로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뤄낼 수 없다. 

 

그는 정치권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봤다. 물론 노사정 모두 리더십이 있어야 하지만 정책을 이끌어가는 건 결국 정부다. 그리고 노사는 자기들만의 뚜렷한 관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정부가 나서서 노사를 아우르지 못하면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 그는 현 정부의 불통과 노사정 대화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노사가 더 극심한 대결로 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 보였다.

 

활동가와 연구자 사이

 

그는 본인이 활동가 체질은 아니라고 했다. 선배나 동료 활동가를 보면서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의 아픈 곳을 들여다보면서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게 힘들었다. 사회 변화를 위해 앞장 서 뛰어다니며 헌신하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정책 연구 역량을 꾸준히 키워 연구자로서 운동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다. 희망제작소에서 계속 활동함과 동시에 더 깊은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다닐 계획을 하고 있다. 그렇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선배 연구자가 있는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고 걱정하면서···. 부디 그가 목표한 바를 무사히 이뤄내길 바란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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