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들녘에 내일의 희망이 되자_이향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by 센터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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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함께한 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송두리째 뒤집혔다. 단절되고, 지치고, 아팠다. 그리고 누군가는 죽었다. 오미크론이 대세가 되면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루 확진자가 1천 명이 되었다며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쌓이는 숫자만큼이나 무감각해진 듯하다.

코로나19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곧 일상이 회복될 거라는 희망에 차 있고, 누군가는 좌절에 좌절을 겪어 다시 일어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쓰러진 상태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텨내며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이번 회원 인터뷰에서는 마지막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에 있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를 방문해 이향춘 회원을 만났다. 그는 병원 내 비정규 노동과 방역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에 대해 말했다.

 

이향춘.jpg

 

간호사에서 노동운동가로

 

그는 간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병원에서 3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에 보건교사나 보건간호사로 빠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현장에는 부당한 일들이 참 많았다. 그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보람을 느꼈다. 보호자 침상 설치, 환자 식대 건강보험료 적용, 다인 병상 확대, 암·중증희귀질환 급여 확대 등 의료 공공성 관련 투쟁을 전개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도 힘썼다. 간호 인력 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외주화 반대에 목소리를 냈다.

그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소모임 활동부터 시작해 대의원, 조직부장, 부분회장, 부지부장, 사무국장, 지부장을 거쳤다. 지금은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병원에 있을 당시 비정규직 조직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을 하면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주로 정책적으로 어려운 부분에 관해 소통하며 의견을 나눴다.

 

병원 내 비정규직 확대

 

병원에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행정·미화·시설관리·조리 등 여러 노동자가 존재한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손발을 맞추어 일해야 병원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모두가 사회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필수 노동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이가 비정규 노동자다.

그는 IMF를 겪으면서 병원에 비정규직이 늘었다고 했다. 중요 업무와 비중요 업무를 나누고 비중요 업무는 외주화하는 방식이었다. 노동자들이 저항하면 퇴직 후에 남은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그렇게 정부의 노동 정책에 따라 공공병원의 많은 업무가 외주화됐다. 그리고 거대 자본이 뛰어들면서 민간병원이 대형화되었고 비정규직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민간위탁 정규직화 배제 등 갖은 꼼수가 난무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공공병원에서는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의미 있는 성과였다. 

 

민들레로 꽃 핀 연대

 

의료연대본부는 출범 초기부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핵심 사업이자 투쟁 과제로 삼았다.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조직화에 앞장섰다. 교섭도 지원했다. 병원 업무는 모두가 중요 업무라고, 어느 업무가 비중요 업무라는 이유로 외주화되는 걸 외면한다면 어느새 내 업무가 비중요 업무가 될지도 모른다고 외쳤다.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해온 역사가 길었기에 요 몇 년간의 정규직화 투쟁 과정에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노동 계급 내의 연대는 연대 의식과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의료연대본부는 지역 지부라는 틀 아래 회계와 인력을 통합했다. 지부로 조합비를 모두 모았다. 조합비를 자기 분회에서 사용하고 일부만 상급단체로 보내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랐다. 자금이 궁하여 투쟁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머리를 맞댔다. 함께 전략을 세우고, 서로의 교섭과 투쟁을 지원했다.

이러한 연대 정신은 분회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의료연대본부는 비정규 노동자로 구성된 분회를 ‘민들레분회’라고 이름 짓는다. ‘민들레’는 ‘민주 들녘에 내일의 희망이 되자’라는 뜻과 민들레처럼 밟아도 꿈틀거리며 일어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보통은 용역 업체명에 따라 분회 이름을 짓기 마련이다. 업체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분회 이름도 바뀐다. 그러나 ‘민들레분회’는 그렇지 않다. 사시사철 전국 어디에나 피어 있다. 

 

노동의 위기, 보건·의료의 위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노동의 위기가 곧 보건·의료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사직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일이 고되거나 위험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정부 태도와 환자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컸다.

사실 매번 정권마다 전염병은 우리를 습격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그러나 정부는 땜질식 처방으로 눈앞의 위기를 넘기는 데 급급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여전히 의료 인력도, 공공병원도 부족하다. 확진자가 증가할 때마다 의료진 과로 문제가 등장한다. 전체 의료시설의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를 치료하는 실정이다.

공공병원에는 저소득층, 홈리스, 에이즈·결핵 환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많다. 치료비가 저렴하고, 일반 병원에서 꺼리는 특정 환자를 돌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하면서 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정부는 제대로 된 전원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늘 그렇듯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약자에게 전가되었다.

 

영웅이 아닌 간호사를

 

간호사가 처한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1인당 13~17명 정도의 환자를 돌본다고 한다. 지역으로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간호사 혼자 많게는 40명의 환자를 돌보는 곳도 있다. 게다가 지역은 수도권보다 업무량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더 낮은 편이다. 간호사를 뽑지 못해 문을 닫는 병원도 존재한다.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 40만 명 중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절반가량밖에 안 된다. 또 입사 후 5년 이내에 그만두는 비율이 50%가 넘는다.

간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현장에는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일하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간호사가 필요하다. 그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의료법을 보면 1인당 12명으로 정해져 있긴 하다. 그러나 아무런 강제조항이 없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법제화되어 있다. 그리고 병원마다 간호사가 몇 명의 환자를 돌보는지 공시해야 한다. 환자의 선택권이 훨씬 넓은 것이다.

정부는 인력과 병상을 충원하고 나서 확진자가 감소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그는 대안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를 이야기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환자 입원 시 보호자가 없는 병동이다. 현재 간병인 사용료는 비급여다. 일당이 12~15만 원가량 된다. 환자 처지에서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과거 국가는 공동체와 가족에게 돌봄을 맡겼다. 비혼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해체되는 지금 이 모델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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